마음의 틈 열어주고 좋은 가치 확산하는 '마을가수'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21) 이다겸 통기타듀오 '헬로 유기농' 마을가수, 초등학교 교사

2025-01-07     나경호 작가
마을가수 '헬로 유기농'의 이다겸씨. 

[고양신문] 연말과 새해가 다가오면 존재가 선물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보고 싶습니다. 고양시에는 마을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노래와 연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때로는 축하하는 마을가수 '헬로 유기농'이 있습니다. 고향, 동네라는 단어가 희미해진 요즘, 마을가수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어린 시절의 풍경은 어땠나요.

태어난 곳은 충북 단양인데 거기에 대한 기억은 없고 3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울산에서 자랐어요. 저의 기억이 아니라,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로 어린시절의 저를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가 저를 낳지 않으려 여러 시도를 했다 들었어요. 그럼에도 태어난 저는 너무나 작고 약하게 세상밖으로 나왔다 했습니다. 첫 돌 때 엄마가 제 손에 고구마를 쥐어쥔 채 업고 밭일을 했는데, 제가 그 고구마를 먹고 체해서 죽을 뻔했다더라고요.

너댓 살 됐을 때 저희 집이 만화방을 했어요. 만화방 안에 있는 작은 쪽방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같이 살았어요. 어느 날 밤 저와 막내동생이 자꾸 끙끙거리자 엄마가 동생에게 젖을 물렸는데 동생이 계속 울기만 했답니다. 그때 연탄가스다 싶어 불을 켜 상태를 확인한 부모님이 저와 형제들을 집 밖으로 끌고 나와 하나씩 아스팔트 위에 눕혔다더군요.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형제들이 다들 한 번씩 죽을 뻔했는데, 그럼에도 형제자매들이 엄마의 손을 잘 타서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에게 제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그래서 스스로를 ‘나는 죽을 뻔한 사람이야. 나는 약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어요. 그럼에도 죽지 않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버텨낸 약한 내 생명에도 무언가 연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어려서부터 나의 쓸모를 고민하며 자라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간단한 개인소개 부탁드려요. 

고양시에서 산 지 26년차 됐어요. 경력 33년차 초등교사로 고양시에서만 벌써 7번째 초등학교에 몸담고 있는 원로(?) 선생님입니다. 고양시에서 혜택과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아왔다고 생각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을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어요. 나 말고도 고양시에 좋은 선생님은 이미 많으니까. 노래하는 팀을 꾸려 시민들께 내가 누린 좋은 것을 돌려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지금의 삶이 아주 보람됩니다. 

팀명인 '헬로 유기농'은 어떤 의미인가요.

버스킹을 하려다 보니 팀이름이 필요했어요. 고양시에서 버스킹을 하려면 고양문화재단에 고양버스커즈로 등록해야 합니다. 오디션을 통과해야 버스커즈 등록이 되고 정해진 장소에서 공연을 할 수 있어요. 그때는 생협이 한창 유행이라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렸어요. 사람들이 몸에 좋은 음식을 먹듯,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자는 의미로 오랜 논의 끝에 '헬로 유기농'이란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름은 저와 같은 팀인 나명호씨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공연 에피소드는.

연습실이 따로 없어 공원에서 악보를 놓고 연습하는데, 그러다보니 아파트에서 산책하러 나온 분들이 종종 저희의 노래를 들어주십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겨있는 아이가 우리 노래를 들어줬는데, 그날 이후로 아이가 여러 번이나 우리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 받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아이들이 들을 만한 노래가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이 밖에도 공연이 끝나고 조용히 우리의 노래를 듣고 있던 시민들에게서 ‘언제 또 공연하느냐, 노래가 너무 좋아 울었다, 위로를 많이 받았다’ 라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습니다. 신나요, 멋져요 보단 위로가 되었단 말들이 많았는데, 이런 반응들이 저희가 노래를 하는 데 큰 힘이 되곤 합니다.
 

마을 내 크고 작은 행사에서 시민들을 위로하거나 축하하는 공연을 많이 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고양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공연을 전국적으로 다니는 편인데, 동네에서는 사례를 기대하지 않고 공연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 우리가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건 가치입니다. 마을을 위해 성심껏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우리의 공연이 이 좋은 가치와 의미를 마을에서 확산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래 부릅니다. 얼마 전 화전마을사회적협동조합의 공연도 그렇고 현재 폐관 때문에 큰 곤경에 처한 작은도서관을 위한 행사에도 정말 기쁜 마음으로 공연을 했어요.

저희는 어린이부터 70~80세대를 위한 노래까지 다양한 공연 레퍼토리를 갖고 있지만, 민중가수 같은 사람은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버는 대중가요도 아닙니다. 그냥 시민들 사이에 녹아서 함께 가는, 그리고 가능하면 사람들 안에 있는 감성을 끄집어 내는 그런 노래를 자주 부르려 합니다. 사람들 마음 속 틈을 조금 더 열어주는 노래를 늘 부르고 싶습니다.

지난 12월 13일 '힘내라 작은도서관' 공연 중인 헬로 유기농 멤버인 나명호(왼쪽)씨와 이다겸씨.

예술가들이 지역에 정착해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혹은 무엇이 필요할까요.

도시에서 나름 좋은 직함을 갖고 살다 은퇴해 조금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 귀촌하면, 농촌에 이미 오랫동안 살고 있던 사람들의 텃세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모두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농촌사람들은 자기 것을 빼앗길까봐, 자신의 일상과 삶이 방해받거나 훼손될까봐, 도시사람들은 자신이 이 지역을 모른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혹은 피해를 받을까봐 서로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예술과 지역주민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가수라고 스스로의 삶과 예술을 내세우기 보단 스스로가 먼저 마을 사람이라고 인지하고 주민들과 서로 편하게 어울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주민들도 예술이 필요할 때만 우리를 부르는 게 아니라 그냥 동네형, 동네동생으로 필요할 때 역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공연 준비를 해 공연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그럼에도 주민들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합니다. 서로의 가치와 존재가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합니다. 마을에 녹아들고 싶다면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채우려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좀 더 비워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나요.

교실은 세상을 축소한 작은 세상입니다. 부임 초창기에는 학교에서의 1년을 재미있게 보내는 게 목표였어요. 아이들과 재밌게 시간을 보내야, 나도 재밌어서 학교를 오는 게 즐겁고 학생들도 재밌어서 학교를 오니깐. 학기말마다 통지표를 작성하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생활기록부에는 학부모들이 모두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말만 써주길 바라다보니 민원 같은 게 많이 들어와요. 어려움을 겪으며 점차 학급경영관을 조금씩 확립해 나갔습니다. 아이들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 방학을 빼면 고작 10개월이 채 안됩니다. 아이들이 나를 만나 10개월 사이에 전보다 더욱 훌륭하게 성장할 거란 자만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아이들은 나선형으로 자랍니다.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넓어집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순 있어도 제가 남겼던 말들이 언젠가 아이들 안에 자라서 잎과 꽃이 되고 열매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1학년 아이를 만나든, 6학년 아이를 만나든 늘 기본을 말합니다. 먼저 네가 행복해라. 네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이 행복한 걸 알 수 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그래서 남도 행복해지려면 어찌해야하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과 배움이 우리가 갖춰야 할 지혜임을 아이들에게 전하려 노력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학급에도 위기가 왔지만 가급적 아이들에게 공동체 감수성을 깨닫게 해주려 애쓰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기 위해 글도 자주 쓰게 합니다. 행복한 내가 모이면 인간은 절대로 폭력적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한 나, 지혜로운 우리, 그래서 평화로운 교실’이 제가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어떤 가수로,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지금도 저는 너무 좋습니다. 최근 새해인사를 지인들에게 드렸더니 저희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저희를 자주 보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우리를 떠올리면 크고 작은 위로가 생각나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학부모님한테도 “내년에도 우리 선생님이 되어주세요”라는 말을 듣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이라고 ‘나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더 유연해졌습니다. 자격증이 있다고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반드시 내 곁에 있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많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직업입니다.
 

고양시의 친구와 이웃들에게 하고픈 말은.

“우리 집으로 많이 놀러오세요. 저 노는 거 좋아해요. 같이 놀아요.” 같이 놀아요 라는 말이 참 듣기 좋은 말 같아요. 저 역시 낯을 많이 가리는데 그럼에도 막상 친해지면 마음의 문을 빨리 열고 다 여는 사람입니다. 덕분에 마음을 크게 다치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스스로 상처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죽기 직전에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따로 없습니다. 나이가 차곡차곡 쌓이며 슬슬 죽음을 준비해야겠다 라며 짐도 비우고 정리를 하겠다 늘 마음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심과 달리 우리 집 앞에는 매일 택배가 잔뜩 쌓여있습니다. 벌써부터 저와 함께 공연하는 나쌤(나명호)의 비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