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출간 30년, 왜 지금 다시 읽어야 할까

한길사, 30주년 기념 ‘독자와의 만남’

2025-04-16     정미경 전문기자

1995년 첫 권 출간, 2007년 15권 완간  
인문독서 열풍 이끌며 400만 권 판매
“개방적 세계관, 관용적 리더십 재조명”   

출간 30년을 맞은 『로마인 이야기』. 12년에 걸쳐 15권이 완간됐다.  

[고양신문]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왜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할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벚꽃이 흩날리던 지난 12일 오후,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자리한 한길북하우스(대표 김언호)에서 『로마인 이야기』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는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한길사 백은숙 편집주간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신헌철 전 SK에너지 부회장, 류재화 편집자, 김미옥 서평가 등 『로마인 이야기』의 애독자 40여 명이 참석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1995년에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출간되면서 한국의 독서계를 강타했다. 당시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저자의 ‘책 쓰기’와 출판사의 ‘책 만들기’, 그리고 독자들의 ‘책 읽기’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현재까지 1136쇄에 누적 판매 부수 400만 권에 달하는 경이로운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

환영인사를 하며 책 출간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 김언호 한길사 대표.

행사에서 김언호 대표는 출판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1976년에 창업한 한길사는 지금까지 3500여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그 중 『로마인 이야기』는 서양사의 줄기를 탐험하는 뜻깊은 대하 역사평설입니다. 출간 동의를 얻기 위해 1993년에 로마에 가서 시오노 나나미에게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로 만들고 싶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꿈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일본 작가가 썼지만, 한국 사회를 크게 변화시킨 책입니다.” 

책은 매년 한 권씩 총 15권이 완간됐다. 로마의 창건부터 서로마 멸망까지 약 1200년의 역사를 다루면서, 로마인의 열린 세계관과 개방주의, 관용의 리더십 등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책의 출간 전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50명에게 가제본을 나눠준 후 토론하는 ‘시독회’를 가졌고, 우수 독후감을 쓴 독자들과 함께 로마의 역사 현장을 답사했다. 출판의 취지에 호응하는 기업도 있었다. SK그룹에서는 임직원 2400여 명이 이 책을 읽기도 했다. 그들의 독후감은 『SK에너지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라는 책으로 묶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책과 관련된 인연을 들려줬다. 신헌철 전 SK에너지 부회장은 “이 책을 통해서 수많은 임직원들이 영향을 받아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 덕분에 제가 6년 동안 회사를 크게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세계로 도약하려면 인문과학도 중요하다. 바람을 타고 번져 나가는 산불 같은 책이었다”고 전했다. 

추미애 국회의원은 “IMF가 오고 DJ 정권 교체가 성공한 후에 처음 읽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DJ 정치 철학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생각난다”면서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는 세계 질서의 보편성을 확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미국은 자기가 만든 보편적인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어 세계인들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는 소감을 밝혔다.

(왼쪽부터) 신언철 전 SK에너지 부회장, 추미애 국회의원, 김석희 번역자의 편지를 대독하는 류재화 편집자. 

김미옥 서평가는 ”작년 연말의 비상계엄 이후, 젊은 층이 집회에 참석한 것은 독서의 힘이 축적된 결과라 보고 싶다”면서 “역사가 후퇴할 때 막을 수 있는 힘은 시민들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류재화 편집자는 이 책의 번역으로 명성을 얻은 김석희 번역가의 편지를 대독했다.
“1994년에 시작해 2007년에 마지막 15권의 번역을 끝낸 다음, 소회를 밝힌 적이 있는데요. 그때의 심정은 기나긴 전쟁을 치르고 나서 시골에 정착한 로마 병사의 기분 같았습니다. 카이사르를 따라 갈리아 전선을 누비고 다니던 로마 병사가 전쟁이 끝난 뒤 시골에 정착한 것처럼 저도 대장정의 번역을 끝내고, 고향 제주에 집을 짓고 살고 있어요.”

이어 그는 “대한민국의 권력자, 지식인, 사회 지도층의 민낯을 보게 되어서 안타깝지만, 이런 상황에서 로마 공화정을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긍정적인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30년 전에 독자들은 이 책에서 천년 제국을 경험한 로마인들의 지혜와 실행력을 더듬으며 IMF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뒤 한국 사회는 또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 중의 하나는 역사의식이나 인문정신의 빈곤일지도 모른다. 로마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인들의 관용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으로 지력, 설득력, 자제력을 꼽았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절박한 지도자상이라 할 수 있다. 책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아름답게 구현하고자 하는 도구이다. 이 책이 꾸준하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백은숙 편집주간의 사회로 진행된 출간기념식 모습.
"로마인 이야기 출간 30주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