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있는 지적 문장, 최인훈 문학은 현재진행형

[이인숙 소설속 떠나는 여행] (3) 소설가 최인훈의 작품세계 당대현실 신식민지 상황으로 파악 친일 독재 트라우마 끝없이 반추 

2025-07-21     이인숙 문학평론가
최인훈 작가의 서재.

[고양신문] 1960년은 4·19혁명으로 대표되지만 문학에서는 <광장>의 해였다. 4·19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달 만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로서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최인훈은 <세계인>에서 4월의 그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시작”되었으며, “한국의 전통이 탄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4월의 전통은 1980년 5·18과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24년 12·3 계엄 이후의 내란 극복, 응원봉의 빛의 항쟁으로 이어졌다. 

  <광장> 이후에도 작가는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화두> 등의 장편과 수많은 중단편들을 발표했다. 시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동서양의 역사 문화 종교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지적인 문장은 그를 접근하기 어려운 작가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인생을 풍문 듣듯 살지 않고 현장을 찾아가려고 했던’ 몸부림의 산물이다. 1970년대에는 희곡 창작에 집중하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둥둥 낙랑둥> 등 희곡사에 남을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했다. 소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그의 희곡은 시적인 지문과 대사들로 우리가 잘 아는 고전문학과 전설 등을 새롭게 해석하여 ‘극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의 희곡들은 읽기 위한 문학작품으로도 큰 감동과 재미를 주지만, 기회가 있다면 무대 공연을 보기를 권한다. 

서울 불광동 집 마당에서 책을 읽고 있는 최인훈 작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최인훈 작가는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남으로 내려왔다. 그는 고양시와도 깊은 인연이 있어서 2018년 7월 84세로 별세할 때까지 18년간 덕양구 화정동에서 살았다. 이에 뜻있는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고양시에 ‘최인훈 기념도서관’ 건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작가는 유년기와 사춘기에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었고, 월남하기 전 중고교 시절에 북의 체제를 경험했다. 가장 예민했던 사춘기에 겪은 북의 경직된 체제는 그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겨 <광장>과 <회색인>을 비롯한 여러 소설에서 그때의 체험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남에서는 젊은 시절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와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에 이은 군사정권을 경험했다. 최인훈 소설에서 친일의 문제와 이승만 독재의 그늘은 끊임없이 반추된다. 

보수정부 '신 친일파' 여전히 준동
"60년 전 소설속 내용과 똑같아"

  1945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은 됐지만 친일파들은 여전히 득세하고 있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부친이 대남방송에 나오는 바람에 경찰서에 불려가 개처럼 얻어맞는다. “너 따위 빨갱이 새끼 한 마리쯤 귀신도 모르게 죽여버릴 수” 있다는 정보과 형사의 협박과, 동료에게 자신의 무공을 자랑하는 그의 말을 듣고 주인공은 경악한다. “그는 자기 전성시대라면서, 일제 때 특고 형사 시절에 좌익을 다루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특고가 마치 한국 경찰의 전신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 명준은 자기가 일본 경찰의 특고 형사실에 와 있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특고(特高) 형사란 일제가 정치운동과 사상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었던 특별고등경찰 곧 고등계 형사를 말한다, 조선인 특고 형사란 독립운동가, 애국지사들을 감시 체포 고문하던 가장 악랄한 친일 매국노들이지만, 해방 후에 아무도 이로 인해 처벌받지 않았다. 반대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이들을 중용해 신생 대한민국 경찰 조직의 요직에 앉혔다. 형사는 “특고가 마치 한국 경찰의 전신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세계인>에서 작가는 이승만 정권은 민주주의보다 반공을 위한 정권이었기에 빨갱이를 잡기 위해 고등계 형사를 등용하는 모순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애국지사들은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의 친일경찰들에 의해 빨갱이 소리 들으면서 수사와 고문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애국지사들을 체포 고문하던 매국적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세상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해방 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금만 진보적인 색채를 띠면 좌파로 몰면서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시대착오적인 말을 하는 무리들이 있다.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정권까지 이어지던 고문은 이제 사라졌지만 좌파, 빨갱이 등의 색깔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통역장교, 정훈장교로 근무하던 최인훈 작가의 군 시절. 이 시기에 많은 작품을 썼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는 젊은 시절의 최인훈 작가.

  4·19 이전의 이승만 시절을 배경으로 한 장편 <회색인>(1963)에서 주인공 독고준은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풍자적인 글을 썼다. “식민지가 얼을 찾아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현지의 옛 지배층에게 뼈다귀나 던져 주어 지킴개로 부리며 지방별과 족보, 사주 같은 것을 부추겨 저희끼리 싸움질하게 부채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너무 족쳐서 뜻하지 않은 일을 빚어내지 않기 위하여 문치(文治) 비슷한 일을 물론 해야 한다. 불온한 청년들의 사명감을 꾀스럽게 돌려서 농촌 계몽으로 카타르시스시킨다.” 그 식민지의 이름은 나빠유(NAPAJ) 곧 일본(JAPAN)이다. 일제가 우리에게 한 짓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것이다. 문제는 일제가 ‘지킴개’로 부리던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의 기득권이 되어 지금까지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걸핏하면 “국시(國是)를 어겼다, 용공(容共)이다, 괴뢰들에게 동조한다고 야단”하면서 “앵무새처럼 한 가지 말만 하라”고 강요하던 이승만 정부와 지금의 일부 보수 극우의 태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해방 직후에 잠깐 ‘일본제국주의’가 증오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것은 곧 ‘빨갱이’로 대체되었다. 이에 대해 소설의 한 인물은 “오늘의 불행을 만들어 준 나쁜 이웃에 대해서 이렇게 어물어물 감정 처리를 못한 채 흘려버리는 것은 기막힌 일이야. 강간당하고도 헤 웃는다면 말은 다 한 것 아닌가. … 정치적인 강간의 상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그 국민은 정치적으로 불감증이 돼.”라고 한탄한다. 일제의 개노릇을 하면서 같은 민족을 핍박하고 체포 고문하던 친일 매국노들을 한 번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었던 과거가 지금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버젓이 대학의 강단에 서고, 대놓고 친일적인 주장과 행동을 하면서 이성적 비판을 좌파로 매도하는 정치인이 여전히 득세하는 것은 ‘정치적인 강간의 상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과거의 업보일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상처를 치유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18년을 고양시에서 지낸 인연으로 고양에서 최인훈 기념도서관 건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마지막 18년 고양서 산 인연으로
'최인훈 기념도서관' 건립운동 번져

  1967년부터 발표된 <총독의 소리> 연작은 환상 속에 존재하는 조선 총독의 목소리가 오로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해방이 됐지만 아직도 식민지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적의 입을 빌려 깨우치는 빙적이아(憑敵利我)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라디오 방송은 ‘조선총독부 지하부 소속 유령해적방송’이라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해방 후에도 이 땅에 남아있던 조선 총독은 유령방송을 통해 아직도 이 땅 곳곳에 숨어있는 친일 세력의 총집결을 요구하면서 조선의 재식민화와 분단의 영속화를 꾀한다. 

  당대 현실을 신 식민지적 상황으로 보는 작가의 위기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보수정부만 들어서면 일제 잔재 세력, 신 친일파가 준동하는 현실에서 최인훈 문학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지난해 고양시 독서주간 행사의 하나로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 읽기를 했을 때 적지 않은 참여자들이 지금의 현실이 60년 전에 발표된 소설 속 내용과 달라진 게 없다고 개탄했다. 탄핵으로 쫓겨난 권력자가 보여준 굴욕적인 친일외교는 국민들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고, 뿌리 깊은 친일세력의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는데 일부에서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가 늦어졌다고 비판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속국인가, 새 임금이 등극하면 중국의 책봉을 받아야 했던 조선시대에 살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미 관계는 중요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우리의 상전은 아니다. ‘식민지 근성’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자주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의 자존심을 지켰으면 좋겠다. 최인훈 작가가 다시 살아나서 <신 총독의 소리>를 써도 논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