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교사의 침묵,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내일은 방학
[고양신문] 대한민국 교사는 교육 현장의 핵심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적 참정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 국가공무원복무규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교원노조법 등 다양한 법률이 교사의 정당 가입 및 활동, 선거운동, 후원, 단체 행동 등 직접 참정권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사 표현을 비롯한 간접 참정권까지 전방위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사들이 사회 현안과 교육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원천 봉쇄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전면적인 참정권 박탈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만이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 국회의원의 13% 안팎이 교사이고 핀란드는 20%를 상회하기도 합니다. OECD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교사가 직업 안정성을 보장받으면서도 참정권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교사들이 "세계 어느 나라의 교사들보다 파당적이어서 사생활마저도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만 정상적으로 교직 생활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취급받는 모순을 보여줍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의 오해와 통제
교사의 정치적 참정권을 제한하는 주된 명분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결정에서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필요성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정치와 행정의 분리, 공무원의 이익 보호, 공적 중재자 등의 논거로 제시하며 포괄적인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합헌으로 판단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은 본래의 취지와 달리 변질되어 왔습니다.
역사적 배경의 왜곡
헌법에 공무원 및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이 도입된 것은 4·19혁명(1960년) 이후 이승만 정권의 공무원 동원 부정선거와 자유당 정권의 교육 정치 도구화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이 조항들은 국가권력이 공직사회와 교육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기 위한 '보장 규정'이었지, 애초에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제한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와 교육의 분리'라는 미신
학교와 교실이 정치와 동떨어진 '무풍지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과 괴리가 큽니다. 교육 정책은 늘 정치적이며, 집권 세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교사들은 학교 예산, 학생 지도, 교육 과정 운영 등에서 항상 '생활 정치'를 경험하며, 이는 교육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정치에 물들지 않은 교사'라는 이상은 오히려 교사에게 정치적 식견을 결여하게 하고, 학생들에게 정치 혐오를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과장
교사의 정치활동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쳐 수업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의 정치적 의식 형성에 교사보다 부모나 미디어의 영향이 더 크며, 학생들은 교사의 정치적 견해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경향을 보입니다. 교실 내에서도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같은 민주시민교육 방식이 도입되어 주입식 교육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교사의 활동은 근무 시간 외에 학교 밖에서 학생들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 수업권 침해와 무관하며, 교사의 활동을 무제한으로 금지하는 것은 모순적인 해석입니다.
민주주의 회복의 첫걸음
국가인권위원회, 유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대한민국 정부에 공무원·교원의 정치활동 제한이 과도하다며 법 정비를 권고해왔습니다. 이는 '정치 혐오'에 기반한 구시대적 사고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 행위가 가지는 공익적 가치를 회복해야 할 때임을 시사합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 내용을 담은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습니다. 국회는 오랜 논의와 국제적 기준, 현장 교사들의 절박한 요구를 바탕으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합니다. 이는 비단 교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궁극적으로 회복하고 성숙시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