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잔에 담아낸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
전시 <와인잔에 철학을 담다…> 유용상 화가 회화와 부조 30점 전시 3월 9일까지, 가좌동 공갤러리 카페
[고양신문] ‘와인 화가’라 불리는 유용상 작가의 전시가 일산서구 가좌동에 자리한 ‘공갤러리 카페(대표 구성욱)’에서 진행 중이다. <와인잔에 철학을 담다. 그리고 피어나는 와인꽃들…>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는 작가가 20년 넘게 작업해온 와인과 와인잔, 와인꽃 신작까지 3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화려한 작품들이 공갤러리 내부를 환하게 만든다.
유용상 작가는 와인을 단순히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는 거기에 음료 이상의 것을 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품 소재와 재료는 서양적이지만 작품 속에는 동양철학의 공(空) 사상이 담겨 있다.
작품에는 와인잔이나 종이컵이 등장하는데 음료가 담겨있거나 비어있다. 출렁이는 액체는 매일 흔들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상징한다. 잔이 흔들려야 맛이 배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고통이 있어야 참맛을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비어있는 잔은 무소유를 뜻한다. 이러한 비움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채움의 시작이다.
“삶의 과정과 와인의 숙성은 많이 닮아있습니다. 잔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것처럼 삶도 채워지고 비워지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뭔가를 계속 채우려고만 하는데, 어느 순간 결국에는 비워집니다. 행복의 절정은 무소유라는 동양사상과 일맥상통하죠.”
와인의 오묘한 빛은 현대인의 다양한 욕망을, 쉽게 깨지는 와인잔은 현대인의 불안한 모습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구속, 선택받은 사람, 천국의 정원 등으로 이름 붙여진 시리즈 작품들은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 ‘아름다운 구속’에는 와인잔 안에 벚꽃, 진달래, 개나리 등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봄꽃들을 넣었습니다. 꽃들은 인간의 모습을 추상화한 거예요. ‘선택받은 사람’에는 거꾸로 놓여 있는 빈잔들 사이에, 가득찬 와인잔 하나가 똑바로 서 있는데요,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욕망을 담았습니다.”
‘현대인’이라는 작품에는 와인병들만 등장한다. 병에는 등급이 매겨져 있고,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인간에게도 보이지 않는 신분과 계급이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운명임을 암시했다. 작품 ‘인스턴트 러브’에는 종이컵에 주스가 담겨 있다. 인스턴트 음식처럼 소비지향적인 사랑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들 중에는 ‘21세기 최후의 만찬’이 있다. 와인잔과 휴대폰이라는 현대적인 오브제를 넣어 시대의 모습을 담았다. 성경에서 와인은 보혈을 뜻하며 진리를 구현하는 표상이다. 예수님 앞에는 빈잔이 있고, 12명의 제자들 앞에는 색색의 잔이 놓여 있다. 제자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같은 장소에 모여 있지만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는 소통 부재 현상을 담았어요. 배경은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 타워와 명동성당을 넣었고요. 예수님은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모두 휴대폰에 빠져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상실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있을까요.”
작가는 작년부터 새롭게 와인꽃이라는 부조작업을 시작했다. 평면 회화가 입체적으로 재구성된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꽃향기들(부케)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구체화했다. 와인잔에 갇혀 있던 꽃들이 밖으로 나와 ‘천국의 정원’을 만들었다. 이 시리즈들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아크릴 물감을 다양한 색으로 혼합한 후 나이프로 하나 하나 컬러밴드를 만들어 건조하고, 이것을 꽃잎 모양으로 말아 나무 패널에 붙여서 완성했다. 고된 노동의 결정체다. 그 속에는 꽃밭이 있고 달항아리가 있고, 신비스러운 물방울이 있다. 그는 앞으로 이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저는 이런 과정이 수도승의 수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제가 꽃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덕분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지난 여름을 잘 견뎌낼 수 있었고요. 제 모습을 작업으로 보여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위안을 받으시기를 희망합니다.”
일산 전시는 처음이라는 유 작가는 현재 인사동에서 전시 중이고, 3월에는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전시가 예정돼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40여 차례의 개인전과 50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2016 올해의 예술가상, 서울 문화재단 작가, 2010 대한민국미술인상 청년 작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 현대미술관, 삼성 반도체, 포르투갈 대사관, 코스타리카 대사관, 헝가리 대사관, 전북도립미술관 등에서 소장 중이다. 이번 전시는 3월 9일까지 계속된다.
공갤러리 카페
고양시 일산서구 송산로 387-18
문의 0507-1315-4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