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화염, 10년의 집념… 아버지와 아들이 빚어낸 혁신 기술 ‘제트버스터’
화재 안전 혁신기업 파이어버스터 이끄는 김승연 대표·김진태 CTO 부자
사람 살리겠다는 간절함이 기술로
스키핑 현상 해결한 스프링클러
국내외 특허·인증·수상 실력인정
전기차 화재 등 취약 공간 최적
[고양신문] “30년간 화재 현장을 누비면서 늘 가슴 한쪽이 답답했습니다. 스프링클러가 있는데도 왜 불이 꺼지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죽어가야만 할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소방복을 벗어야만 했는데, 마침내 아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냈습니다. 이젠 확신합니다. 불꽃이 퍼지기 전에 우리의 기술이 먼저 작동할 것이라고 말이죠.”
내일모레면 팔순을 바라보는 베테랑 소방관 출신 김진태씨의 말 속에는 한 세대의 집념이 다음 세대에 스며들어 기술과 혁신으로 꽃피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오랜 고민이 아들인 김승연 파이어버스터 대표에게 이어졌고, 10년의 연구개발 끝에 기존 소방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 기술 ‘제트버스터(JET BUSTER)’라는 열매를 맺었다.
아버지의 30년 화염현장 고민
화재 현장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안전장치가 ‘있지만 없는’ 상황이다. 김진태씨가 30년간 목격한 것은 바로 그런 현실이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초기 진압에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문제의 원인은 ‘스키핑 현상’이었다. 먼저 작동한 스프링클러 헤드에서 방사된 물방울이 인접한 다른 헤드를 직접 적시거나 주변 공기를 식히다 보니 인접 헤드의 개방을 방해하면서 정작 화재가 확산해도 필요한 곳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다. 국제방화협회(NFPA) 조사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미작동 원인의 79%가 바로 이 스키핑 현상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이나 실외기실 같은 복잡한 구조에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위쪽 헤드가 먼저 터지면서 그 물이 아래쪽을 식혀버리니 정작 불길이 닿아도 보조 헤드들이 작동하지 않는 거죠. 현장에선 이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김진태씨의 회고에는 30년간 쌓인 현장의 아픔이 묻어나는 듯했다.
아들이 제트버스터로 기술화
김승연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이런 고민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과학동화를 즐겨 읽고 발명대회에 참가하며 ‘관찰-응용-융합’이라는 발명 프로세스를 체득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아버지의 현장 경험에 자신의 기술적 상상력을 더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
“아버지와 저는 10년 넘게 기초 소방설비 문제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소화기와 스프링클러가 확실히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소방차가 와도 소용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기존 시스템이 ‘각자도생’이었다면 우리는 ‘연대와 협력’의 원리로 접근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스키핑 방지 헤드 이음식 소방밸브 ‘제트버스터’다. 기존 스프링클러는 각 헤드가 개별적으로 열을 감지해 작동하는 방식이지만, 제트버스터는 주 헤드가 화재를 감지하면 연결된 모든 종속 헤드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1차로 열기를 감지한 폐쇄형 주 헤드가 개방되면 배관 내 소화수의 유동(압력 변화)을 감지해 종속된 개방형 헤드들이 일제히 작동한다. 열 감지가 아닌 유체 압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스키핑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외서 탁월한 기술력 인정
파이어버스터의 기술력은 이미 국내외에서 충분히 검증받았다. 자동으로 유수를 제어하는 스프링클러 배관용 분기티 및 배관 시스템 관련 국내 특허 2건 보유,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 특허 4건 보유 등을 통해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정부 기관의 신뢰도 두텁다. 소방청으로부터 소방 신제품 인정획득(2023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는 신기술(NET) 인증획득(2023년), 행정안전부로부터 재난 안전 인증획득(2023년), 조달청으로부터 혁신제품 인증(2024년)을 획득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으로부터는 중량, 내압, 본체강도 시험 등에서 공인(2022년)을 받았고, ISO 9001(품질경영시스템) 및 ISO 14001(환경경영시스템) 인증(2024년)도 확보했다.
국내외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2017년 서울 국제 발명 대전 대상을 시작으로 2018년 스마트건설대전 대상(국토부 장관상)과 미국 실리콘밸리 국제 발명대회 대상, 2021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발명대회 금상, 2023년 인도네시아 국제 발명대회 대상까지 연이어 수상하며 기술력을 공인받았다.
전기차 화재 초기 대응에 탁월
제트버스터의 진가는 다양한 화재 취약 공간에서 발휘된다. 지하주차장에서는 차폐판 없이도 스키핑 현상을 완벽히 방지하며 층고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 아파트 실외기실에서는 전열교환기 같은 살수 장애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각지대 없이 신속한 화재 진압이 가능하다.
특히나 주목할 부분은 전기차 화재 대응 분야다. 순식간에 고온으로 치솟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특성상 기존 스프링클러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트버스터는 차량 상부에 설치된 하나의 주 헤드가 감지하면 연결된 여러 개의 종속 헤드가 동시에 작동해 차량 전체를 감싸듯 물을 분사한다. 지난해 11월 광주 교통공사 지하 전기차 주차구역과 올해 1월 씨젠 의료재단 서울 본원 전기차 주차구역 등에 실제 설치돼 그 성능을 입증하고 있다.
파이어버스터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0년에 걸친 연구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자부담,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
“R&D 자금이 끊기면 그 여파는 10년이 갈 수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혁신적 기술 하나가 현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어버스터는 대화동에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에 입주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든든한 파트너십으로 기술적 검증과 안정성을 확보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 KICT의 지원으로 약 15억 원의 R&D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화재 실험실 사용과 연구진과의 교류, 인증 관련 프로세스 지원 등 여러 방면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의 구매 조건부 투자계약, K-테스트베드 사업을 통한 주택성능연구개발센터 아파트 실외기실 실증실험 등 공공기관과의 협력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소방업계의 애플로 성장 꿈꿔
김승연 대표의 비전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선다. ‘안전의 문화화’를 통해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란다.
“해외 소방 박람회를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안전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각종 체험과 흥미로운 콘텐츠로 가득한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거죠. 안전은 딱딱한 ‘기술’이나 ‘규제’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스며드는 ‘문화’이자 ‘생활‘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의 이러한 철학은 파이어버스터의 사업목표와도 맞닿아 있다. 2022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방 박람회 ‘인터슐츠’에서 70여 개국 바이어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2023년 KICT 인도네시아 비즈니스 상담회에서는 4건의 MOU를 체결하며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의 발판도 마련했다.
파이어버스터의 지나온 길은 단순한 기술 개발 연혁이 아니다. 한 소방관의 30년 현장 경험이 아들의 기술적 상상력과 만나 사회의 안전망을 바꾸고 있는 혁신 스토리다. 김진태씨가 현장에서 느낀 ’왜 모든 헤드가 동시에 작동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이 아들에게 전해지고 그것은 ‘연대와 협력’이라는 원리와 새로운 언어로 번역돼 기술로 구현됐다.
“저희가 만드는 것은 단순히 불을 끄는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밤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파이어버스터의 혁신 기술로 전 세계에 안전 문화를 확산하면서 기술력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소방업계의 애플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불을 이기려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겠다는 간절함을 기술로 만들어가겠습니다.”
☞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센터 파이어버스터 스마트 분기티 '제트버스터' 화재실험 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