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열의 고양 사(史)랑방] 서오릉 대빈묘와 장희빈 가족묘 

2025-05-24     윤병열 고양문화원 고양학연구소 전문위원

[고양신문] 장희빈(?~1701, 이름 장옥정)하면 우리는 흔히 인기 사극, 스타 여배우의 단골 배역, 궁중 암투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고 어느 정도의 연배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장희빈의 묘는 물론이거니와 그 가족들의 묘역이 고양시에 소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장희빈은 숙종의 후계자를 낳고 한 때는 국모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약(賜藥)을 받고 죽는다. 그녀의 묘는 지금의 구리시에 있었으나 불길한 징조가 있다하여 경기도 광주로 옮겼다가 1969년 지금의 고양시 서오릉 경내로 이장되었다. 이것이 바로 서오릉 대빈묘이다. 

장희빈 부모의 묘

 고양문화원에서 주관한 문화유산 답사의 일정으로 서오릉에 갔을 때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당연히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가 함께 묻혀있는 명릉(明陵)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장희빈의 대빈묘도 꼭 가봐야 한다는 여성분들의 의견이 상당히 많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장희빈의 기(氣)를 받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녀의 이미지 속에서는 뭔가 악착같고 아주 센 성정(性情)이 연상된다. 사실 그녀의 이런 이미지는 당시 그녀를 지원한 남인 세력이 서인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역사서술 과정에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근자(近者)에 들어 드라마를 만들면서 시청률을 고려하여 너무 극적으로 연출을 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빈묘를 답사할 때 자주 회자(膾炙)되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대빈묘 뒤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는 장희빈의 화신으로 기가 너무 세서 바위마저 뚫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최종 도착점은 비록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죽어서도 숙종의 언저리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오릉에는 숙종뿐 아니라 왕비였던 네 명의 여성도 함께 묻혀있어 마치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드라마가 계속되는 듯하다. 

서오릉 대빈묘 봉분 / 사진 = 궁능유적본부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에 소재하고 있는 <고봉산 재래한증막> 바로 옆에는 인동장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들 <장희빈 가족묘>로 부르는 곳으로 장희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장희재의 묘가 있다. 아버지 장형(張烱)은 역관 출신으로 숙종 16년(1690) 장희빈이 낳은 외손자(경종)가 원자가 되면서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같은 해 장희빈이 왕비의 명호를 받으면서 옥산부원군으로 추승되었다. 어머니 파평 윤씨는 장형의 두 번째 부인으로 친정 역시 역관의 집안이다. 묘역 맨 위쪽에 장형의 묘를 중심으로 왼쪽에 첫 번째 부인인 고씨의 묘, 오른쪽에 두 번째 부인이자 장희빈의 친모인 파평 윤씨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뒤편으로 고급스러운 곡장이 설치되어 있다. 오빠 장희재(張希載)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항상 무식한 건달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하지만 그는 장희빈이 궁녀가 되기 전에 이미 무과에 급제한 인물이었다. 비록 숙종의 총애를 받은 동생 덕분에 정2품 총융사와 종2품 포도대장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망나니(?)급의 인물은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역시 인현왕후 죽음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참수를 당한다. 게다가 추가 혐의가 더해져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고 시신는 유기(遺棄)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고봉산 인동장씨 묘역에 있는 그의 묘는 혼을 매장한 혼합분(魂合墳)으로 시신은 없다. 

고봉산 인동장씨 묘역은 거리 이정표가 전혀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인근에 있는 <고봉산 재래한증막>을 이정표로 두고 찾아 갈 수 있는데 그나마 철재 울타리가 쳐있어 가까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안곡습지공원에서 고봉산으로 오르다가 우측으로 빠져나와 묘역 뒤편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하지만 너무 복잡해서 길에 익숙하지 않으면 산 속에서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이 몰살당하고 역사의 기록과 현대의 드라마에서 조차 버림받은 이들의 서운함 때문인가? 겹겹이 펜스를 치고 남들이 찾아오기 힘든 곳으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윤병열 고양문화원 고양학연구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