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 칼럼] 새해 계획 세우셨습니까?
그림책으로 본 세상 『아름다운 책』 (클로드 부종, 최윤정 옮김. 비룡소)
[고양신문] 이제부터 내가 겪은 신비하지는 않지만, 놀라운 경험을 들려주려 한다. 2024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운 경험은 생방송으로 계엄을 지켜본 일이다. 이 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두 번째로 밀려났지만, 이번에 들려줄 경험은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험을 들려주기 전에 오래된 실험 결과를 먼저 얘기해보려 한다.
노트르담 수녀 학교 출신 678명을 대상으로 한 뇌의 노화연구에 관한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수녀는 모두 75세 이상이었고, 죽기 전까지 비교적 건강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사후 기증한 뇌를 분석해 본 결과, 수녀 가운데 일부는 알츠하이머를 앓았던 것으로 나왔다. 놀라운 것은 주변 누구도 그 수녀들이 알츠하이머를 앓았다는 것을 몰랐을 만큼 증상이 없었다는 것.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 그것이 바로 인지력. 뇌의 기능 중 모든 것이 노화되어도 ‘인지력’ 만큼은 인간의 힘으로 계속 유지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앓았지만, 건강한 삶을 살았던 수녀들의 공통점은 ‘읽고, 쓰고, 이야기’ 했다는 것. 죽기 직전까지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글을 썼으며,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계속한 수녀들의 뇌는 주변을 인식하고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지력이 높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말, 가기 귀찮지만 머릿수를 채우려고 들으러 간 강의에서 김은하(책과교육연구소)선생님은 이런 얘기와 더불어 계속 도파민 중독에 빠져 전두엽을 망가뜨리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기 전에 15분 정도 책 읽기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오래 살지는 않아도 뇌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터라 강의를 들었던 10명을 모아 ‘십오야BOOK’이라는 채팅방을 만들었다. 활동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멀리 둔다. 15분 정도 책을 읽다가 잠든다. 자다가 깨도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다음 날 오전 중으로 읽은 책을 사진으로 찍어 올린다.’
이 간단한 미션이 너무 힘들다는 건 이틀 만에 알아챘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한 달쯤 지나면 익숙해질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십오야BOOK’은 한 달에 한 번 시즌제로 운영되었고, 2025년 1월 ‘십오야BOOK 시즌5’를 맞았다. 12월 계엄 사태 때문에 흔들리긴 했지만(이때 십오야BOOK 시즌4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미션에 실패했다.) 자기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은 효과는 놀라웠다. 확실히 말하다 생각이 안 나는 단어 수가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삶의 질이 달라졌다. 정말 놀랍게도 이제는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책을 읽다가 자는 것이 내 일상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책』(클로드 부종 지음, 최윤정 옮김. 비룡소)은 책은 ‘책’이 가진 쓸모에 대해 말한다. 어느 날, 에르네스트는 책을 집으로 가져온다. 에르네스트는 책이 뭔지 모르는 동생 빅토르에게 설명해 준다. “책은 읽는 거야. 글씨를 모르면 그림을 보는 거고.” 한참 책에 빠져든 동생에게 에르네스트는 한 마디를 보탠다. “빅토르, 꿈을 꾸는 건 좋아. 하지만 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다 믿으면 안 돼. 나름대로 판단을 해야지.” 다시 책에 빠져드는 두 토끼에게 진짜 여우가 달려든다. 그리고 책은 또 한 번 큰 힘을 발휘한다. (궁금하시면 책을 읽어보시길) 에르네스트는 동생에게 말한다. “봤지, 책은 정말 쓸모 있는 거야.”
12월 말, OECD가 공개한 국제성인역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50세 이상 성인의 언어능력은 최하위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문해력 문제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지만, 더욱 심각한 건 어쩌면 중장년과 노년기라는 결과이다. (2024. 12. 11 경향신문)
이제 새해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건 어떨까? 10명 정도를 모은다. 아니, 5명 정도도 괜찮다. 단톡방을 만든다. 그리고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15분 정도 책을 읽는다. 다음 날 자기가 읽은 책을 찍어 올린다. 서로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주며 응원해 준다. 혹시 알츠하이머에 걸릴지도 모르는 내 뇌를 건강하게 해 주고, 인지력도 높여준다니 괜찮지 않은가? 3개월 정도 꾸준히 하면, 변화된 나를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엔 우리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책’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