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칼럼] 마침내, 봄

87년생 신지혜

2025-04-04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
4월 4일 오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에 환호하는 안국역 인근 집회현장의 시민들. [사진=남동진 기자]

[고양신문] 잔혹한 겨울이었다. 12.3 내란의 밤부터 123일 만에 헌법재판소가 내란수괴에게 파면 선고 내릴 때까지. 국민에게 총구 겨눈 자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국민을 ‘적’으로 여겨 ‘제거’하려 치밀하게 계획된 내란을 저지른 자에게 국군통수권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위헌이자 불법인 내란을 정당화하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선거에 ‘부정 선거’ 꼬리표를 붙여 민주주의 기본 전제도 흔들려 했던 자는 파면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때까지 기나긴 겨울을 보냈다.  

광장을 지킨 시민은 긴 겨울 동안 눈과 비, 그리고 차디찬 바람만 견뎌야 했던 것은 아니다.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함께 슬퍼했고, 거친 바람을 맞으면서도 꺼지지 않는 산불 생각에 애가 탔다. 전시도 아닌데 군경을 동원했던 내란에 대한 충격과 분노에 이어 내란 이후 벌어진 비극적인 참사에 대한 상심도 시민의 몫이었다.   

상처에 ‘참사 기획설’이라는 소금을 뿌려 내란수괴를 구명하는 데 재난을 이용하는 이들의 인면수심도 보았다. 내란 정당화를 위해서라면 피해자 아픔을 짓이겨서라도 국민 분열에 열중하는 그들의 본모습이었다. 내란동조자들은 민주사회라면 차별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내세워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극우였다. 반중·반공·소수자 혐오 등으로 세를 키운 극우와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국민이 아닌 권력을 지키기 위해 손을 맞잡는 것도 똑똑히 보았다.

인권의 보루여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에 명시된 인권을 망가뜨리려 한 계엄을 조사하기는커녕 내란수괴에게 특혜 주라고 주장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았다. 국가인권위원장은 내란수괴 체포영장 발부한 법원을 때려 부수는 등 삼권분립을 해치는 폭동을 저지른 이들을 구속하는 게 ‘인권’ 문제라고 주장했다.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읊으며, 폭력을 선동하기도 하는 내란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오염시켜 바스러뜨리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럼에도, 폭력과 폭언을 무기로 나선 극우 내란세력에게 맨몸으로 맞서는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 손에 쥐어진 것은 형형색색 빛을 내는 응원봉이었다. 내란의 밤에 국회를 지켜냈고, 남태령에서는 트랙터 길을 열어 연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내란 수괴 체포하라며 한남동 관저 앞에서 눈 맞으며 밤을 지새운 이들의 결기는 감동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주말도 헌납하고 탄핵을 외치며 4개월을 살아낸 위대한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인권을 죽이려 한 지독한 겨울을 지나 마침내 맞이한 민주주의의 봄이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

‘나’를 소개하는 많은 시민을 보았다. 극우가 원하는 세상으로 한 톨만큼도 내어줄 수 없다는 것을, 극우가 혐오하고 조롱하는 정체성을 드러내 건네는 말 속에서 존중받고 존엄하게 살아갈 세상에 대한 바람도 보았다. 증오를 키워야만 대열을 유지할 수 있는 앙상한 극우의 말이 허약한 사회 신뢰를 뚫고 영향력을 미쳤던 겨울을 목도하며 함께 견뎠다. 함께 맞이할 봄에, 불안과 불평등을 줄여 혐오 대신 나답게 살아가는 것을 존중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담아내는 것 역시 시민의 손에 달렸다. 역사를 반복하듯, 찬란한 봄을 지나 다음 계절도 맞이할 위대한 시민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