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낯설고 기묘한 맛의 향연

[황피디의 맛집탐구] (3) 개성만점 중식당 연남동 포가 '마늘쫑면' 짭쪼름한 산동식 식감 망원동 강동원 '흑후추돈육덮밥' 강렬한 불맛 효창공원 신성각 '짜장면' 시큼하고 슴슴한 맛

2025-07-07     황범하 KBS PD
서울 연남동 포가의 마늘쫑면

[고양신문]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으로 대변되는 중식당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최초로 맛있게 먹은 외식 메뉴는 한국식 중화요리 짜장면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짜장면은 내게도 최고의 외식 메뉴였다. 내가 살던 서울 용문동 동네 중식당 스텐레스 그릇에 담겨져 나오던 짜장면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초등학교 시절 혼자서도 가곤 했는데 1970년대 중후반이던 당시 가격은 500원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짬뽕보다는 우동을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빨간 국물이 트레이드 마크인 얼큰한 짬뽕은 1980년대를 거치며 우동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더 매운 맛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2천년대 들어 전국 5대짬뽕 같은 말이 유행하면서 전국의 중식당을 일부러 찾아 다니는 식도락가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흥미가 떨어지는 법. 짜장면, 짬뽕, 탕수육의 무한 반복에 우리나라 중식당에 내 입맛이 시들해질 때쯤 20대 후반이던 1994년 3월 미국 필라델피아 출장 당시 그곳 중식당 음식에 홀딱 반해버렸다. 익숙한 한국식 짜장면, 짬뽕, 탕수육은 없고 죄다 새로 보는 메뉴들이었고 맛 또한 좋았기에 그 다음날도 방문할 정도였다. 그때 사진 한 장 안 남겨서 메뉴 이름도 기억 안 나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그 이후로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 중식당을 방문, 각 나라별 중식당을 비교하는 재미를 느끼곤 했는데 나의 제한된 경험과 입맛 기준에는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의 중식당이 가장 별로였고 싱가폴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 중식당이 맛과 함께 가성비도 좋아서 만족감이 컸던 걸로 기억된다.
인간은 싫증을 내는 동물이다. 너무 익숙해지면 흥미가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새로운 경험을 쫓아 움직인다. 여행도 맛집 순회도 그 심리에서 비롯된다. 해외 중식당에서 내가 느낀 만족감의 상당 지분은 안 먹어본 메뉴를 먹어봤다는 데에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우리 짜장면과 탕수육 맛에 감탄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곤 했는데 그 만족감 역시 안 먹어본 메뉴를 처음 접했기에 나오는 부분이 크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유명 맛집들이 있기 하지만 “와 여기는 정말 완전 새로운 맛” 또는 “확실히 차별화 되는 넥스트 레벨의 맛”이라는 느낌을 주는 중식당은 내 기준에는 매우 드물다.
유튜브나 SNS에서 유명한 중식당 맛집을 찾아가 보곤 하는데 적당히 맛있을 뿐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는 곳은 많지 않다. 중식 고급 호텔 중식당에 가면 그 체험이 가능하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장인급의 솜씨 있는 셰프가 요리해 일반 중식당과 차원 다른 맛을 내곤 하는데 매우 비싸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껏 가본 곳 중에서 1)비싸지 않으면서 2)다른 곳과 차별화되며 개성 있고 3)맛있는 메뉴를 제공하는 중식당 세 군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연남동 포가의 차돌짬뽕
서울 연남동 포가의 고기튀김

화교가 운영하는 중식당 맛집이 몰려 있는 서울 연남동. 그중에서 호텔 중식당 출신 셰프가 2017년에 개업해 산동식 요리를 선보인 식당 포가는 오너 셰프의 어머니 성씨 ‘포’에서 식당 이름이 비롯됐다. 개업 초창기에 이곳의 인기를 견인한 메뉴는 산동식 마늘쫑면(9,000원)이다. 마늘종과 돼지고기를 함께 볶아서 면 위에 올려 내는 요리인데 짭쪼름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느낌이 난다, 면발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마늘종과 다진 고기의 식감이 좋다. 면을 다 먹고 남은 마늘종과 고기볶음에 밥을 비벼 먹는 것도 강추. 그냥 밥도둑이다. 여러 번 방문하게 만든 이색적인 메뉴. 포가에는 짜장면은 없지만 짬뽕은 있다. 먼저 차돌짬뽕(12,000원)은 수많은 짬뽕을 먹어본 중식당 유튜버들이 가장 만족했던 짬뽕으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사골국물 같은 담백하고 진한 육수에 차돌, 채소와 해산물 등 재료와의 조화가 훌륭하다. 불향은 강하지 않다. 하얀 국물의 능이차돌백짬뽕(15,000원)도 좋고 부추와 파를 얹어 소금으로 간한 고기튀김(20,000원)도 추천.   

서울 망원동 강동원의 흑후추돈육덮밥
서울 망원동 강동원의 안심탕수육
서울 망원동 강동원의 간짜장

지하철 합정역이나 망원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나오는 망원동 중식당 강동원은 강렬한 불맛으로 유명한 곳이다. 먼저 이곳의 이색 메뉴는 흑후추돈육덮밥(11,000원). 돼지고기 안심을 센 불에 조리해 그야말로 불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덮밥으로 호불호가 없는 메뉴. 반찬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감칠맛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곳의 필수 주문 메뉴는 안심탕수육(중, 25,000원)이다. 여태껏 수많은 탕수육을 먹어 봤지만 이곳의 탕수육 만큼 남다른 탕수육은 처음이다. 일단 탕수육 튀김의 식감이 설탕 코팅된 탕후루 같은 식감이다. 튀긴 탕수육을 한 번 더 요리한다. 센 불의 웍에서 소스와 함께 한 번 더 볶아서 나오기에 이같은 유별난 식감이 생겨난 것. 이때 소스는 유자향 특제 소스로 독특한 단 맛이 배어 있다. 간짜장(9,500원)도 불향 가득하고 식감이 꾸덕해 간짜장 본연의 맛을 잘 살린 맛이다. 오후 1시에 도착했는데 대기 손님이 많아 2시에 입장했었다. 2시 이후 도착 손님들은 대기 시간없이 곧바로 입장 가능해 보였다. 

서울 효창공원 신성각의 간짜장과 짜장면
서울 효창공원 신성각의 짜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입맛에 가장 특이하게 느껴진 중식당이 있으니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뒤편에 자리 잡은 신성각이다. 가게 내부는 전형적인 노포 스타일로 테이블도 네 개가 전부, 가게 외경과 내부 벽면에 사장님의 음식 철학 등이 적혀 있어 기다리는 동안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먼 길 찾아갔기에 간 김에 짜장면(6,000원)과 간짜장(8,000원) 두 가지 메뉴를 혼자서 다 먹어 봤다. 수타로 직접 쳐서 뽑아낸 면인데 색깔부터 다르다. 첨가제 없이 물과 밀가루로만 만들어낸 면이 유독 하얗다. 가게 내부 분위기 만큼 신기하다. 한 입 먹어보고는 웃음이 풋 나왔다. 이게 뭐지? 이런 짜장면 맛이 있구나 싶었다. 면발의 식감이 탄력이 없이 부들부들하니 툭툭 끊기고 무엇보다도 짜장면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달작하고 짭잘한 맛이 없다. 과장되게 말하면 없을 무 자, 무맛이다. 입 안에 남는 건 살짝 시큼하면서 슴슴한 맛이다. 그래서 여기 짜장면에는 짜장면계의 평양냉면 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 기묘한 맛에 반해 맛집 좀 다녀봤다는 사람들 중에는 이곳의 짜장면을 단연 최고로 꼽기도 한다. 왜일까? 내 추측으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짜장면 맛이기 때문이다. 그 강렬한 개성 덕분에 계속 생각날 것 같은 짜장면이다. 나 역시 식당 문을 나서면서 재방문 생각을 하고 있었다. 11시 반 즈음 문을 열고 오후 4시까지 점심 장사만 하는데 재료가 소진되면 일찍 영업을 마감한다. 짬뽕은 없고 카드결제 불가하며 현찰 또는 계좌이체로 계산 가능하다. 또 7월 27일부터 9월 7일까지 휴무 기간이다. 

소개한 세 곳 모두 모두 공간이 여유롭고 쾌적하기 보다는 작고 분주하고 대기 시간이 길어서 손님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애써 오랜 기다림을 감수하며 먹을 정도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늘 강조하지만 입맛은 주관적이고 찾아 가는 과정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까지 매 순간이 각자의 기질과 취향에 따라 만족도가 갈릴 수가 있다. 현재 2만 3천 개 내외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중식당의 익숙한 맛이 아닌 새로운 메뉴의 가성비 식당을 찾는 분들에게 위 3곳을 일단 추천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맛의 중식당이 더 있지만 차차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