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 경계 허문 살풀이춤... 스승께 보내는 마지막 인사

김정희 평화어울무용단 단장 살풀이춤 제30회 한밭국악전국대회 대통령상 수상

2025-07-24     김진이 전문기자

정명숙 선생 1주기 진혼제이자 예술적 헌사

제30회 한밭국악전국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정희 단장의 살풀이춤.

[고양신문] “종을 세 번 쳤습니다. 스승님을 다시 무대로 모시기 위해서요. 그날은 제가 아니라, 스승님이 추신 날이었습니다.”
지난 6월, 제30회 한밭국악전국대회. 고양과 파주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무용가 김정희 평화어울무용단 단장이 ‘살풀이춤’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날 무대는 단순한 경연을 넘어, 고(故) 정명숙 선생의 1주기를 기리는 진혼의 제의이자 예술적 헌사였다.

대통령상이 수여되는 이 대회는 전주대사습놀이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권위 있는 전통예술 경연이다. 예선과 본선을 거쳐 올라온 결선 무대에서,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객석에서 멀리 떨어져 무대를 평가하며 현장에서 바로 점수를 부여한다. 김 단장은 13분간 살풀이춤을 선보이며 최고상인 대통령상(명무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공연의 시작은 조용하면서도 엄숙했다. 종소리가 세 번 울리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기획자 오재익이 하얀 국화를 들고 무대 중앙에 등장했다. 오재익이 스승의 혼을 부르고, 김정희 단장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단원들이 차례로 국화를 헌화하며 무대는 하나의 제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무대 뒤편에는 생전 정명숙 선생의 영상이 흐르고, 무대 위 김 단장의 춤이 그것과 교차되며 현실과 기억,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번 무대는 여섯 장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춤은 이야기이자 기억이었고, 서사이자 기도였다.
첫 장 ‘입춤 : 바람이 머무는 자리’에서는 스승을 그리는 인사가 춤으로 표현된다. 바람처럼 스치는 김 단장의 동작은 조용했지만 강렬했다. 이어지는 ‘교방무 : 그대의 춤, 나의 길’은 정명숙 선생이 창작한 작품. 제자가 스승의 춤을 재현하며 그 길을 따라간다.

푸리에서 저승사자를 연기하는 오재익 기획가 

세 번째 ‘장고춤 : 숨, 그 길 위에’에서는 장고의 울림이 생의 리듬을 상징한다. 동작은 절제되어 있었고, 리듬은 단단했다. 네 번째 ‘푸리 : 이어짐, 빛이 닿는 곳’은 무대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다섯 명의 단원이 몸을 겹쳐 무덤을 형상화하고, 저승사자로 분한 오재익이 등장해 단원들을 이끌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단원들이 하나둘 일어나 뒤를 따르며 영혼의 이탈과 귀환을 표현했다.

“푸리는 관객도 오싹할 정도로 긴장감이 감도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지막 무대는 김정희 단장의 ‘살풀이춤’이었다. 김 단장이 가장 오랜 시간 추어온 춤이자 공연의 정점이었다. 긴 수건이 허공을 그리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풀어냈다. “살풀이는 해원의 춤이자, 작별의 춤입니다. 그날은 스승님께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기획자 오재익은 이번 공연을 “예술이 추모와 만날 수 있는 형식의 실험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님의 무대는 형식에 머물지 않고 영혼을 부르는 예술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저는 저승사자로 등장해 함께 몸으로 헌사하고 싶었습니다.”

김정희 단장은 국립국악원 출신으로, 1992년 고양국악연구원을 창립해 30여 년간 지역 전통문화의 계승과 확산에 헌신해왔다. 이후 평화어울무용단을 창단해 고양, 파주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시민축제와 문화행사에서 전통춤에 평화의 메시지를 접목한 공연을 이어왔다. 우리소리보존회 파주지부장, 신한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등을 역임하며 청소년과 시민 대상의 예술교육에도 앞장서 왔다. 특히 김 단장은 경남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로, 한국 전통춤의 정통을 잇는 전승자로 평가받는다. 지난해에는 파주문화예술대상 ‘원로예술인상’을 수상하며 지역 문화계의 귀감으로 자리매김했다.

기획자 오재익은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밀라노에서 무대디자인을 익혔으며, 이탈리아 오페라극장 출입 기자증을 갖고 오랜 시간 유럽 공연문화를 경험했다. “10년 이상 세계 무대를 직접 보며, 전통이 어떻게 현대와 만나는지, 예술이 어떻게 사회와 공존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오재익 기획가와 김정희 단장

김정희와 오재익은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세계무대를 겨냥한 공동기획도 추진 중이다. 내년에는 전통춤·재즈·현대미술이 어우러지는 공연을 뉴욕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오재익 기획자는 “재즈도 영혼의 음악이고, 살풀이도 영혼의 춤입니다. 이 둘이 만나면 경계를 넘는 위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내년 현충원 위령제를 시작으로, 사할린 강제징용 희생자, 태국 콰이강 희생자 등 억울하게 떠난 이들을 위한 ‘국제 위령제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다.

“꽃을 헌화하고 춤을 추는 게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잊힌 이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전통은 현재로 연결될 때 살아납니다. 김정희 단장의 춤은 그래서 현대예술과도 조화롭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재익 기획가의 기획과 김정희 단장의 살풀이 무대는 전통을 넘고, 경계를 넘어, 다시 세계로 확장될 예정이다. 

살풀이를 선보이는 김정희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