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들이 시작한 평화의 발걸음, 널리 퍼졌으면"

[특별인터뷰] DMZ 생명평화순례단 일문 스님 “종교도 사회 속에서 함께 공존해야 진보적 종교인들끼리는 마음 잘 맞아 DMZ 평화의 염원, 고양에 퍼졌으면”

2025-05-23     유경종 기자
DMZ생명평화순례를 앞두고 대자동 법문사에서 만난 일문 스님. 

[고양신문] 실천불가승가회와 불교기후행동 공동대표인 일문 스님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회참여적 인사 중 한 명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가톨릭 정의구현사제단, 개신교 목회자협의회 등 각 종교마다 실천적 조직들이 태동했다. 불교계에서는 실천불교승가회가 사회적 위기마다 세상과 소통하고, 때로는 타 종단과 연대하며 올곧은 목소리를 내왔다. 

일문 스님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9일부터 시작된 DMZ 생명평화순례의 장정에 참여해 타 종교인들과 함께 분단의 현장을 두 발로 걷고 있다. 순례가 시작되기 며칠 전, 덕양구 대자동 통일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법문사에서 일문 스님을 미리 만나보았다.

7대 종교 성직자 30여 명으로 꾸려진 2025 DMZ생명평화순례단은 19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분단의 현장을 따라 파주 임진각까지 18박 19일을 함께 걷는다.  [사진제공=DMZ생명평화순례단]

▮지난해 DMZ 생명평화순례가 처음 진행됐다.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사실 새만금 삼보일배와 같이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종교인들의 걷기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해 DMZ 생명평화걷기는 남양주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는 김규봉 신부님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수년째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함께 DMZ를 걸으며 평화를 향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불교쪽에 연락이 와 실천불교승가회가 흔쾌히 참여했다. 개신교 목사님도 함께 했고, 특이하게 일본의 불교종파인 ‘일본산묘법사’ 소속으로 10년째 철원에서 한반도 평화 기원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잇코스님도 합류했다.

▮어떤 경험이었나.

임진각을 출발해 고성까지 걸었는데, 한마디로 너무나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출가 40년 세월을 차분히 돌아보며 남은 삶에 대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신부님과 목사님 등 다른 종단 종교인들과 함께 걷고 생활하며 많은 얘기를 나눴고, 예배와 미사 등 다른 종교의 의식에도 참여하며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나뿐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참 좋았다. 내년에도 꼭 함께 걷자”고 약속했고, 올해 더 확장된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행사는 어떻게 준비했나.

한 달에 한 번 미팅을 하며 논의를 발전시켰고, 종교 연대기구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공식 합류하며 7대 종교(개신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가 참여하는 행사가 됐다. 작년과 다른 점은 DMZ 동쪽 끝 고성에서 출발해 서쪽을 향해 걷는다는 점이다. 6월 6일에 종착점인 임진각에서 ‘코리아 평화의날’ 행사에 참여하며 순례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해방 80주년을 맞는 해에 모든 종교인들이 연대할 수 있어서 기대가 크다.

▮참여하는 7대 종교 중 민족종교도 있고 천도교도 있던데.

민족종교가 갈래도 여럿이고 교세도 약하지만, 역사를 더듬어보면 7대 종단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종교와 보천교 등 여러 민족종교들이 일제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에 적극 기여했고, 큰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천도교 역시 동학과 3·1만세운동의 역사를 계승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선대 종교인들이 걸었던 역사를 존중할 가치가 있다. 

일본불교 승려인 잇코 스님(오른쪽 두 번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DMZ생명평화순례에 동참했다. 

▮일반적으로는 종교 간 소통이 쉽지 않은데.

그래도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보듯 종교가 충돌하며 전쟁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어떤 분은 우리나라의 종교 간 연대를 또 다른 K-종교문화로 전 세계에 확산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를 살펴봐도 다양한 종교권이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야 문명이 진보한다.  

▮올해 생명평화순례 기간 동안 대선이 치러진다. 

부재자 투표를 활용해 꼭 투표할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 현대사는 한 걸음 진보했다가 두 걸음 후퇴하는 역사를 반복했다. 새 정부에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시대를 역행한 쿠데타 옹호 세력들은 고립시키고, 건강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품이 넓은 정치를 해야 한다. 성급히 나가려다가 뒤로 후퇴하는 것보다는 더디더라도 반걸음씩 나아가는 게 낫지 않나. 그 과정에서 종교인들도 사회적 갈등 해소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비상계엄 전후에도 종교인들이 적시에 목소리를 냈다고 들었다.

윤 정권의 무도함이 한계점에 다다르던 지난해 10월, 강단을 지키는 교수들의 릴레이 성명 발표가 있었고, 이를 종교계가 이어받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윤석열 파면 선고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 윤석열이 크게 분노했다는 소리가 들렸고, 결국 12월 3일 밤 비상계엄 폭주를 감행했다. 이틀 후 개신교 목사님과 성도들이 ‘윤석열 폭정 종식 그리스도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불교가 이어받았고, 12월 12일에는 4대 종단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각자가 몸담은 종교는 다르지만,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뜻이 하나로 모아졌다.

실천불가승가회와 불교기후행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일문 스님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회참여적 인사 중 한 명이다.

▮보수적 종교인 중에서는 종교가 직접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는데.

사회가 위기를 맞고, 신도들도 그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종교인이 저 너머의 세계만 지향한다면 무슨 존재 의미가 있겠나. 종교도 사회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진보적 종교인들끼리는 소통이 잘 된다. 여러 날 동안 DMZ를 함께 걸을 수 있는 것도 그런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남북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서로가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도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변화의 순간은 곧 다가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남북 교류의 물꼬를 다시 터야 하고, 러시아 가스관 연결 등 서로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사업들도 추진해야 한다.

▮고양과의 인연을 들려달라.

2009년 고양에 잠깐 있다가 파주 문산에서 작은 사찰을 지켰다. 통일로 옆에 법문사 새 건물을 짓고 다시 고양으로 돌아온 건 3년 전이다. 지역에서는 ‘아시아의친구들’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평화누리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만년까지 평화누리를 열정적으로 이끌었던 고 최준수 목사님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덕분에 더 나이 들면 적당한 때에 한발 물러나려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DMZ 생명평화순례를 시작하며, 고양의 이웃들에게 인사를 남겨달라.

남북 평화가 접경지 고양의 희망이다.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하루 정도 함께 걸어보시면 더 반갑겠다. 특히 마지막 닷새 정도는 고양에서 가까운 연천과 파주의 DMZ 코스를 걸을 예정이기 때문에 찾아오시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일정과 코스는 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다. 신부님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시고, 스님들도 계시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만나실 수 있다(웃음). 물론 특정 종교가 없는 분들도 환영한다. 6월 6일 ‘코리아 평화의 날’은 고양과 파주의 활동가들이 준비를 맡은 행사다. DMZ에서 시작된 소통의 발걸음이 평화의 도시 고양에 퍼져나가기를 기원한다. 

고양시 대자동 통일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법문사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