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닫혔던 파주 미군클럽... 남북 평화의 노래로 '활짝'
옛 미군클럽 '라스트찬스' 새단장 'DMZ 평화동행' 주관 <평화음악회> 주민·평화활동가 어울려 흥겨운 축제
[고양신문] 한국전쟁 이후 20여 년간 미군클럽으로 운영되다 50여 년 전 문을 닫은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라스트찬스’에서 반세기 만에 한반도의 평화를 노래하는 화합의 선율이 울려퍼졌다. 25일 저녁 ‘경계 위의 화음, 공존을 노래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평화음악회>에는 옛 미군클럽 시절의 라스트찬스를 기억하는 장파리 어르신들을 비롯해 마을주민, 고양과 파주의 평화활동가 등 200여 명의 관객이 찾아와 남과 북 출신 음악인들이 함께 펼치는 감동의 무대를 즐기며 연신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날 공연은 파주의 평화운동단체인 ‘DMZ평화동행(대표 안재영)’이 경기도 평화통일공모사업의 후원을 받아 주관했다. 파주 장파리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안재영 대표는 ‘평화는 함께 부르는 작은 노래에서 시작된다’는 취지를 품고, 분단의 역사가 녹아있는 고향마을의 옛 건물에서 오랫동안 꿈꿔온 뜻깊은 공연을 성사시켰다.
1부에서는 북녘에 고향을 둔 단원들로 구성된 ‘백두한라예술단(김영옥, 고미향, 최지유, 최복화)’의 흥겨운 공연이 펼쳐졌다. 한때 남북교류의 주제가처럼 불렸던 ‘반갑습니다’로 시작된 무대는 홀로아리랑, 베사메무초, 동백아가씨 등 심금을 울리는 레퍼토리가 이어졌고, 화려한 부채춤과 꽃춤도 공연의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2부에서는 ‘청춘레코드’ 소속 청년 뮤지션들(김정태, 황의진, 이세호, 조기흠)이 무대에 올랐다. 발라드와 팝, 트로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수준 높은 공연에 객석에서는 앙코르와 환호가 이어졌다.
공연은 말 그대로 신명나는 마을 잔치였다. 장파1리, 2리 이장님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고 환영 인사를 전했고, 흥겨운 트로트 무대가 펼쳐질 때면 좌석 뒤편에서 신나는 댄스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라스트찬스 건너편 동네 가게 사장님도 북적이는 손님들을 치르느라 오래간만에 손발이 바빴다.
이날 공연은 기록적인 폭염에 에어컨 없는 실내에서 열린 탓에 관객들은 연신 주최 측이 나눠 준 얼음생수를 마시고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식혀야 했다. 하지만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무대에 푹 빠져 누구 하나 불평을 표하지 않았다.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 노을빛이 붉게 물들었고, 이내 어둠이 찾아오자 임진강 너머에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열정 가득했던 무대만큼이나 ‘라스트찬스’라는 공간의 매력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선사했다. 삼각형 목조 트러스구조 지붕과 측면 세로창이 줄지어 있는 강당 형태의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의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고, 전면부 상단에 삼각지붕을 가리는 평면벽을 설치해 건물 규모를 돋보이게 한 구조는 경기북부 미군부대마을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압권은 클럽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부조 작품들이다. 선사시대의 벽화부터 이집트, 그리스 등 고대문명의 미술작품들을 다양한 기법과 색상으로 재현해 낸 벽 장식들은 미군클럽 시절의 화려함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민간예술의 걸작으로 평가할 만했다. 때문에 이날 공연을 감상하는 중간중간 화려한 벽장식들을 사진으로 담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장파리에서 태어난 안재영 대표는 미군들이 지어준 ‘재건중학교’를 다녔고, 미군들이 철수한 후에는 민통선이었던 임진강 리비교 건너로 들어가 농경지를 처음으로 개척하기도 했다. 라스트찬스 건물의 역사 역시 고스란히 기억하는 안재영 대표는 “미군클럽 폐업 후 창고건물로 쓰면서 시멘트로 벽을 발랐는데, 7년여 전 원형을 복원하려는 새 건물주의 각별한 노력 덕분에 1년 반에 걸쳐 벽 속에 숨어있던 장식들이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물 안쪽 통로에는 우리민족의 아리랑을 테마로 섬세한 작품이 장식됐다”고 설명도 덧붙였다.
공연을 치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안 대표는 “무대도 뜨거웠고, 객석 온도도 뜨거워서 땀들을 많이 흘리셨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이어 “북향민 예술인들과 남한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함께 만드는 화합의 무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DMZ평화동행이 주관하는 ‘춤추는 평화, 춤추는 한반도’ 프로그램은 북콘서트, 평화버스킹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연이어 진행한 후 10월 17일 라스트찬스에서 또 한 번의 <평화음악회>를 개최하며 8회차 여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안재영 대표는 “10월에는 날씨도 훨씬 좋아서 더 멋진 무대가 펼쳐질 것”이라며 일찌감치 초청 인사를 전했다. 문의 031-935-5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