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신역 광장, 주민들이 지키다

[높빛시론] 오건호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2025-07-23     오건호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2022년 당시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행신역 광장에 설치된 자전거보관소 이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던 모습

[고양신문] 고양시 행신2동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행신역이다. KTX 열차가 출발하고 이용객도 많은 곳이다. 지난 7월 16일, 이 행신역이 전날과 달리 훤해졌다. 역 광장 인도 변에 놓여 있던 대형 자전거 보관소가 철거된 것이다. 오랫동안 ‘이전 예정’ 딱지를 붙인 채 행신역 광장을 가로막고 있던 건물이었다. 이제는 도로 건너편에서 행신역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광장도 원래 모양을 갖추었다. 자전거 보관소 옆에 있어 가리워져 있던 행신역 간판도 제 구실을 하게 되었다.

딱 3년 만의 원상 회복이다. 지역 주민들이 피켓팅, 기자회견, 주민서명 등을 벌이며 자전거 보관소 이전 활동을 벌인 지 말이다. 처음에는 고양시가 이미 완공한 구조물을 주민들이 옮길 수 있을까 의구심도 있었으나 활동이 거듭될수록 힘이 모아져 끝내 이전을 이루었다.

2022년 6월이었다. 갑자기 행신역 광장에서 바닥을 파내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무런 안내문도 없었기에 무슨 보수공사를 한다고 여겼는데, 얼마 지나 철골 구조물이 들어섰다. 행인들이 지나가는 광장길에 커다란 건물이라니, 한여름 폭염을 피하는 쉼터일까, 여름이 너무 뜨거우니 그늘막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특별한 대책을 세운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외부 철골이 완성되고 내부에 이층 거치대가 설치되었다. 자전거 보관소였다. 기존에 광장 화단을 따라 자전거 30대를 세웠는데 이 자리에 자전거 보관소를 만들어서 50대를 수용하겠단다. 고작 20대를 더 보관하기 위하여 투입된 예산은 무려 1억6000만원이었다. 더 심각한 건 자전거 보관소 위치다. 행신역은 광장이 좁은 편인데, 이 공간마저 자전거 보관소가 차지하면서 광장이 잘려지고 비좁아져 버렸다. 특히 이곳은 버스정류장과 삼거리 횡단보도 앞이라 행인, 자전거, 퀵보드 등이 많이 오고가는 길이이어서 보행자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자전거 보관소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일방통행이었다. 고양시는 지역사회 중심 공간에 대형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주민들과 협의하지 않았다. 주민자치회, 행정복지센터마저 구조물이 완성되었을 때에야 이 건물이 자전거 보관소라는 걸 알았다. 사전에 동사무소, 주민자치회와 논의하지 않고, 공사 내역도 보행자에게 알리지 않은 막무가내 행정이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먼저 나섰다. 우선 이 구조물이 자전거 보관소라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려야 했다. 위원들이 “행신역 광장 훼손하는, 인도 안전 위협하는 자전거 보관소 이전하라!”는 피켓팅을 들었고, 폭우 속에서 기자회견도 벌였다. 고양시가 응답하지 않자 주민들과 함께 <행신역 부적합 구조물(자전거보관소)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행신역 광장을 지킵시다”며 거리 주민서명을 진행하고 고양시에 전달했다. 한여름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주민들의 열정적 활동이었다.

자전거보관소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서명운동 진행 모습

결국 해냈다. 자전거 보관소 문제가 지역사회에 알려지고 언론에도 비판적으로 다루어지자 고양시는 추석을 앞두고 자전거 보관소를 이전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주민자치회와 대책위원회에 보내왔다. “사전에 지역주민 의견수렴 및 협의를 거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여 행신역 명소화를 방해하는 등 결과적으로 갈등을 유발하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이전 관련 행정처리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게 마무리는 아니었다. 2022년 9월에 고양시 공문이 왔고, 올해 7월에 자전거 보관소가 옮겨 갔으니 이전 결정이 실행되는 데도 무려 34개월이 걸렸다. 근 3년 동안 자전거 보관소는 흉물처럼 행신역 광장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 기간에 고양시는 “이전 예산이 없다”,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자” 등 말을 바꾸기도 했으나 주민들이 꿋꿋이 버티어 이전을 완료한 것이다.

비록 오래 걸렸지만, 마침내 고양시의 황당한 일방 행정에 맞서 주민들이 행신역 광장을 지켜냈다. 난생 처음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선전지를 나눠주는 일을 해본 분들도 많았다. 탁 트인 행신역 광장을 보며 뿌듯해하고 서로를 칭찬한다. 행신역 광장에도 주민자치, 풀뿌리 민주주의 역사가 새겨지고 있다.

오건호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