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가 카페가 되었다,  헤이리의 보석 같은 공간 ‘반디’

김언호의 책이 있는 풍경・2 파주 헤이리 '반디' 1969년 동아일보서 만난 오래된 벗 "파주 가서 예술마을 만들자" 권유에 서울 집 팔아 2003년 헤이리 입주 책의 세계 안내하는 '서재탐험' 공간 박찬욱, 한홍구, 이이화 등 단골손님

2025-06-27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헤이리에서 가장 작은 집 ‘반디’에는 현대 출판 문화사를 빛낸 책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늘 열려 있는 서재
[고양신문] 파주 통일동산의 예술마을 헤이리. 1번 게이트에서 200미터 정도 들어가다 왼쪽에 있는 북카페 ‘반디’. 시인 이종욱의 서재다. 헌책을 파는 책방이기도 하다. 헤이리에서 가장 작은 집의 1층이다. 로마의 철인 키케로는 서재와 정원에서 누리는 행복을 예찬했지.
올해로 49년째 책을 만들고 있는 나는 지인들의 독서와 책의 세계를 찾아가는 ‘서재탐험’이 취미라면 취미다. 다양한 책들이 자욱하게 꽂혀 있는 서재, 그 서재에서 책을 살펴보고, 책의 세계를 담론한다. 책들이 뿜어내는 향이 감미롭다. 최근의 ‘신간’들과 한참 전에 출간된 책들, 때로는 ‘고서’로 분류됨직한 것도 있다. 그 형식과 내용, 그 정신과 철학을 체험하는 극상의 즐거움이다.
작은 정원과 함께 늘 열려 있는 서재 반디! 예술마을 헤이리의 또 하나의 보석 같은 공간이다. 저 어린 시절, 한밤의 어둠에도 반딧불이 있어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고향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일까. 그래서 그 이름을 ‘반디’라고 이름 붙였을까.
나는 책을 사랑하고 책 읽기를 누리는 그와 함께, 책의 세계로 들어간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그 시대정신이 이야기의 주제가 된다. 지난 시절의 고단함도 책 속에서는 아름답게 해석된다.

북녘이 건너다보인다
내가 예술마을 헤이리를 구상하고 그 건설에 나선 것이 1994년부터였다. 문화와 예술로 구성되는 새로운 개념의 마을을 전쟁으로 상처받은 국토, 대결과 긴장의 유역, 북녘이 바로 건너다보이는 이곳에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인문예술운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출판계 동료들과 진행하던 파주출판도시와 연대되는 발상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이곳이 북카페임을 알리는 커피와 관련된 이미지가 페인팅되어 있다.

“우리 파주로 가서 아름다운 책과 예술의 세계로, 새로운 형식의 유토피아를 만들어봅시다.”
 그리하여 부부는 압구정의 현대아파트를 처분하고, 2003년 8월에 ‘반디’의 문을 열었다. 긴장의 유역에서 더불어 함께 펼치는 문화예술 공동체 운동이기에 더 아름답다는 우리들의 이심전심이었다. 건축가 헬렌 박이 설계했다. 나는 그보다 빠른 3월에 전시공간과 주택공간이 공유되는 건축을 해서 입주했다. 최두남의 설계였다. 다시 2004년 전시・집회・카페 공간 북하우스를 개관했다. 그랜드피아노를 닮았다고들 했다. 뉴욕의 건축가그룹 SHop의 작품이었다.
당초에 나는 책방마을을 생각했다. 그러나 미술・건축・영화・음악 장르의 예술가들이 “우리도 함께 하자” 해서 헤이리는 ‘종합예술마을’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어 ‘한길책박물관’을 북하우스 뒤편에 신축해 개관했다. 김준성이 설계한 한길책박물관은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하는 ‘작품’이 되었다. 반디와 북하우스는 직선거리가 100미터 정도 될까.

현대 출판 문화사를 빛내는 타이틀들
반디는 나의 마을 산책코스다. 수시로 들르는 반디, 늘 책을 들고 있는 이종욱 시인과 만난다. 우리는 책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사를 잊는다. 책의 주제와 세계를 참 많이도 알고 있는 이종욱 시인, 나는 그가 ‘책의 세계를 관통하는 인간문화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무슨 주제를 알아봐 달라면 이내 그 해답을 내놓는다. 생애를 책과 함께 살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종욱 시인이 번역한 『칼데콧 컬렉션』을 비롯한 표지가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나름 긴 세월, 나는 그를 만났고 반디에 출입하다보니 반디가 소장하고 있는 수만 권의 책들을 파악하게 되었다. 한길사가 펴낸 책을 모아두는 코너도 있다. 
을유문화사와 신구문화사가 저 지난 시대에 펴낸 책들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전설이다. 을유문화사가 1960년대에 펴낸 ‘세계교양사상전집’이 당당하게 꽂혀 있다. 삼성출판사가 펴낸 『해금(解禁)문학전집』은 문학책 읽기를 누리는 독자들의 서재에 꽂힘직한 전집이다. 내가 좋아하는 ‘탐구신서’도 여러 권 반디의 서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지훈의 『한국문화사서설』은 나의 문제의식을 키운 한 권의 책이다. 한길사가 2009년에 펴낸 『함석헌저작집』(전30권)도 있다. 1987년 한길사가 펴낸 타블로이드 판형의 큰 책 『동아투위자유언론운동 13년사(1974~1987)』도 있다. 
영국의 ‘에브리맨스 라이브러리’를 나는 좋아한다. 서양고전들을 집성하는 명품시리즈인데 『바이런의 시와 드라마』(1910), 『고리키의 단편집』(1931), 파스칼의 『팡세』(1931)가 꽂혀 있다. 이들 영어 원서들은 영문학도 이종욱 시인이 읽기 위해 사모은 책들이다.
  
함께 해직되고
내가 이종욱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69년이었다. 동아일보사의 기자로서였다. 내가 한 해 빨리 입사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에 국민들이 시달리던 시대였다. 드디어 우리는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펼쳤고, 1975년 120명의 동지들이 함께 해직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언론실천운동’은 쉼 없이 진행되었다.
해직되던 그해 이종욱과 나는 학원사가 간행하던 월간 『농원』 기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시했다. 발행인 김익달 선생이 우리를 인터뷰했다. 그러나 우리는 ‘낙방’하고 말았다. ‘동아일보 해직기자’였기에 그랬을까. 농촌 출신인 나는 ‘농촌유토피아’를 구현하는 『농원』을 정말 잘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때 『농원』에 합격되어 일했더라면 한길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이종욱은 해직되던 1975년 10월, 용산에 있는 작은 신문 『주간시민』에 가서 나름 전력투구했다. 동아해직기자 10여 명이 함께 가서 일했지만, 우리의 뜻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나는 『주간시민』 시절 이종욱 시인과 삼각지 일대의 ‘영어책방’을 뒤지고 다녔다. 그와 나는 늘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종욱 시인의 부인 현일숙 여사는 ‘반디’ 책방을 운영해나가는 데 일등 공신이다.

나는 드디어 출판사를 스스로 만들어 책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출판사부터 ‘등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6년 12월 24일, 나는 이종욱 시인을 대동하고 당시 출판사 등록을 대행하던 사간동의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방문하고 ‘한길사’를 등록했다. 1977년부터 ‘오늘의 사상신서’라는 총서 이름으로 송건호 선생의 『한국민족주의 탐구』와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 고은 시인의 『역사와 더불어 비애와 더불어』를 내기 시작했다. 신생출판사로서는 도전적인 타이틀들이었다.
이종욱 시인은 월간 『한국인』과 『마당』에서 일하다가 국민모금으로 창간되는 『한겨레』에서 문화부장으로 언론에 복귀했다. 다시 『문화일보』로 옮겨 일했다. 1981년에는 ‘창비시선’ 제28권으로 시집 『꽃샘추위』를 펴내는 시인이 되었다.

  “번개가 번쩍이는 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안다.
  갚을 빚이 얼마나 남았는지 안다.”

제3세계에 관한 문제의식
기자는 더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책으로 더 깊고 높은 언론운동을 펼 수 있다는 생각을 책을 만들면서 하게 되었다. 다양한 책의 형식을 통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작업을 해낼 수 있다는 신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책의 형식은 무궁하고, 책이라는 미디어는 경이로운 역량으로 동시대인들의 영혼을 일깨운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제3세계’는 대학 시절부터 나의 중요한 주제였다. 이종욱 시인에게도 제3세계는 문예적 관심사였다. 이종욱 시인은 『제3세계』 제1집의 특집 ‘제3세계 민족지성의 행동과 사상’에 「새벽은 언제 오는가: 니카라과의 신부시인 에르네스트 카르데날」과 「인간해방을 위한 예술: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월레 쇼잉카」를 썼다. 이 시인은 다시 한길사가 펴내는 계간 『오늘의 책』 1986년 봄호에 「아프리카 인간해방의 기수: 넬슨 만델라」를 썼다.

시인이자 독서가이자 번역가인 이종욱은 늘 손에 책을 들고 있다.

시인 이종욱은 독서가이자 번역가다. 한길사는 그와 함께 여러 주제의 책을 번역해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한 화가: 아름다운 영혼 빈센트 반 고흐』(전2권)를 2003년 한길아트에서 펴냈다. 그는 일찍부터 칼릴 지브란을 ‘발견’했다. 1996년 지브란의 『부러진 날개』 『방랑자』 『모래와 거품』을 한길사에서 펴냈다. 
한길책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칼데콧의 그림책으로 『칼데콧 컬렉션』(1, 2)과 역시 한길책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위대한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리고 블랜처드 제럴드가 쓴 『런던 순례여행』을 번역했다. 세계환경운동의 구루 레스터 브라운의 자서전 『지구를 구하는 창조의 현장에서』(2013)를 번역했다.
“카페와 헌책방이 녹록지 않을 텐데, 함께 헤이리로 오자 했으니 미안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씀,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책 읽고 좋은 사람 만나게 되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가끔 찾아오는 외국인도 있지요. 오, 판타스틱! 합니다.”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의 이종욱에게
북하우스에도 그렇지만 반디에도 단골손님이 제법 많다. 박찬욱 감독과 한국현대사 연구가 한홍구 교수는 자주 들러 많은 책을 구입해간다. 지금은 작고한 『한국사 이야기』(전22권)의 저자 이이화 선생도 단골 독자였다. 
아침저녁 반디에서는 노을동산 위로 떠오르는 해와 달을 볼 수 있다. 나무와 풀, 바람과 구름의 풍경이 한동안 시작(詩作)을 중단한 시인의 시심(詩心)을 다시 불러일으켰을까. 
반디의 정원에는 우람한 플라타너스 두 그루가 서 있다. 처음 건축할 때 공사하는 사람들이 이 나무를 베어버리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공사가 좀 힘들지만 나무를 보존하자고 했다. 나무는 세월과 함께 그 자태가 더 아름다워진다. 시인은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의 이종욱에게」라는 시를 발표했다.

시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의 이종욱에게」의 모티브가 된 두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창밖으로 보인다.


  “꽤 너끈한 그림자 만들어 주다가
  무성한 잎 속에 징그러운 벌레까지 키우다가
  어느새 혹한에 이파리 몇 낱 끌어안고
  까치둥지 여전히 키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알겠지,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나눔이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지, 비로소 느끼겠지.”

시인 이종욱은 지금 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가 50년 이상을 읽은 시성 월트 휘트먼의 『풀잎』 완역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풀잎』은 2026년 한길사 50주년 기념기획의 하나로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