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한옥 떠받들던 나무들… 전시관에 몸 누이고 관람객 맞이

[공감공간]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관

2025-01-23     유경종 기자

전통건축물 수리 중 수습한 다양한 부재들
기둥, 대들보, 공포… 기능도 모양도 제각각 
옛 건물의 속살과 만나는 흥미로운 나들이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건물 안에 전시관이 있다. 

[고양신문] 연초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를 방문해 전시를 구경했고, 무대예술지원센터에서 열리는 갈라콘서트도 관람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관이다. 파주 헤이리마을 인근에 사이좋게 모여 있는 전시장소를 찾는 문화 나들이가 이달에만 벌써 세 번째다. 세 곳은 문화예술분야 국립 기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루고 있는 콘텐츠는 저마다 다르다. 특히 이번에 방문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통건축에 사용되는 부재의 특징과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전문성과 차별성을 지닌 전시관이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는 국가유산청 산하 특수법인인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의 설립에 발맞춰 2017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의 부재와 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그밖에도 전통건축물에 대한 조사, 수리기술 연구, 전통기법 전승 등이 이뤄진다. 전시관은 조금 늦게 2022년에 개관했다. 센터가 소장한 부재와 콘텐츠들을 시민들에게 공개해 전통건축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려는 취지다. 관련 분야 연구자나 전문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일반인이 방문해도 무척 흥미진진한 관람체험을 할 수 있다.    

흥선대원군 집무실이었던 '운현궁 아재당'을 수습 부재를 활용해 센터 마당에 재건해놓았다. 

보존 부재로 재건한 ‘운현궁 아재당’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가장 먼저 본채와 부속채, 사주문과 담장을 모두 갖춘 멋진 한옥건물이 방문자를 반긴다. 고종의 부친인 흥선대원군이 집무실로 사용했던 유서 깊은 건물인 ‘아재당(我在堂)’이다. 대원군의 사가였던 운현궁에 지어졌던 이 건물은 운현궁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매각돼 요정과 가옥 등으로 사용되다가 해체되는 파란 많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후 부재를 보관하고 있던 문화재청에 의해 재작년 현재의 자리에 재건됐다.

아재당은 한옥 고유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특히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건축부재들을 눈여겨 보게 된다. 전통건축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나무로 만든 기둥과 서까래, 문짝들이 건물을 단단히 받치는 화강석 기단, 하얀 회벽, 벽돌로 쌓은 연도와 단단하게 아귀를 맞추고 있다. 마침 마당이 흰 눈에 덮여 한옥이 앉아있는 풍경에 깔끔한 여백을 만들어준다.

시간과 함께 변형되는 전통 부재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니 기운찬 서체로 ‘전통愛 지혜, 건축愛 미래’라고 써넣은 서예작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센터가 지향하는 가치를 표현한 문장인 듯하다. 한쪽 벽이 통유리창으로 시원하게 트인 로비에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 경주 불국사 다보탑, 창덕궁 소요정,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 주요 전통건축물의 뼈대를 재연한 모형들을 전시했고, 옆에는 실물사진을 곁들인 해설을 적어놓았다. 

하나하나 차분히 관람하다 보니, 비슷비슷해 보이던 전통건축물들이 저마다 다른 구조와 설계를 가졌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건물 모형 외에도 조선시대 궁궐 굴뚝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 경복궁 자경전 굴뚝의 십장생 그림, 기능성과 미적 요소가 결합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 결구체(재연) 등의 전시물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전통건축물의 구조를 보여주는 모형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높은 천장 끝까지 뻗어 올라간 굵은 나무 기둥 4개가 서 있다. 법주사 대웅전, 화암사 극락전 등을 보수하면서 수습한, 실제 건물을 버티고 서있던 기둥들이다. 수종은 잣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으로, 하나같이 400년이 넘은 목재들이다. 높이는 6m가 넘는 것도 있다. 

오랜 세월 들보와 기와를 떠받드는 동안 혹은 휘어지고 혹은 속이 비어버린 기둥들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변병되거나 와해될 수밖에 없는 전통건축부재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져 관람자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동시에 전통건축부재의 보존과 수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수백년 동안 건물 지붕을 떠받들고 있었던 나무 기둥들. 

불에 그을린 목재로 올린 숭례문 지붕 

전시장 안쪽에도 다양한 부재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길이가 8m에 이르는 불화사 대웅전 추녀처럼 거대한 것도 있고, 주두나 소로처럼 연결부위를 잡아주는, 손바닥만큼 작은 부재들도 있다. 부재들 중에는 여전히 단청색을 입고 있는 것들도 있는데, 희미하게 바랜 색감이 독특한 느낌을 전한다. 이런 전시물은 옛 부재와 새로 만든 부재들을 맞물려놓아 실제로 사용될 때의 구조와 기능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평소에는 전혀 몰랐던, 전통건축부재라는 새로운 분야에 관람자의 눈높이에서 입문하는 재미가 가득하다.       

바로 옆 전시장에서는 ‘같이, 가치; 600여년 숭례문의 기억과 기록’이라는 제목의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08년 발생한 방화 사건으로 당시 국보 1호였던 숭례문이 불길에 싸여 내려앉았었는데, 화재 현장에서 수습한 잔존 부재를 재사용해 숭례문 2층 문루 일부를 전시장 안에 재현해놓았다. 불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한 목재들이 긴박했던 그날을 떠올리게 하고, 멀리서만 바라봤던 숭례문 지붕의 복잡한 내부 구조가 투시경을 들이댄 듯 속살을 드러낸다. 

2008년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수습한 부재를 활용해 재현한 숭례문 지붕 일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을 다시 호출해낸 이유는 국가유산 원형보존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벽면 설명에는 숭례문의 역사와 기억,  화재 복구를 위한 노력 등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고, 방문객들이 색색의 포스트잇에 적은 응원메시지도 붙어있다.

마지막 코너는 목재, 석재, 철재 등 전통건축에 사용된 재료의 물성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가장 중요한 목재는 잣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등 대표적인 수종의 단면을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전시했고, 석재는 서로 다른 특성과 질감을 지닌 돌들이 사용된 문화재들을 사진으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소개했다. 

전통건축에 사용되는 다양한 목재들. 

나홀로 전시공간 독점하는 쾌감 

앞서 방문했던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나 무대예술지원센터와 달리,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관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평일이긴 했지만, 기자가 방문한 날 다른 방문객은 한 명도 못 만났다. 주말과 휴일에 문을 열지 않고, 오후 5시에 관람시간이 종료된다. 아무래도 운영 주체가 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라서 관람자 중심의 운영을 기대하긴 어려운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갈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공간마다 희귀한 전시물과 콘텐츠로 알뜰하게 채워졌고, 나홀로 넓은 공간을 독점하는 특별한 쾌감을 맛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평일 낮시간 나들이가 가능하다는 전제로 말이다. 

승용차를 가지고 가면 입구에서 인터폰을 누르고 “전시관 관람하러 왔다”고 말하면 경비실에서 게이트를 열어준다. 주차료와 입장료는 무료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관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 12
문의 031-929-8300

궁궐이나 정자각 추녀마루의 장식기와들. 서유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익살스럽게 표현됐다. 
건물 로비 역시 다양한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본채와 부채, 담장과 사주문을 갖춘 아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