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숲으로 천이 중인 황룡산, 그 자연의 흐름에 귀 기울이다
오창환의 마을숲스케치(1) 황룡산
[고양신문] 지난 5월 31일, 마을숲 시민생태탐사에 참여했다. 고양신문은 지난해 고양시 8개 마을숲 생태조사를 한 데 이어, 올해도 8개 마을숲을 선정해 생태탐사를 진행하는데, 올해 첫 번째 탐사지는 탄현동의 황룡산이다. 오전 8시30분 황룡산 주차장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황룡산은 처음 가보는 곳이다. 이름만으로는 중국의 중원에 있는 거대한 산처럼 들리지만, 황룡산은 고양시에 있는 동네 마을산이다. 버스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걸어가다 보니, 일산동고 뒤로 산이 길게 뻗어 있다. 그 모습이 용이 누운 듯하여 ‘황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차장에 모인 일행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체조를 한 뒤, 세 팀으로 나뉘어 생태 탐방을 시작했다. 작년에는 매회 참여자가 30여 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올해는 홍보가 늦어 약 15명 정도가 함께했다. 생태 해설은 에코코리아 소속 숲 해설가 세 분이 맡아주셨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동안, 해설가 두 분께 숲 해설을 얼마나 하셨는지 물어보니 한 분은 20년, 다른 분은 10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분들 경력이 오래돼서 놀랐는데, 그분들은 “그 정도면 아직 멀었다”고 겸손히 말씀하셨다.
탄현은 예로부터 숯을 굽던 마을이었으니까, 황룡산에는 숯의 원재료인 참나무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참화 속에 우리 국토는 민둥산이 되었고, 박정희 정부 시절 산림녹화 사업을 통해 ‘리기다소나무’가 대거 심어졌다. 리기다소나무는 햇빛이 강한 곳에서 잘 자라는 극양성 식물이다. 민둥산에서 번성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참나무류 같은 활엽수가 그늘을 이루기 시작했고, 소나무는 그늘에 밀려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
지금의 황룡산은 바로 그 ‘천이(遷移)’의 시간 속에 있다. 숲은 생태의 서사시요, 나무들은 그 장의 주연들이다. 황룡산은 해발 134.5미터이지만, 길게 뻗어 있어 훨씬 더 큰 산처럼 느껴진다. 민간인 학살 현장인 금정굴이 예전에는 금광이었다고 하니, 이 산의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말했듯, 모든 사랑은 이름을 불러줄 때 시작된다. 생태 탐방도 나무와 꽃과 풀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산책길을 오르자마자 흰 꽃을 피운 관목이 보였다. 줄기를 물에 풀면 냇가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하여 ‘때죽나무’라 불린다. 그 외에도 찔레꽃나무, 층층나무, 누리장나무 등 이름과 생김새, 생태적 특성을 숲 해설가들이 정성껏 설명해 주셨다. 발밑에 낮게 깔려서 노란 꽃을 피우고 하트 모양 잎을 가진 풀은 ‘괭이밥’이다. 고양이들이 배탈이 나면 이 풀을 뜯어 먹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양이뿐 아니라 사람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맛을 보았다. 대부분의 들풀은 독성이 있어 아무거나 먹어선 안 되지만, ‘산초나무’ 잎은 먹을 수 있다 하여 맛을 보았다. 산초나무 열매가 익으면 추어탕에 넣어 먹는다. 잎에서도 산초열매처럼 톡 쏘는 맛이 느껴졌다.
정상 부근에 이르러 숲 해설가 선생님이 A4용지 여섯 장을 깔고, 꺾어온 나뭇가지를 올려놓고 설명해 주셨다.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진 초록 이파리는 마치 한 폭의 식물도감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서 집에 돌아와 그림으로 남겼다. 우리나라 참나무는 대표적으로 여섯 종이 있다. 밤나무도 비슷한 종류이다. 그 여섯 종과 밤나무를 구별할 줄 알면 생태 탐사의 기초를 뗀 셈이다. 나는 이번 첫 탐사에서 두 종만 기억에 남기기로 했다. 가장 크고 화려한 이파리를 가진 ‘떡갈나무’. 옛날에는 떡을 찔 때 잎을 깔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슷한 모양이면서 약간 작은 잎은 ‘신갈나무’잎이다. 신갈나무는 옛날에 짚신에 깔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떡갈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있고, 신갈나무에는 털이 없다. 상수리나무와 밤나무도 잎이 비슷한데, 벌레들이 알을 낳으면 밤나무는 그것을 감싸 벌레집 ‘충영’을 만든다. 대체로 충영이 많으면 밤나무, 없으면 상수리나무다.
길을 걸으며 살펴보니 벌레들이 알을 낳아 둥글게 말아 놓은 잎사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그런 이파리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번 더 실감했다.
지상 1.2미터 높이에서 나무의 둘레를 재면, 그 나무가 저장할 수 있는 탄소량을 계산할 수 있다고 해서, 하산길에 줄자를 꺼내서 나무 둘레를 쟀다. 숲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풍경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기후 위기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하산길, 우리는 금정굴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이곳은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과거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자리에, 들꽃으로 만든 작은 화환을 바치고 묵념했다. 자연을 배우는 시간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산 아래로 내려와, 여섯 명의 참가자와 함께 생태 그리기를 이어갔다. 각자 관심 가는 식물을 꺾어 관찰하고 표현해 보았다. 그림을 많이 그려본 분들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리는 원칙만 있으면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첫 시간이라서 부담감을 덜기 위해 ‘원라인 드로잉(one line drawing)’으로 식물을 표현해 보았다. 원라인 드로잉은 펜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한 선으로만 그리는 방식이다.
“선생님, 여러 선으로도 못 그리는데 한 선으로 어떻게 그려요?”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미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에요. 선생님 믿고 한번 그려봐요.”
과연, 한 선으로 그린 그림이 더 멋졌다. 누구는 애기똥풀을, 누구는 떡갈나무 잎을, 누구는 별꽃을 그렸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아름답지만 결과마저도 놀랍도록 좋았다. 자연의 꽃과 풀, 생김새를 따라 손을 움직이다 보면,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털, 마디진 줄기… 그 작은 차이가 하나의 생명을 구별 짓는 신호임을 느끼게 된다.
예부터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라 하지 않던가. 멀리 있는 에베레스트 산도 좋지만 우리 동네 가까이에 있는 이웃 같은 마을산, 황룡산도 좋다. 나무와 꽃, 곤충과 바람과 함께한 하루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도 작은 숲 하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