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경북 초대형 산불 유감
오충현 동국대학교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고양신문] 지난 3월 말 우리나라 산불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이 경북 의성군, 안동시, 영양군, 청송군, 영덕군 일원에서 발생했다. 이번 산불은 인명과 재산 피해 모두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의 대형 산불에서는 인명피해가 적었던 반면 이번엔 사망자 30명을 포함해 총 75명의 사상자가 발생, 인명피해 또한 심각했다는 점이다.
산불피해면적은 시민단체 발표와 정부가 발표한 면적에 차이가 있지만 정부는 총 4만8000여 ha를 산불영향구역으로 발표했다. 재산과 국가유산 피해도 심각했는데, 주택 약 3000여 동이 전소되고, 국가유산 피해 30건과 농업시설 2000여 건 등 시설 피해도 발생했다. 이번 산불은 내륙에서 시작해 영덕 바닷가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 결과 어선 29척, 양식장 5개소, 양식어류 47만 마리 등 일반적인 산불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어촌지역 피해까지 발생한 매우 드문 산불피해 사례를 기록했다.
이번 산불 역시 입산자의 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산불은 건조한 미국 등에서 발생하는 산불과는 달리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람의 과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의 경우 실화로 시작됐지만 당시 경북지역의 오랫동안 지속된 가뭄과 고온, 강한 바람이 결합하면서 역대 가장 큰 산불로 확산되고 말았다. 이번 산불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속시원한 답변이 정부로부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산림청이 그동안 소나무 중심으로 조림사업을 해왔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소나무를 육성하기 위한 숲가꾸기 정책으로 참나무를 솎아벤 것이나 숲을 관리하기 위해 조성한 임도가 산불을 확산시키는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와같은 주장에 대해 시민들은 과연 그것만이 주요 원인일까, 다른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번 대형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 받는 소나무는 불에 잘 타는 특징이 있어서 산불이 발생하면 쉽게 끄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특성에 잘 맞는 대표적인 수종이라는 점 때문에 산불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소나무가 잘 자라는 산림을 봉산이나 금산으로 정해 보호했다. 이와같은 역사적 배경과 상관없이 소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매도되고, 소나무가 산불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치부되는 것은 아타까운 일이다.
소나무는 사람이 심고 가꾸는 경우도 있지만 산능선과 같은 지역은 바람도 심하고 척박해서 소나무 이외의 다른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산이나 설악산 등과 같은 국립공원을 방문해 보면 계곡과 산중턱은 주로 참나무로 되어있지만 능선에 소나무가 자라는 것은 이와같은 원인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산불을 막기위해서는 정주지나 사찰 주변으로 불에 강한 참나무나 은행나무를 심어 방화수림대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림에는 해당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들을 토양특성에 맞게 도입해서 심거나 자연적인 복구에 맡겨 관리해야한다. 또 적절한 숲가꾸기를 통해 숲을 건강하게 가꿔주고, 필요한 경우 임도를 개설해 숲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대책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산불이 무서워서 소나무를 심지 않거나 숲가꾸기나 임도개설을 미루는 것은 자칫 산림이 가지고 있는 종합적인 기능을 산불 대응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산림은 평소에는 국민들에게 좋은 경관과 휴식장소, 목재 생산장소로서 기능도 하고, 야생동식물들이 잘 살아가는 공간을 제공하되,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후변화시대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산림관리와 산불 대응만으로는 이번 경북산불과 같은 대형산불을 막을 수 없다. 상식을 넘어서는 다양한 산불대책들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상식에 가까운 소나무 문제나 숲가꾸기, 임도 등의 문제에 대해서만 산림청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물론 산림청도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산불 피해는 단순히 산림청과 같은 하나의 정부조직 노력만으로는 대처하기 힘든 국가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재난이다. 산불을 끄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생업에 대한 지원방안 등을 마련해야하는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한 중대사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앙정부의 대응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너무 안타깝다.
평화시기 비상계엄선포라고 하는 특수한 사태 속에서 정부는 재난대응과 국민보호라고 하는 정부 역할을 체계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특히 재난지역 도지사가 재난대응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포기하고 대선에 출마하는 상황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형 재난에 당면한 도민을 포기하는 도백이 국민을 책임진다고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일일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성명이라도 발표해야하는 상황인데 누구하나 책임지고 사과성명이나 책임을 지는 당국자가 없는 것도 허탈하다. 언론과 시민단체도 산불에 대해 정말 상식적인 내용으로 산림청만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이 이번 재난 대응에 대한 본질일까? 혹시 이런 논쟁이 정말 중요한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또 다른 대형산불과 같은 기후재난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이번 산불을 계기로 우리는 기후재난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성하고 준비해야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수를 두번하면 안된다.
이번 산불로 돌아가신 분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며,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지면을 빌려 위로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