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생태칼럼] 창릉신도시가 쫓아내는 야생생물들
산란지 잃은 두꺼비, 번식지 훼손된 백로들 야생생물 기댈 곳 없애는 생태계 ‘테라포밍’ “문명이라는 이름의 사막만 남지 않았으면…”
[고양신문] 고양시에서 서울 중심부로 나가자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 창릉천이다. 이 주변에 창릉신도시가 계획됐다. 북한산을 등에 업고 물길이 앞에 있으니 어디를 봐도 명당자리다. 서울 코앞이라 분양가가 턱없이 높지만, 특히 땅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너나 할 것 없이 분양신청에 몰려들었다. 이제 곧 로또를 맞은 아파트 문명인들이 새집, 새도시에 입주할 것이다. 원래 이곳 땅에 누가 살았는지는 잊은 채로 말이다.
테라포밍(terraforming)이란 말을 기억하는가. 원래 우주개발 용어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이나 달과 같은 위성을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바꾸어 인간이 정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것을 말한다. 달이나 화성에 인간정착촌을 만드는 프로젝트는 냉전시대로까지 거슬러간다.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우주로 로켓을 날린 이유가 주인 없는 땅에 깃발을 먼저 꽂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 행성 개조(行星改造)라는 뜻의 테라포밍이 등장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면, 이보다 더 일찍 테라포밍이 자행됐다. 희귀식물과 향신료, 환각제를 찾아 유럽인들이 항로를 개척해 찾아낸 땅에 선주민들을 몰살시키고 그들의 삶의 장소를 서구식 이름으로 제멋대로 바꾸었다. 원래 자연을 유럽인을 위한 토지로 개간하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가축 농장으로 만들었다. 유럽 침략자들이 ‘야만’의 땅을 외계행성을 개척하듯 유럽식으로 개조한 것이 바로 테라포밍이다. 그런데 이런 야만적인 테라포밍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바로 창릉신도시가 그렇다.
두꺼비 집단산란지, 배다골습지가 위험하다
배다골습지는 한때 두꺼비 1000여 쌍이 찾아와 이른 봄부터 사랑의 향연을 벌이던 습지다. 서울-문산도로가 나고 잠시 200쌍 정도로 줄었지만, 다시 회복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토지 보상이 끝난 습지에는 그나마 지하수로 물을 대던 펌프마저 사라졌고, 폐그물이 방치되어 있다. 이미 갈대와 부들로 메워졌고, 물이 메말라 습지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그나마 서너 개의 작은 연못에 빗물이 얕게나마 남아 있었다. 기껏해야 100여 마리가 다였다.
연못에는 먼저 도착한 작은 수컷들만 오매불망 암컷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간혹 알을 배에 가득 담은 암컷이 나타나면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이러다 암컷이 죽겠다 싶을 정도였다. 주변 밭이 메워지고 펜스가 쳐지면서 덩치 큰 암컷들이 많이 줄었고, 알 낳을 터가 좁아지니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탓이다. 이런 상황에 개발자나 관리자나 입주희망자나 이들 두꺼비 ‘선주민’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돈에만 미쳐 있다.
사정없이 파헤쳐진 도래울 백로 번식지
새도시 예정지 안에는 고양시에 마지막 남은 백로 번식지가 있다. 개발 계획 당시 환경영향평가 협의 때는 이들 집단번식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번식지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공론화된 적이 없다. 예민한 서식지는 공사 시작 전과 공사 중 그리고 공사 후까지 모니터링하고 매번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아무런 후속 절차가 없었다.
올봄 백로 번식지는 소나무들이 베어지고 주변 땅은 사정없이 파헤쳐졌다. 3월 초부터 둥지를 틀기 시작한 왜가리들이 위태롭게 자리를 잡았으나 둥지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앙상한 한 나무에 대여섯 개 둥지가 들어서기도 했다. 자리가 모자라니 잦은 다툼도 이어지고, 그러다 새끼가 떨어져 죽기도 했다. 왜가리 번식이 끝나면 중대백로, 쇠백로, 황로, 해오라기까지 번식해야 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지표종으로 귀하디귀한 흰날개해오라기까지 번식했다는 학생 시민과학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문명인의 무관심 속에 이들의 땅은 무자비하게 테라포밍되고 있다.
극단의 고통으로 내몰리는 생명들
생태칼럼리스트로 글을 쓴 지 벌써 5년 차가 되어 간다. 그러나 요즘처럼 글쓰기 힘든, 아니 쓰기 싫었을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계엄 우울증, 후진 정치와 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반복되는 실망감, 거버넌스의 실종, 동시다발적인 재난 상황이 반복되니 정신적으로 아노미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정신적 고통이라도 자연과 야생을 만나면 치유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자연은 야만의 문명 앞에서 테라포밍되고 있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야생생물의 서식지가 훼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야생의 비인간들은 인간들의 야만적인 행동으로 극단의 고통을 겪고 있다.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고 이들을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생태적 사막만이 남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