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함께 성장해온 사과나무의료재단 30년, 치료 넘어 삶의 동반자로”
인터뷰 - 사과나무치과병원 개원 30주년 맞은 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
개인병원에서 대형 의료법인 성장
신뢰와 이웃 중심 진료 철학 30년
구강-전신건강 통합연구 의료기관
생활의학과 건강 자립 동반자 비전
[고양신문] 일산신도시가 한창 형성되던 1995년 6월, 한 재래시장 근처에 ‘김혜성 치과’라는 소박한 간판이 내걸렸다.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치고 개원에 나섰던 김혜성 원장은 그 당시 상황을 묻자 이렇게 회상했다.
“개원 초기에 저는 ‘아는 게 없다’라는 갈증이 컸습니다. 단순한 치과 진료는 가능했지만, 복잡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결국 대학병원으로 전원시킬 수밖에 없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앎’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 갈증은 그를 1999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으로 이끌었다. 병원이 괜찮게 되는데 이걸 놓고 가야 하나 하는 마음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결정이란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지낸 3년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임플란트가 전 세계적으로 막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는 이 혁신적인 치료법을 체계적으로 익혀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엔 아직 임플란트 전문의가 많지 않았던 터라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그 ‘모름’에 대한 자각이 저를 성장시킨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셈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의료법인 전환
2006년엔 대화역 바로 옆 빌딩으로 병원을 확장 이전했다. 그런데 2007년 우수 납세자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세무당국의 조사 끝에 당시로써는 엄청난 금액의 세금을 추징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위산 조절이 안 될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깨달았단다. 개인 소유를 넘어 지속가능한 의료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위기는 속에서 기회가 나오는 법. 2010년 의료법인 사과나무의료재단으로 전환하면서 병원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 공공의 이익과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했다.
“막상 법인으로 전환하고 나니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의 이익에 직접 귀착시키지 않고 여러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장점이 너무나 컸습니다.”
지역 시민과 함께해 온 30년
사과나무의료재단은 이제 20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대형 의료기관으로 성장했다. 치과 7개 전문과목과 내과·가정의학과가 협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2016년 생명윤리위원회(IRB) 설립, 2017년 보건복지부 인가 구강유래물은행 구축 등을 통해 연구중심 의료기관으로의 면모를 갖췄다.
특히 김혜성 이사장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구강-전신 통합건강’ 모델은 사과나무의료재단만의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구강 미생물 연구의 선구자로서 『입속에서 시작하는 미생물 이야기』,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 『마이크로바이옴 생활의학』 등의 저서를 펴내며 질병의 근본 원인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의 철학은 병원 운영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2021년엔 건강증진센터를 개설해 구강검진과 일반 건강검진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대한노인회 고양시 일산서구지회와 협약을 체결해 어르신 구강 건강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지속해서 확대해왔다.
개원 30주년을 맞아 사과나무의료재단은 그동안 함께해온 모든 이들과 기쁨을 나누는 다채로운 행사도 마련했다. 특히 6월 17일 개원 기념일 당일엔 내원하는 모든 환자에게 사과 쿠키와 커피 쿠폰을 증정하고 특별히 1995년 개원 당시 95번째로 등록했던 환자를 초청해 무료 구강검진과 건강검진을 해주고 김 이사장이 직접 쓴 감사 편지와 선물을 제공하고 기념사진도 찍는 등 특별한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환자 차트 번호 95번인 분을 초청하는 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해준 모든 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그분들 한 분 한 분이 있었기에 지금의 사과나무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내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
김혜성 이사장의 진료 철학은 기술이나 경영을 넘어선 인생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폈다. 그러곤 목차의 첫 장 제목인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최근 자신이 겪은 일에 관해 설명했다.
“거의 20년 만에 대학 동기들과 등산 모임을 최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나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같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똑같은 치과의사로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결국, 곁에 있는 이웃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나를 그들과 다르게 만든 것은 바로 지역의 ‘귀가쫑긋’이나 ‘건강백세네트워크’ 같은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지역사회 인문학 모임 회원들과 교류하며 생각과 가치관이 형성되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영근 회장 같은 분들의 가르침이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임 회장님은 내 인생의 스승 같은 분입니다. 사물이나 사안에 대해 좀 더 인문적으로 느끼게 해주시고 의료가 점점 산업화하고 있는 요즘 너무 과하거나 치닫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에 큰 영향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병원 운영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는 환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며 직원들에게 “환자들이 진료비가 부담돼서 우리 병원에 못 오는 건 이해해도, 신뢰를 못 해서 안 오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늘 강조한단다. 20년 이상 꾸준히 찾아오는 환자들의 신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30년을 이어오며 성장해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지역 주민 삶의 동반자 될 것
30년을 이어온 성장을 바탕으로 사과나무의료재단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김혜성 이사장은 “사과나무의료재단이 발전하려면 수평적으로는 지역 보건 사업을 통해 지역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수직적으로는 연구를 더욱 고도화하는 것”이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구강 미생물 연구를 통한 정밀 의료 구현, 구강-전신건강 통합 시스템 고도화, 인체유래물 은행을 통한 질병 예방 및 치료 연구 확대 등이 주요 목표다. 특히 구강 내 유익균을 활용한 제품 개발과 스킨케어 제품 출시 등 ‘생활 의학’을 통한 건강 자립에 중점을 둘 방침이란다.
“사과나무는 단순히 치료만 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들이 ‘건강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생활 습관을 관리하고 특히 장 미생물과 구강 미생물 관련 연구를 통해 새로운 건강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30년 동안 김혜성 이사장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은 환자와의 진정한 관계였다. 그는 의료가 단순한 기술적 행위를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라고 믿어왔다. 그와 나눈 이야기 속에는 30년간 한 의료인이 걸어온 길의 무게와 앞으로 걸어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과나무의료재단의 30년은 병원의 성장기라기보다는 한 인간이 이웃과 함께 걸어온 공동체의 기록이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그 여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만난 모든 환자와 직원들, 지역사회 시민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이 몸을 믿고 맡겨주신 것을 넘어 이제는 마음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치료를 넘어 함께 나이 들어가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동반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