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서 폼나게 술 먹으려다 책모임이 됐네요”
<책읽는 사람들_지니회>
10년 훌쩍 넘긴 장수 책모임
다양한 직업, 구속 없는 멤버십
[고양신문] “여성회원 3명이 있던 독서회에 감히 손위 남성이 끼워달라 요구하여 회원이 되고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고’ 했지만 책모임은 꾸준하게 지속되어 왔습니다. 저는 매달 선정된 책은 되도록 사서 읽기로 했기에 쌓아 놓으면 저의 작은 키를 넘길 것 같습니다. 매번 다음 달 책 선정은 자유롭게 추천합니다. 저는 문과 출신이라 아무래도 읽는 책들이 관련 분야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데 모임 구성원들이 다양하다 보니 의학 과학 등의 자연 과학책을 읽을 수 있어 편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저도 ‘지니 독서회’를 참여한 지 10년 이상 되었습니다. 많은 책을 회원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 작가 초청 모임도 여러 번 가졌습니다. 각자 살아가는 일상과 현실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어느 인문학자가 자유는 단지 권리가 아니라 획득해야 할 기술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만의 렌즈가 아니라 다양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기술이자 아무도 상상한 적 없는 무언가를 상상해서 아름다움이나 의미나 영감을 찾는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독서회를 통해 옹색해지려는 나의 생각과 삶에서 좀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지니회’ 독서모임은 10여 년 전 지역에서 일하는 3명의 ‘여자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그냥 술 먹으면 좀 미안하니까 책 한 권씩 끼고 먹자”는 그런 만남이었다. 그렇게 ‘뻔뻔한’ 술모임에 아는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어느 순간 ‘진짜’ 책모임이 되었다. 정형외과 의사, 지역신문 관계자, 한의사, 시민단체 대표, 정당 관계자, IT전문가, 학교 선생님 등 다양한 회원들이 참여했다. 멤버가 다양해지니 읽은 책도, 형식도 더 풍부해졌다. “함께하는 회원분들의 삶에서 배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독서회의 의미는 저의 좀 더 자유로운 삶에 도움이 되었다는 겁니다.” 지니회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고광석 원장(대명한의원)의 참여 평이다.
고 원장은 4월 둘째 딸을 결혼시키고 그 답례품으로 『북한지리지』라는 매우 두꺼운 책을 지니회 멤버들에게 선물했다. 덕분에 4월에는 모두가 북한지리지 책을 읽고 토론을 나누었다. 그동안 몰랐던 압록강 뗏목, 조중협약에 따른 국경 조정, 백두산 천지와 삼지연의 아름다운 모습, 청진 김책시(성진) 신포 함흥에 관한 인물과 지리 역사, 남북철도와 시베리아 철도의 모습을 사진과 이야기로 소개하는 매우 희귀한 책이었다. 4월 지니회에서는 책에서 소개된 생생한 북한 이야기와 함께 새로 파주 장학관으로 일하게 된 회원, 중국진출을 하게 된 구성원들의 소식을 나누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 딸을 결혼시킨 고 원장의 자랑은 덤이었다.
김대식 『빅퀘스천』, 강용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김기현 교수의 『인간다움』,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건호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태가트 머피의 『일본의 굴레』, 이욱연의 『홀로 중국을 걷다』, 김민섭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이충녕의 『어떤생각은 나의 세계가 된다』,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원영·김초협 『사이보그가 되다』. 2024, 2025년 지니회가 읽은 책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주강현, 오건호, 이욱연 작가 등 다양한 저자 초청 특강도 지니회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멤버가 다양하니 네트워크를 활용한 초청이 가능했던 것. 모임이 10년이 넘다 보니 다들 읽은 책을 기억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지만 지니회가 지속되는 이유는 구속 없는 멤버십, 자유로운 추천, ‘음주독서’가 아닐까.
“이 모임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분위가 장수의 요인인 것 같습니다. 모두 다 모이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래도 과반 이상 정도는 항상 모이는 수호지 양산박의 걸물들처럼. 한 달에 한 번 책을 정독할 기약도 없는 눈이 침침한 나이가 되니 이 모임이 더욱 소중합니다.”
지니회의 4번째 멤버인 윤주한 전 고양신문 발행인의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