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소리보다 무서운 건 불안, 치과공포증 이겨내는 법
강모래 사과나무치과병원 통합치의학과장의 건강칼럼
[고양신문] 치과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막연한 불안이나 긴장을 유발하는 공간이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어깨가 굳고, 드릴 소리와 소독약 냄새가 귀와 코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심란해진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진료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손에 식은땀이 나는 경험을 했다면 ‘치과공포증’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치과공포증은 생각보다 흔하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전체 성인의 10~30%가 다양한 수준의 치과 불안을 경험한다. 치과공포증을 겪는 사람 중에는 치료가 꼭 필요한 상황임에도 병원을 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치과공포증은 단순히 ‘치과가 싫다’는 감정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거나 누적된 불쾌한 경험이 공포로 굳어지면서 결국 진료 자체를 회피하게 되는 심리적 상태다. 고통스러운 치료 기억이나 부모와 주변인이 보인 불안한 태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치과 관련 영상 등도 이러한 기억을 강화하는 요인이 된다.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강도와 방식은 다르다. 가볍게는 진료실 앞에서 망설이는 정도부터 시작해 심한 경우 치료 자체를 거부하거나 중단하는 상황으로까지 이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포가 실제 구강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치과공포증으로 인해 치료를 미루다 보면 충치나 치주질환의 치료 적기를 놓치게 되고, 그 결과 충치가 신경에까지 침범하거나 치주염이 심해질 수 있다.
이렇게 악화한 질환은 치료 시간도 길어지고 통증도 커지기 때문에 치과공포증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결국, 치과공포증은 단지 치료를 늦추는 것을 넘어 음식 섭취의 어려움, 대인관계 위축, 자존감 저하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치과공포증은 결코 이상하거나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치과공포증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대표적인 접근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치료 전에 어떤 기구가 사용되고 어떤 감각이 느껴질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는 ‘설명-시범-실행(Tell-Show-Do)’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방식은 단순히 말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구를 직접 보여주고 짧게 시범을 보인 뒤 치료에 들어가 환자가 상황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환자와 미리 신호를 약속해 두는 것도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치료 중 통증이 느껴지면 손을 들어 ‘멈춰달라’는 표시를 하기로 정하면 환자는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불안을 덜 수 있다. 진료 중 긴장이 심할 경우 천천히 숨을 쉬거나 숫자를 세며 이완하는 간단한 방법을 안내하는 것도 좋다. 실제로 어떤 환자는 긴장을 줄이기 위해 이어폰으로 본인이 정한 음악을 들으며 치료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요청을 의료진에게 미리 말하면 충분히 조율할 수 있다.
결국, 치과공포증 완화의 핵심은 ‘내가 치료 속도를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다’라는 인식을 환자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치료를 서두르기보다 짧은 단위로 나누어 진행하고 환자의 반응을 살피며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지만, 환자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제 가능한 상황’으로 기억하면서 이후 치과공포증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치과공포증은 숨기거나 외면해야 할 감정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겪고 있으며 그 안에는 각자의 이유와 맥락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의료진과 소통해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보려는 태도다. 그러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차원을 넘어 치료의 질도 높일 수 있다. 치료를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치료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환자의 권리다. 현재 느끼는 불안한 감정을 이해하고 잘 다루어보려는 태도는 치과공포증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강모래 사과나무의료재단 사과나무치과병원 통합치의학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