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참사·재난에서도 배우지 못했다면

고양 프리즘

2025-05-16     김진이 전문기자
2019년 12월 백석동 알미공원 인근 오피스텔 공사현장 인근에서 발생한 땅꺼짐 사고 현장.

[고양신문] “고양시나 서울시같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소위 ‘땅꺼짐’ 지도를 만들고도 공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집값 떨어질까봐요!”

일산의 한 고등학교 미디어 동아리 강의를 부탁받았다. 동아리의 16명 고1, 2 학생들이 대부분 언론 관련 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로 구성됐다는 설명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갔다. 14일 첫 시간, 지난 주의 고양신문 뉴스읽기를 했다. 
‘고양 땅꺼짐 7년간 34건… 가장 큰 원인은?’이라는 제목의 땅꺼짐 관련 기사를 함께 읽었다. 서울시가 작년 구축한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시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했고, 작년에 관련 용역을 마친 고양시 역시 해당 자료에 대해 사실상 비공개방침을 결정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왜 그랬을 것 같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바로 ‘집값’을 이야기했다. 이어서 공개, 비공개에 대한 의사를 물어보았다. 16명 중 14명이 ‘공개해야한다’고, 2명만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안전지도 공개, 왜 어려운 걸까.

서울시는 4월 23일 정보공개센터의 안전지도, 국회의원실에 제출됐던 관련 영향평가 용역보고서 등의 자료 공개 요구에 모두 비공개 통지했다. 이에 앞서 3월 28일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반침하 안전지도’(우선정비구역도)는 GPR탐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내부 관리용으로 제작된 지도로, 그 자체가 위험 등급을 나타내는 자료가 아니며, 관리를 위한 등급 구분에는 다양한 항목이 반영돼 있어, 공개할 때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거나 불필요한 오해와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 비공개의 법적 근거로는 ‘국가공간정보기본법’ 제33조(보안관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9조 등을 들었다. 정보공개법 제9조(제1항 제1호)에 따라 ‘다른 법률 또는 법률이 위임한 명령에 의해 비밀 또는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언제 땅이 꺼질까봐 염려하는 시민들에게 내가 사는 지역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이미 진행된 공사, 세워진 건물은 안전한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싶다. 정보공개법 제9조의 3항에는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역시 비공개 요건으로 적고 있다. 반대로 비공개로 인해 시민의 생명,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면? 

고양시 역시 2024년말 용역이 완료되어 곧 완성되는 ‘고양시 지반침하 안전지도’에 대해 사실상 비공개 방침을 밝혔다. “민감, 공적 정보가 다수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담당자는 실제 공개가 될 경우 ‘인근 지역 토지주, 부동산 소유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부동산 관련 이슈에 따른 민원들을 염려했다. 
작년 12월 열린 ‘지반 조사 및 관리대책 수립 용역’ 최종 보고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시는 지반침하를 9개 원인으로 구분해 각각의 원인을 전산화하고, 이를 공간정보시스템과 연계해 통합 플랫폼을 구축, 공공공사와 각종 인허가 시 활용,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활용과 제공에 시는 매우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제대로 원인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알더라도 이미 공사가 진행된 건물, 지하의 원인을 바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실상 공개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공공공사와 민간인 경우에도 인허가 시 필요한 경우에 정보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사실상 공개는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해당 부서의 설명을 들어보면 알아도 당장 해결이 어렵고, 공개여부는 시 담당자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번의 재난과 참사, 안타까운 사고를 접하며 뒷북식의 대책을 요구해왔다. 미리 안전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며 울분을 토로한다. 그러나 무엇이, 어디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대책을 마련하고, 안전을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서부화력발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고 등을 연이어 겪으면서 한 가지는 배울 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감추지 말고 털어놓고, 같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유가족도 배제하고, 쉬쉬하는 사이 원인은 감춰지고, 의혹은 눈덩이가 되어 갈등과 불신을 조장하게 된다. 공개에 따른 우려는 얼마든지 기술 지원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기껏 예산을 들여 무슨무슨 플랫폼이니 안전지도니 만들어놓고도 비공개를 고수한다면 당시 사고의 ‘면피용’ 용역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