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참여 넘은 사회적 연대…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졌어요"

10차례 탄핵 집회 참여한 고양 청년 임다은씨(20대, 여)

2025-04-08     남동진 기자
12·3 비상계엄 123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이 확정되는 순간.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관저 인근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를 생중계로 지켜보던 시민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정민 오마이뉴스 기자]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구체적인 신원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고양신문] “그동안은 ‘해봤자 바뀌겠어?’ 싶었던 게 사실이에요. 뭘 해도 안된다는 절망감이 컸는데, 이번엔 정말 바뀌는 걸 보고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어요. 이제는 이런 목소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자리를 누군가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양시에 거주하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20대 직장인 임다은씨는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을 집에서 생중계로 지켜봤다. 임씨는 “헌법재판관들이 군더더기 없이 조목조목 판결문을 읽어가는데, 그동안 쌓였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했던 작년 12월 3일 밤 11시, 직장 퇴근 후 아버지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라디오 뉴스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했다. “순간 이게 현실인가 싶었어요. 무섭기도 하고, ‘이러다 정말 나라가 뒤집히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죠.” 임씨는 계엄 해제 당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한남대로 등지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10차례 가까이 참여해왔다. 때로는 혼자 퇴근길에, 때로는 주말마다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던 사실 자체가 임씨에게는 충격이었다.

“저희 가족은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예전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부모님과 함께 집회에 나갔기 때문에 집회 자체가 낯설지 않았어요. 다만 이번엔 좀 달랐죠.” 임씨가 가장 인상 깊게 꼽은 건, 이번 탄핵 집회의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 낸 독특한 분위기였다.

“예전엔 민중가요 틀고 머리에 띠 두르고 다 같이 구호 외치던 분위기였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K팝이 흘러나오고, 응원봉이 번쩍이고, 문구도 재치 넘치는 깃발들이 많았어요.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하나같이 뚜렷했고, 오히려 더 강한 힘이 느껴졌어요. 진짜 새로운 집회의 시대가 열렸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앞에서 열린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주최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9차 범시민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피켓, 응원봉, 깃발 등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제공= 권우성 오마이뉴스 기자]

임씨는 특히 관저 인근 한남대로 집회 당시의 기억이 깊게 남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집회현장에 갔는데, 우리가 있던 자리가 쓰레기 임시 수거 장소 바로 앞이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쓰레기가 쌓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정리를 시작하셨죠. 그 모습을 본 다른 시민, 자원봉사자들도 하나둘 모여서 정리를 도왔고, 맨손으로 쓰레기를 담는 여성분, 사비로 쓰레기봉투를 가져오신 시민도 있었어요. 그 순간 ‘우린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유대감과 연대감을 강하게 느꼈어요. 이런 모습들, 평소에는 보기 힘들잖아요.” 

이러한 경험을 통해 탄핵 집회는 임씨에게 단순한 정치 참여를 넘어선 사회적 연대의 장으로 다가왔다. “서로 따뜻한 음료를 건네고, 은박지와 깔판을 나눠주는 모습, 추운 밤을 함께 견디던 사람들…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던 그 분위기, 정말 따뜻했어요. 우리가 같은 이유로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됐어요. 함께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죠.” 

이번 탄핵 정국 속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이들은 임씨와 같은 20~30대 여성 집회 참여자였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SNS에서도 여성 청년층들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임씨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다들 정치에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엔 달랐어요.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독단적인 정치 운영에 대한 분노가 쌓여왔고, 계엄 시도는 그 정점을 찍었죠.”

탄핵 선고가 이뤄졌지만 우리 사회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임씨 또한 그동안 광장에서 외쳤던 목소리가 ‘대통령 탄핵’을 넘어 ‘사회 대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예전 박근혜 탄핵 이후 우리 사회가 정말 바뀌었나 되돌아보면, 여전히 차별과 불평등이 많다고 생각해요. 이번 국면을 겪으면서 정치가 단지 선거 때만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참여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임을 느꼈어요.” 임씨는 대표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잖아요. 더는 교육이 정치로부터 고립되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 파면 결정을 내리자 서울 안국역 인근 집회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남동진 기자]

청년 세대가 직면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전했다. “국민연금 개편 문제,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 등으로 인해 청년들은 점점 희망을 잃고 있어요. 평범한 직장인이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이 계층 간 갈등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임씨는 이번 집회 참여 경험을 통해 “정치는 내 삶과 직접 연결된 문제이며, 나 같은 청년도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사회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는 바람을 전했다. 

“뭔가 자리를 마련해줬으면 해요. 가령 지역 내에서 자신들의 정치 문제를 청년들이 직접 참여해 해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광장의 목소리를 지역에서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