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선 재개통 첫차 '북적'.... "디젤기관차 옛 감성에 추억이 새록"

2025-01-11     유경종 기자

11일 오전 6시6분 대곡역 출발
느린 속도로 달려 의정부역 도착   
카메라 든 중년
-신세대 유튜버 몰려

이른 새벽시간부터 교외선 첫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을 가둑 메운 철도 마니아들. 

[고양신문] 11일 새벽, 대곡역에 도착한 시간은 5시50분이었다. 대곡에서 출발하는 교외선 의정부행 첫 열차의 발차시간이 6시6분이니, 여유 있게 티켓을 끊고 승차하면 될 거라는 예상은 착각이었다. 캄캄한 겨울 새벽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서 건너다뵈는 야외 플랫폼에는 열차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벌써부터 가득하다. 대곡역 인근 주민들은 아닐텐데, 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습관적으로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입장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승차권 발권기의 긴 대기줄 앞에서 멈춰서야 했다. 비록 편도 2600원(1월 한 달간 특별요금 1000원)짜리 열차지만, 엄연히 코레일이 운영하는 철도노선이라 행선지를 입력하고 열차 티켓을 끊어야 하는 것. 발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아 조바심하고 있는데, 다행히 코레일 관계자가 “기차 안에서 차장에게 표를 끊어도 되니까 일단 승차하시라”며 안내를 한다.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통로에서 코레일 직원들이 작은 종이가방을 하나씩 나눠준다. 교외선 재개통을 축하하는 선물이다.

승강장에서 만난 교외선 열차 실물은 사진으로 봤던 느낌보다 정겹고 멋졌다. ‘뉴스텔지어(뉴트로+노스텔지어)’ 콘셉트 컬러로 차량 전체를 래핑하는 데만 적잖은 돈이 들었다고 한다. 코레일 관계자들이 첫 열차를 배경삼아 개통 축하 현수막을 들고 포토타임을 갖는 것으로 간소한 개통 세리머니를 대신한다.

기차는 5량, 앞뒤 기관차와 발전차를 빼면 실제 객차는 1호차와 2호차 2량이다. 열차 안은 일찌감치 좌석을 예매한 승객들로 만석이고, 객차 사이 화장실과 세수대가 마련된 연결공간에도 입석 승객들이 가득하다. 

교외선 운행 재개 기념 포토타임. 

드디어 열차 출발!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연신 영상과 사진을 찍고 있다. 20여 년 만에 운행이 재개된 교외선 첫 열차의 풍경을 유튜브나 SNS에 올리려는 이들이다. 2주 전 GTX-A 첫 열차를 탔을 때보다도 훨씬 활기찬 풍경이다. 최고속도 시속 180㎞로 달리는 GTX가 교통 실수요자들의 환호를 받았다면, 30㎞(대곡~의정부) 거리를 50분 동안 천천히 달리는 경의선 무궁화호 디젤열차에는 철도 마니아들의 관심이 집중된 셈이다.

고양시 대곡역을 거점 삼아 2주 차이로 개통한 두 노선은 대중교통의 극과 극을 보여준다. GTX는 미래의 이동감각이 성큼 도래한 느낌이고, 교외선은 과거의 이동감각으로 기억의 필름을 되돌려준다.

열차는 디젤기관차 특유의 소음과 진동을 일정한 박자로 반복하며 원당 고가를 지나고, 공릉천 철교를 지나고, 옛 벽제역 인근 터널을 지난다. 원릉역과 일영역, 장흥역, 송추역에 닿을 때마다 카메라를 켠 이들이 플랫폼에 우르르 내려 주변을 스케치한다. 잠깐 정차했다가 바로 출발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틈은 없다.

교외선은 오래된 디젤 기관차와 객차로 운영되지만, 내부를 쾌적하고 깔끔하게 새단장했다.  

단선철로인 교외선은 유일한 복선 구간인 일영역에서 상행과 하행이 교차한다. 거리로 따져봐도 대곡과 의정부의 중간지점이 일영역이다. 반대편 철로에 정차한 대곡행 열차 차창 안에도 승객들이 가득하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송대관의 노래 ‘차표 한 장’의 한 구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철도에 특별한 애정을 쏟는 이른바 ‘철덕(철도덕후, 동호인)’들은 연령대가 다양했다. 수년간 교외선 공사 현장을 꾸준히 방문해 영상을 올린 중년 유튜버도 있고, 철도와 관련한 스페셜 컬렉션을 자랑하는 청년도 있고, 철도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자랑하는 청소년들도 있고, 한 박자 느린 기차의  매력에 푹 빠진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멀리 안산에서, 서울에서, 부천과 인천에서 새벽길을 달려 대곡역까지 왔다고 한다. 

무궁화호의 매력에 푹 빠진 초등학생 철도덕후들. 첫차를 타기 위해 밤잠도 안 자고 멀리 서울과 인근 도시에서 새벽길을 달려온 친구들이다.  

온라인 철도카페에서 약속을 잡았다는 일군의 초등학생들은 본인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인 교외선의 과거 역사를 줄줄이 꿰며 “디젤기관차를 타보니 전철이랑은 완전히 다르다. 정말 재밌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객차 안에서 코레일 관계자, 고양시 공무원, 임홍열 시의원도 만났다. 교외선 운영에 대한 구상과 고민의 지점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첫날, 첫 차를 탄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생각보다 뜨겁다”는 소감에는 한목소리였다.   

6시56분, 열차는 정확히 50분 만에 종점인 의정부역에 도착했다. 아직은 아침 배차가 양방향 각각 2대밖에 없기 때문에 왔던 열차를 다시 타고 대곡역으로 돌아가야 한다. 잠시 승강장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열차에 오르니 좌석의 방향이 올 때와 반대 방향으로 바뀌어 있다. 짧은 시간 청소와 정비가 이뤄졌다. 

의정부역에 도착한 열차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철도 마니아와 유튜버들.

열차는 7시16분 의정부역을 출발한다. 해가 뜰 시간이 다가오자 서서히 철로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사패산, 송추 오봉, 북한산의 실루엣이 차례로 지나가고, 장흥에서 일영으로 이어지는 공릉천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8시7분, 출발했던 대곡역으로 돌아와 차 안에서 잠시 얘기를 나눴던 이들과 눈인사를 하고 역사를 빠져나온다.   

교외선이 맨 처음 놓인 것은 1961년인데, 놀랍게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로가 지나는 거의 전 구간이 개발의 손길에서 비껴났다. 교외선 노선 자체가 그린벨트, 군사보호지역, 수도권정비계획법이라는 3중 규제가 중첩된 경기북부의 현실을 고스란히 방증한다. 

송추역 인근을 지나며 바라본 북한산 오봉의 아침 실루엣. 

교외선이 경기북부 동서를 잇는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과연 얼마나 감당하게 될지는 물음표가 찍히지만, 거대도시 서울과 고양 가까이에서 수십 년 전 기차를 타고, 수십 년 전 철길과 철교와 터널을 지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사이를 달리는 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은 교외선만이 지닌 차별화 된 장점임에 분명하다. 

원당의 한 카페에 들어와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출발할 때 선물로 받은 종이가방을 열어봤다. 소풍날의 콤비 찐계란&사이다와 함께 단팥빵, 오란다, 빠다코코넛 등 추억을 자극하는 과자들이 들어있다. 첫차 타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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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교외선 개통! / 어른부터 신세대까지 레트로 매력 속으로 / 교외선 첫 차 직접 타 보았습니다 ⧫ 《고양신문 뉴스택배 ep.343》 - YouTube

교외선 첫 차 손님들에게 나눠준 코레일의 기념선물. 삶은계란과 사이다, 추억의 과자들이 가득하다.
교외선 첫 차를 타고 의정부까지 다녀온 청소년과 어린이 동호인, 유튜버들. 같은 취미를 즐기는 이들 끼리의 공감대가 끈끈하다. 
"열차 출발합니다. 빨리 올라가세요~!" 
대곡역에서 하차한 승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