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생태칼럼] 생태적 회복탄력성

공학과 달리 여러 개의 평형점 갖는 생태계 장항습지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속성 지녀 “시민 모니터링의 품, 활짝 열려 있어”

2025-02-13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2006년 장항습지에서 마주친, 곁을 가까이 주는 고라니. [사진=에코코리아]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고양신문] 용수철이 탄성한계를 넘으면 회복력을 잃고 늘어져 버린다. U자형으로 구부러진 철판 위를 구르는 쇠구슬도 정상적인 범위에서는 바닥으로 돌아오려는 탄력성을 가지지만, 과도한 힘을 가하면 그릇 밖으로 튕겨져 나가버린다. 충격을 받은 시스템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공학에서는 회복력이라고 부른다. 생태계는 어떨까. 공학적 회복력이 원래 평형점으로 귀환을 의미한다면, 생태적 회복력은 다양한 평형점을 가지고 있어 차이가 난다. 한번 구부러지면 회복되지 않는 용수철과는 달리, 생태계는 여러 개의 평형점을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큰 충격의 교란을 받아 원래의 평형점을 벗어나더라도 다시 새로운 평형점에 도달한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복수의 평형점에 도달할 수 있는 생태적 회복력을 회복탄력성(ecological 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장항습지를 보자. 2000년 초반 장항습지는 지금의 모습과 차이가 많았다. 당시엔 DMZ와 같이 이중철책 속에 외부인 출입이 극도로 통제되어 있었다. 원시상태의 습지숲과 인간보다 많은 야생동물, 말그대로 아프리카 세렝게티를 방불케하는 야생이 살아있었다. 사방팔방 고라니가 뛰어다니고 너구리와 삵이 대낮에 어슬렁거렸다. 100마리가 넘는 고라니가 있었고,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멀뚱 쳐다보다 느긋하게 숲으로 들어가니 오히려 차가 기다리다 지나가곤 했다. 간조가 되면 갯벌이 강 가운데까지 드러나고, 밤이 되면 말똥게 무리가 갯벌을 덮었다.  

2006년 버드나무숲. [사진=에코코리아]

버드나무 숲 아래 개흙엔 게구멍이 빽빽하게 뚫려있었다. 이른 봄 숲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마다 거품벌레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었고, 그 아래 서 있으면 마치 비가 오듯 거품에서 물이 떨어졌다. 

봄·가을엔 수백 마리의 개리가 넓은 새섬매자기밭에 앉아 큼지막한 구덩이를 파며 먹이를 파먹었다. 개리들이 떠난 까만 갯벌 위에는 새파란 새순들이 돋아나 금방 다시 풀밭이 되곤 하였다. 여름 숲 위에는 해오라기 둥지들이 200여 개가 있었으며, 가까이 가면 똥오줌을 뒤집어 쓰기 일쑤였다. 한겨울 논에는 재두루미 150마리 정도가 겨울을 났다. 먹이를 뿌려주면 재두루미와 기러기떼는 물론이고 황오리와 고라니까지 몰려들었다. 여름철엔 저어새들이 갯골에 들어와 바로 코앞에서 먹이를 먹었고 논에는 뜸부기가 새끼를 데리고 다녔었다. 지금의 탐방데크 가운데쯤에는 미기록 외래식물인 긴포꽃질경이가 집단으로 자라고 있었다. 국내 최초 발견이었다. 

2010년 장항습지 먹이논. [사진=에코코리아]

25년의 시간 동안 장항습지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그동안 고양시와 김포시, 파주시 인구는 2배 가까이 증가해서 모두 합쳐 200만 명을 넘겼다. 새들이 서식하던 농경지는 고층 아파트촌으로 바뀌고, 논에는 비닐하우스와 창고,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놓였다. 야생화된 개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고 온 습지를 들쑤시고 다니며 고라니를 집단사냥하고, 겨울철새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다. 가시박과 서양쐐기풀은 이미 습지숲에 토착화되었고, 배스와 블루길과 같은 외래종도 들어온 지 오래다. 쓰레기는 곳곳에 쌓여있고 갯골은 토사로 막혀 갯벌은 갈대밭으로, 선버들숲은 육상식물로 천이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엔 참 좋았는데, 지금은 나빠졌다’를 이야기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분명 아니다. 자연생태계는 그림처럼 박제된 것이 아니라 역동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속성이 있다. 주변 환경의 ‘작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반작용하며, 다시 새로운 생태계로 전환해간다. 변화의 속도와 새롭게 도달하는 생태적 평형점은 아무리 뛰어난 생태학자라도 예측하기 어렵다. 생태계는 자기설계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교란과 적응을 통해 스스로 안정화되어 가는 자기조직화 시스템(self organizing system)이기 때문이다. 비록 교란이 일어나더라도 구성원 간에 적극적 소통을 통해 새롭게 안정화되며, 이때 도달하는 평형점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이다. 장항습지도 지금 그러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변곡점을 지나 다시 새로운 생태 평형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반응을 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습지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며, 회복탄력적이기 때문이다.   

2006년 갯벌 한가운데에 서 있는 고라니. [사진=에코코리아]

최근 지인으로부터 받은 조그마한 거울을 벽에 걸었다. 그 덕에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예전에 조그마했던 눈 옆과 볼 밑의 검버섯이 유난해 보인다. 다시 보니 여기저기 조그맣고 거뭇거뭇한 새로운 점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집 안에 모셔두었던 기능성 로션과 눈밑에 붙이는 팩을 찾아 덕지덕지 붙이니 아내가 핀잔을 준다. 그래, 소위 생태학자인 내가 평형점을 넘어버린 피부가 다시 뽀얀 생태계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하겠는가. 괜히 화장품만 축냈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성숙한 생태적 소양을 가진 시민으로 고쳐 앉아 독자들께 외친다. 떠나버린 청춘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꽃중년으로서 새로운 평형점을 찾자. 변곡점을 지나버린 피부 회복성을 위해 투자하기보다는 장항습지의 생태적 회복탄력성을 위해 봉사하자. 장항습지 시민모니터링의 품은 활짝 열려 있으니!!!

2007년 갯골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저어새. [사진=에코코리아]
2004년 긴포꽃질경이. [사진=에코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