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치유하는 약이 도로 위 흉기될 수 있다
이광수의 교통안전 칼럼
[고양신문] 최근 약물 복용 후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음주운전만큼 위험하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더 큰 문제다. 특정 약물은 운전자의 판단력, 반응 속도, 집중력을 떨어뜨려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약류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처방 약이나 일반의약품도 예외가 아니다. 무심코 복용한 약 한 알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제 약물 운전의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약물 운전 사고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경기남·북부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약물 운전 교통사고는 2023년 1건에서 2024년 14건으로 급증했다. 아울러 경찰청 자료를 기준으로 약물 운전으로 인한 운전면허 취소 건수가 2015년 53건에서 2024년 134건으로 10년 사이 2배 이상(1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유명 방송인이 공황장애약을 복용한 후 운전 혐의로 논란이 되며 약물 운전 위험성을 일깨웠다. 또한, 졸피뎀 성분 수면제를 복용 후 운전하다 8명의 사상자를 낸 40대 운전자의 사례는 약물 운전이 얼마나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줬다. 항우울제, 수면제 등을 복용하는 노인의 16~17%가 도로 주행 성적이 나빴다는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 결과는 특정 약물이 운전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시사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약물 운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음주운전보다 현저하게 낮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처방 약이나 일반의약품 부작용으로 운전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약물 운전은 즉각적인 감지 방법이 없어 단속이 어렵고 잠재적 위험이 도로 위에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정신과 약물 복용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환자들이 약물 복용 사실을 숨기거나 부작용에 대해 의료진과 충분히 상담하지 못하게 만든다.
약물 운전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대국민 홍보와 교육을 강화해 약물 복용 후 운전의 위험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 특히, 졸음, 어지럼증 등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 부작용 정보를 명확히 제공해야 한다.
둘째, 의료기관과 약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는 약물 처방 시 운전 가능 여부를 반드시 알려야 하며 약사는 복약 지도 시 관련 정보를 상세히 안내해야 한다. 셋째, 법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약물 운전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고 사고 통계 시스템을 정비해 정확한 현황 파악과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운전자 자신도 약물 복용 전 운전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느껴진다면 운전을 삼가는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약물 운전은 개인의 생명뿐 아니라 타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음주운전과 마찬가지로 약물 운전 역시 '살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 정부, 의료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약물 운전의 위험성을 공유하고 예방 노력을 기울인다면 더욱 안전한 도로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광수 일산서부경찰서 경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