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의 부처님이 손짓으로 가르침 전하는 사찰

세계유일 수어설법 불화 완성 '금륜사' 본각 스님

2025-08-04     김진이 전문기자

2010년 지금의 터 매입, 15년간 법당 하나씩 세워
세계유일 ‘수어설법 불화’… “다른 손짓, 다른 가르침”
조계종 첫 비구니 법계위원, 지역·포교 균형 꿈꿔

금륜사 대웅전 불화를 설명하는 본각 스님.
금륜사의 수어불화

[고양신문] “그림 앞에 선 청각장애인 신도들이 말합니다. ‘스님, 뜻이 보입니다.’”
본각 스님은 그렇게 웃으며 대웅전 벽화를 바라봤다. 금륜사 대웅전 안, 사방 벽면을 감싼 불화에는 1000명의 부처님이 수어, 곧 손의 언어로 부처님이 법을 설하고 있다. 단 하나의 같은 동작도 없다. 1000명의 부처님이 1000가지 다른 손짓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요한 대웅전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없지만, 묵묵한 울림은 방문자의 가슴 깊숙이 도달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불화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말로만 전달되는 법문은 잊히지만, 몸으로 체험한 가르침은 남습니다.”

서울에서 고양으로, 폐가에서 도량으로
본래 서울 서대문 금장사·금화사에서 시작한 본각 스님의 사찰 운영은 2010년 고양시로 이어졌다. “수어 설법 불화를 걸 벽이 필요했습니다. 부처님의 손짓 하나하나가 담긴 그림 수백 점을 품을 공간을 찾다 보니, 우연히 이 건물과 인연이 닿았죠.” 당시엔 폐업한 식당 건물이었지만, 벽이 많고 터가 마음에 들어 대출을 받아 매입했다. 그렇게 고양시에서의 본격적인 불사가 시작됐다.

이후 스님은 15년간 리모델링과 건축을 병행하며, 법당과 요사채를 하나씩 세워갔다. “이제야 겨우 사찰 격을 갖췄습니다.” 수화 설법 불화 1000점을 온전히 품을 도량은 그렇게 한 칸 한 칸, 신심으로 지어 올려졌다.

수어 설법 불화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작업이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불화를 떠올리던 본각 스님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법구경은 시로 된 경전입니다. 손동작으로도 뜻을 충분히 전할 수 있어요.” 이후 이호신 화백이 제작을 맡았고, 불교 수어 전문가 김장경씨가 수어 동작 모델링을 담당했다. 사진기 앞에서 수십 개의 손짓을 시연하고, 이를 그대로 그려낸 창호지 위 불화. 한 폭 한 폭에 담긴 부처님의 손짓은 모두 다르다.

어린이 법회부터 도시농업까지, 지역을 품은 도량
금륜사는 단지 수행처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린이 법회와 방과후교실, 사찰음식 체험, 텃밭 농사와 장터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과 연결돼 있다. “종교는 삶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습니다. 특히 불교는 조화를 추구하죠.”
서울 금화사 시절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며 ‘보리교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처님과 예수님 사진을 나란히 걸고, 서로 인사하는 법부터 가르쳤습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고양시로 자리를 옮긴 지금, 9월부터는 청소년 법회도 다시 시작한다. “지역사회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숨 쉬는 사찰이 되고 싶어요. 문을 열고 들어와 밥 한 그릇 나누고, 마음도 나누는 그런 공간이요.”

여성 승가의 역사, 지역 포교의 미래
본각 스님은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전국비구니회 제12대 회장, 그리고 2024년 조계종 최초의 비구니 법계위원으로 종단 내 여성 리더십을 개척해왔다. 승가대학에서 26년간 후학을 양성한 본각 스님은 지금도 일산병원, 64사단 군법당 등 다양한 지역 공간에서 포교와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승려는 단지 수행자가 아닙니다. 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신도들과 삶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죠.”

“고양시에 뿌리내릴 열린 사찰”
고양시 용두동에 자리한 금륜사는 이제 지역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한다. “장애인, 아동, 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를 품는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불교의 본질을 실천하고 싶어요.”

대웅전 불사는 끝났지만, 본각 스님의 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농산물 무인판매소, 사찰음식 교실, 도농 연계 프로젝트 등도 구상 중이다. “우리는 이미 지역 안에 있습니다. 이제는 지역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문을 넓힐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