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 풍경 뒤바뀐 삼송·지축 통일로변 마을들

[유경종 기자의 골목 나들이] ③ 통일로변 전시주택 (상)

2025-07-19     유경종 기자

남북회담 대표단 지나가는 숫돌고개에
공무원주택 삼송주택 일사천리 조성
보기 좋지만 생활 불편 ‘근대화 시범마을’
반세기 넘도록 끈끈한 이웃 문화 이어와

[고양신문] 지난번 골목나들이에선 길의 변천사를 통해 삼송동의 통일로 숫돌고개 서쪽마을의 흔적을 짚었다. 이번에는 1970년대 통일로 동쪽에 지어진 전시주택 단지들을 둘러보자. 

전시주택(展示住宅)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은 집을 말한다. 그런데 보여주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분양사무실이나 건축박람회에서 만나는 전시주택은 집을 사거나 지으려는 이들이 대상이다. 그렇다면 통일로변에 남아있는 전시주택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었을까? 놀랍게도 ‘북한’ 보라고 지은 집들이다.

신원동에서 통일로 옛 구간으로 숫돌고개를 넘어오면 삼송주택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50여 년 전 바로 이 풍경을 연출하고자 이곳에 마을을 조성했다.

숫돌고개 남쪽·서쪽 경사면 따라 마을 조성

통일로 전시주택들의 탄생 이력을 살펴보자. 1970년대 초, 남과 북은 각자의 정치적 셈법을 바탕으로 종전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고위급 회담을 시작했고,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깜짝 놀랄 결과물을 내놓았다. 북한 대표단을 태운 차량이 판문점을 출발해 1970년에 개통한 ‘통일로’를 달려 서울로 들어왔는데, 문제는 당시만 해도 통일로 주변은 가난하고 낙후된 시골 모습 그대로였던 것. 이를 놓칠 리 없는 북한 측 기자단은 남한체제의 후진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파주군과 고양군의 마을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로동신문’에 집중 보도했다고 한다. 

한창 체제 우위 선전전에 사활을 걸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통일로 주변 풍경을 획기적으로 바꾸라”고 명령했고, 위로는 총리실부터 아래로는 읍·면사무소까지 단위별 행정 역량이 총동원된 통일로변 정비사업이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초기에는 소위 불량주택을 헐어내고, 지붕을 개량하고, 농지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새마을운동’ 수준의 정비였지만, 70년대 후반에는 취락구조개선사업을 통해 규격화된 문화주택을 마을 규모로 짓는 ‘전시주택단지’가 곳곳에 들어섰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산책하는,  삼송동과 지축동에 걸쳐 있는 숫돌고개 서쪽 언덕배기다. 이곳에서는 2곳의 전시주택단지를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숫돌고개 남쪽 경사면을 따라 조성한 공무원주택이고, 다른 하나는 서쪽 경사면을 따라 배치된 삼송주택이다. 

오송산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삼송주택 모습. 마을 아래 큰 길이 통일로이고, 그 너머로 삼송 구도심과 아파트단지 풍경이 중첩된다. 

TV, 대한뉴스에 골목 풍경 단골로 등장 

마을을 직접 찾아가 보면, 이곳이 전시주택 단지로 선정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북에서 내려오다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시작되는 구파발을 코앞에 둔 길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서울 경계 너머에도 전시주택 단지를 하나 더 지었는데, 2000년대 중반 은평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철거돼 버린 한양주택이다. 직선거리로 2.3km밖에 안 되는 구간에 삼송주택, 공무원주택, 한양주택이 나란히 등장했던 것이다. 

서울과의 경계지점이라는 것 외에도 삼송주택과 공무원주택은 지형적으로 전시주택단지의 최적지였다. 앞서 말했듯 뒤편으로 나지막한 오송산 숲 언덕이 감싸고 있어 통일로를 오가며 줄지어 선 주택들을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통일로보다 높은 지대에 계단식으로 택지를 조성하고, 통일로와 수직, 또는 수평을 이루는 방향으로 주택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배치했다. 마을 자체가 오와 열을 맞춘, 국가가 주도한 전체주의 문화가 일상 곳곳을 설계했던 시절의 자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도시화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외양과 편리한 구조를 갖춘 도심형 단독주택들이 산뜻하게 도색된 기와지붕을 자랑하며 대규모 단지를 이룬 모습은 북한 대표단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보기에도 특별한 경관이었다. ‘공무원주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택들이 나랏일을 하는 이들에게 우선 분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토박이들의 회고를 들어보면, TV 방송이나 극장에서 상영된 대한뉴스, 또는 문화영화의 배경으로도 한양주택, 공무원주택 등이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에 조성된 한양주택. 뒤편으로 보이는 다리는 서울 은평구와 고양시 지축동을 잇는 지축교다. 주민들이 보존을 원했던 한양주택은 은평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사라졌다. [서울시 아카이브자료]

수직-수평 동선 교차하는 기하학적 구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삼송주택과 공무원주택의 골목 구조는 털 모(毛)자와 매우 유사하다. 외부에서 진입하는 메인 경사로를 중심으로 왼쪽 골목과 오른쪽 골목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층층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지도를 확대해 보면 포도송이가 빼곡히 달려있는 모습도 연상된다. 다시 말해 수직으로 올라가서, 좌향좌나 우향우를 해서 수평으로 이동하고, 다시 계단을 밟고 수직으로 올라가서, 수평으로 마당을 거쳐 각자의 집 현관에 도달하는 구조다. 어찌보면 복도식 아파트의 단독주택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매우 기하학적 동선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공무원주택과 삼송주택은 ‘근대화의 시범 마을’이었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들도 많았다. 일단 마을 전체가 언덕바지 경사로였고, 주택의 마당과 전면이 통일로를 향하게 설계하다 보니 입구를 측면이나 뒷면으로 놓아야 했다. 내부 구조도 이런저런 개선점이 많았고, 주차 공간에 대한 고려도 없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주차문제가 큰 골칫거리였다. 

사랑의 전원마을(옛 공무원주택)의 메인도로. 경사가 꽤 가파른 이 길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으로 골목길이 이어진다.

반세기 단독주택 변천사 품은 전시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송주택과 공무원주택은 여전히 단독주택단지로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50여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집주인이 바뀐 곳도 많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외양과 내부를 고쳐 짓기도 하고, 50여 평의 택지에 아예 다세대 주택을 새로 신축해 올린 곳도 많다. 공무원주택은 아예 마을 이름을 ‘사랑의 전원주택’으로 바꾸고 끈끈한 이웃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마을 안쪽을 걷다 보면, 대한민국의 근과거 반세기의 단독주택 변천사를 박물관처럼 다채롭게 구경할 수 있다.    

공무원주택 건설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는 주택.

마을을 둘러싼 주변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삼송주택 앞 숫돌고개 언덕에서 크게 휘어지던 통일로는 직선으로 곧게 확장됐고, 공무원주택 남쪽으로는 삼송과 지축을 잇는 큰 길이 새로 뚫렸다. 무엇보다도 대각선으로 삼송역 주변, 맞은편 지축차량기지 서편으로 높디 높은 주상복합건물들이 들어서서 “전망 하나는 어느 집 안 부럽다”며 자부심을 표했던 언덕 위 마을들의 눈높이를 압도해버렸다.   

공무원주택 초입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조망을 바꿔버렸다. 

국가유공자 자활의 삶터 신도용사촌 

공무원주택과 삼송주택 가까이에는 근과거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마을인 ‘신도용사촌’이 자리한다. 지하철 지축차량기지 앞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용사촌의 정식 명칭은 ‘국가유공자 자활용사촌’이다. 이름 그대로 참전용사나 상이군경 등 보훈대상자, 또는 그 유족들이 집단 거주하며 복지사업을 도모하는 마을을 일컫는다. 고양에는 이곳 신도용사촌 외에도 인근 동산동에도 ‘동산용사촌’이라는 이름이 한 곳 더 남아있다. 

신도용사촌의 중심도로. 삼송주택이나 공무원주택과 달리 수평으로 이어진 길이다. 

오송산 언덕 맨 아래기슭에 터를 잡은 신도용사촌의 골목길은 공무원주택과는 반대 구조다. 수평으로 뻗은 마을 아래쪽 메인 도로에서 낮은 경사도의 샛길이 위쪽으로 올라가고, 샛길 끝은 두세 개의 대문이 마주보며 막혀 있는 모양이 반복된다. 수평 구조의 용사촌과 수직 구조의 공무원주택을 직접 이어주는 유일한 길은 마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삼송감리교회 앞 경사로다. 

본격적인 삼송주택, 공무원주택, 신도용사촌 골목길을 구석구석 걷는 나들이는 무척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기자에게는 숨은그림찾기 하듯 재미난 공간이지만, 주민들에게는 조용한 일상을 영위하는 일상의 삶터이기 때문이다. 얌전하게 둘러보며 조심조심 포착한 미시적 풍경들은 다음 연재에서 소개하기로 하자.  

큰길에서 오르막 방향으로 언덕 아래를 파고든 신도용사촌 골목길. 대부분 어느 집 대문으로 마감되는 막다른 길들이다.
아래쪽 신도용사촌과 위쪽 공무원주택을 연결해주는 삼송감리교회 옆 오르막길. 
삼송주택 중심도로에서 가지를 친 옆길. 가파른 언덕을 계단식으로 깎아 집을 지은 까닭에 앞집과 뒷집의 높이차가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