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예초기를 돌린 시간이 들려준 이야기

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2025-05-23     김한수 작가
모판 만들기 작업풍경

[고양신문] 요즘 여주에서는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다. 

사월 하순에서 오월 초순에는 토종벼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이들 이십여 명이 모여서 손수 삼백오십 품종의 모판을 만들었고, 싹을 틔운 모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논에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와도 같은 손 모내기를 펼칠 예정인데 그 전에 트랙터가 물을 채운 논에 들어가서 흙을 곱고 평평하게 갈아엎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트랙터가 논에 들어가기 전에 누군가 예초기를 메고서 논둑과 논 비탈을 무릎 높이까지 점령한 풀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야만 한다는 점인데 내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십오 년 동안 해마다 농장에서 예초기를 돌려온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예초기를 등에 짊어지고 논에 들어갔다. 예초기를 돌려본 이들은 알겠지만 무더위 속에서 예초기를 돌리는 일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예초기를 짊어지고 논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오늘은 곡소리 좀 나겠구나, 나름대로 마음을 단단히 다져 먹었다. 

그런데 아뿔싸, 밭에서 예초기를 돌리는 일과 논에서 예초기를 돌리는 일은 노동강도의 차원이 달랐다. 다랑이 논의 논둑은 울퉁불퉁 걷기가 불편했고, 이 미터 높이에 달하는 논 비탈은 그 경사가 절벽으로 느껴질 만큼 가팔랐다. 그곳의 풀을 깎기 위해서는 무겁기 짝이 없는 예초기 날을 쉴 새 없이 어깨높이로 들어올려야 했고, 끊임없이 두 다리에 힘을 줘서 몸의 중심을 잡아야만 했다. 

논비탈에 예초기를 돌리는 모습

 

하필이면 내가 예초기를 메고 논에 들어간 날 여주의 기온은 섭씨 삼십삼 도에 달했는데 물을 가득 채운 논의 온도는 습도가 높은 탓에 훨씬 무덥게 느껴졌고, 물결에 반사되는 햇볕도 고약하기만 했다. 

더 큰 문제는 그날 하루 내가 풀을 정리해야 하는 논의 면적이 무려 천이백 평에 달한다는 점이었는데 예초기를 돌려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 논이 대평야처럼 장쾌하고 드넓어 보였다. 

내가 예초기인지 예초기가 나인지 분간이 안 되는 악전고투 속에서 해가 머리 위에 쨍하니 걸렸고, 뭐라도 먹지 않으면 똑 죽겠다 싶은 생각에 기진맥진한 몰골로 허위허위 논에서 빠져나오는데 때마침 마주친 내 또래의 이웃 농민이 농반진반 가여워하는 소리를 한마디 했다.

“막걸리를 안 잡숴서 그런가 우찌 그리 느리대요? 내가 했으면 두세 시간이면 끝났겠고만.”

하, 어이가 없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순간 나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번뜩 깨달았다. 동시에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그의 존재가 여간 커 보이지 않았다. 

딴에는 농사 좀 짓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던 나는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이들의 삶에 대해서 나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온 셈이다. 하긴 그게 어디 나뿐이겠는가. 

한 명 한 명의 농부들이 얼마나 서럽고 거룩한 세월을 견뎠고, 견디고 있는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렇다 할만한 관심이 없다. 농사가 왜 천하의 근본이라고 했는지 깊이 성찰해보고, 농부들이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생각을 우리 모두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한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