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칼럼]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의 싸움

2025-07-09     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취임 한달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력한 검찰개혁 의지를 표명한 이재명 대통령.

[고양신문] 광주 5·18 민주항쟁을 잔혹하게 짓밟고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에게는 ‘체육관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안겨 준 선거가 치러진 것은 1980년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였다. 2540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라는 거수기 집단이 모인 자리에서 단독 입후보한 그는 2524표, 99.37% 득표율로 당선됐다.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치러진 ‘선거’ 결과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 국민은 대통령을 다시 ‘제 손으로 뽑는’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았다. 적어도 대한민국 최고 권력은 이제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아니면 안 되었다.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이요, 이후 순차적으로 확대된 지방자치단체 선거까지,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이 직접 뽑은 ‘선출된 권력’에 의해 행사되게 되었다. 

1993년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라는 군부 내 사조직을 척결함으로써 군부 독재의 잔재를 뿌리 뽑고 문민정부의 기틀을 세웠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늘 군부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공고해 보였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을까?

1998년 IMF 환란 중에 등장한 김대중 정부가 맞닥뜨려야 했던 것은 족벌 언론, 재벌, 그리고 검찰을 포함한 사법 권력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의 저항이었다. 부의 세습을 통해 막강한 경제 권력을 행사하는 재벌, 여론을 자신들의 사적 이해에 맞춰 조작하고 조종하는 족벌 언론 등이 산적한 한국사회의 개혁과제를 풀어 가려는 새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선출된 권력(대통령)은 5년이라는 시한부 권력인 반면, 대를 이어 세습되는 족벌 언론이나 재벌의 권력은 끈질기고, 막강했다. 김대중 정부의 주요 재벌개혁조치들로는 계열사 간 신규 채무보증 금지, 부당내부거래 금지,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 경영을 막기 위해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줄이도록 하는 등의 조치들이 취해졌지만 재벌 지배구조의 개혁 등 근본 문제는 다루지 못했다.

언론개혁과 관련해서는 족벌 경영에 의존하던 언론사들에 대한 대규모 세무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로 인하여 조선·동아·중앙 등과의 싸움이 격화되고 김대중 정부는 집권기간 내내 이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개혁하려는 노력은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직후인 2003년 3월 9일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검찰개혁 필요성을 직접 당사자인 검사들과 논의해 보려 했다.

그러나 이 대화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노무현의 노기 어린 말로 막을 내렸다. 노무현 정부 검찰개혁의 기조는 수사, 기소권을 모두 갖는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축소하고, 수직적이었던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상호협력 형태로 바꾸는 것이었다.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없애고,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 넘기는 방안을 골자로 했다. 오늘날 논의되는 수사, 기소 완전 분리안에 비하면 매우 온건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아다시피 노무현 정부 검찰 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그 끝은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졌다.

전두환 시절을 사람들은 육법(陸法) 통치시대라고도 불렀다. 육사 출신 군인들과 그들을 보조하는 서울 법대 출신 검사들의 합작 정권이라는 뜻이다. 군인들이 중앙정보부, 안기부, 보안사 등을 통해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정치범들은 서울법대 출신 검사들에 의해 취조받고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런데 정치군인들의 보조 노릇을 하던 그 검사들이 윤석열 정권 이후에는 완전히 권력의 주체가 되어버렸다. “털면 나온다”는 신조 아래 한 정치인 딸의 “위조 표창장”을 수사하는데 엄청난 수사인력을 투입하여 한 집안을 도륙내고, 선거에서의 정적을 말살하기 위해 검찰 인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한 것이 지금까지의 정치검찰이었다. 

“물라면 무는” 이 정치검찰을 개혁하자면 시간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새로 바뀐 주인 발 밑에 얌전히 앉아 순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정범구 전 주 독일 대사

시간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편이다. ‘선출된‘ 대통령은 5년 ’임시직‘이지만 관료조직은 ’평생직‘이다. 검찰 개혁, 시간을 놓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