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칼럼] 땅끝, 바다, 그리고 글쓰기
<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저는 지금 해남입니다. 지난 화에서 잠시 언급했듯 남도 한 달 살기에 선정되어 5월 한 달을 해남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작가로 살아서 좋은 점은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글을 쓰면 됩니다. 마침 준비하던 공모전이 있어서 마지막 퇴고를 반도의 최남단, 땅끝마을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차 없는 뚜벅이가 일산에서 땅끝마을까지 가는 데는 대략 9시간 정도 걸립니다.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에 갈 때도 9시간 반이 걸렸으니, 러시아에 가는 마음으로 가면 됩니다. 도착하면 모든 편의 시설이 걸어서 20분 이내에 펼쳐진 아담한 동네를 만나게 됩니다. 이틀만 머물면 주민 관계가 대강 파악되고, 삼 일이 지나면 아직도 안 갔소? 하며 주민들이 저를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곳에서 17일을 머물렀으니 저는 땅끝마을의 명예 주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예 주민으로서 제가 이곳에서 한 일은 먹고 쓰고 걷는 일뿐입니다. 그런데 이 단조로운 일과를 매일 반복하면서도 한 번도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바다는 볼 때마다 새롭고, 남도의 음식은 먹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일상이 단조로우니 글도 많이 썼습니다. 로비에서 4시간, 카페에서 3시간, 방에서 2시간, 매일 아홉 시간씩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도 퇴고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도시와 달리 해남의 단조로움은 매 순간 생동하는 단조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숙소 로비에선 오가는 여행객들이 다양한 면면을 보여줬고 카페에선 관광객들의 흥미로운 모습을 관찰했으며 아침저녁으론 숙소 지배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느라 정작 제 원고엔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감탄할 만큼 다정한 사람부터 진저리 처지는 무뢰한까지, 그 단조로운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이 놀랄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땅끝마을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고요하게 들끓는 곳이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품은 세계는 바다처럼 깊고 거대했습니다.
그리고 바다! 해남의 바다는 강원도의 바다와는 전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항시 짙푸른 동해와 달리 해남의 바다는 날씨에 따라, 해의 높이에 따라 시시각각 얼굴이 변합니다. 흐린 날엔 옅은 쥐색이었다가 날이 개면 은은한 녹차 색이 되고, 쨍하고 맑은 날엔 도발적인 파란색으로 변했습니다. 또 태양이 막 떠오를 무렵의 바다가 다르고 자오선을 지날 무렵의 바다가 달라 저는 뻔질나게 창밖을 건너다보고 밖으로 뛰쳐나가 매시간 달라지는 바다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그 깊고 웅장한 물을 오래 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어느 순간 물이 아닌 푸른 젤리처럼 느껴졌고, 그 위에 규격을 맞춰 펼쳐진 양식장은 마치 하늘색 밭처럼 보였습니다. 이토록 순한 바다 아래 수천수만 종의 생명체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인간과 바다, 어느 하나 지루할 게 없는 땅끝마을은 오래된 원고를 퇴고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생생하게 약동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곳이었습니다. 우주의 끝으로 날아가 전복처럼 납작 엎드려 퇴고나 하려 했더니 장소를 영 잘못 택했습니다. 그러나 아쉽진 않습니다. 지금 제겐 새롭게 시작할 이야깃거리가 양손 가득 쥐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오래된 원고는 서툴고 거친 모습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어쨌든 보냈으니 내일부턴 해남을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볼 생각입니다. 서산대사의 의발이 모셔진 천년고찰 대흥사부터 “아름다움이 참으로 속세의 경치가 아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라던 달마산 도솔암,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장군님, 충무공이 왜적을 몰살시킨 명량 해협까지! 부지런히 걷고 볼 날이 열흘이나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길 위에선 무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벌써 심장이 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