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응으로서 비혼출산 지원
[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최근 '비혼출산'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접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혼 출생아 수가 증가 추세에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를 개인의 가치관 변화와 다양한 가족 형태의 출현으로 해석하곤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려는 주체적 선택이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극심한 저출산ㆍ저출생 대응의 하나로서 비혼출산 지원정책도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빠르게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었는지. 혹시 이 숫자의 이면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다른 맥락은 없는가?
우선, 통계에서 말하는 '비혼 출생아' 혹은 정확히는 '혼외출생아'의 정의부터 살펴봐야 한다. OECD가 발표한다는 비혼출산 실태 통계도 더 정확히 말하면 ‘혼인외 출생아(Share of births outside marriage)’ 통계다. 법적으로 혼인 상태가 아닌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에 법률혼 상태였는가?”이다. 아이가 세상에 나올 당시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설령 그들이 이미 결혼을 약속했거나 향후 혼인신고를 할 계획이었다 할지라도, 그 아이는 통계상 ‘혼외출생아’로 분류된다. 이 맥락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코로나19 팬데믹'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결혼을 계획했던 많은 예비 부부들은 결혼식 연기나 취소는 물론, 혼인신고 자체를 미루는 경향을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이가 먼저 태어난 경우가 발생했다면 어떨까?
혼인을 전제로 아이를 가졌으나, 외부적 상황으로 인해 혼인신고가 지연되면서 아이가 먼저 세상에 나온 경우, 이 아이는 출생 시점에 부모가 법률혼 관계가 아니었기에 여지없이 '혼외출생아' 통계에 편입된다. 그리고 팬데믹 종식과 함께 미뤄졌던 혼인신고가 폭증하는 패턴은 이러한 가설에 무게를 싣는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혼외출생아 증가'라는 통계가 오롯이 '결혼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비혼주의자들의 자발적 출산 증가'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오히려 혼인 의사는 분명했으나 사회적 변수로 인해 혼인신고가 늦어진 사례들이 상당 부분 이 통계를 부풀렸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통계의 해석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단순히 “비혼 출산이 늘고 있다”는 표피적 해석을 하지 말고 숫자의 변화가 갖는 배경과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과연 현재의 혼외출생 통계가 '나는 결혼 없이 아이만 낳아 기르겠다'는 명확한 '비혼주의'적 선택의 결과를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통계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혼인신고 시 ‘이미 태어난 자녀 중 혼인 당시 부모가 미혼이었던 자녀 수’ 혹은 ‘혼인 신고 시 동반 자녀 수’와 같은 보조 지표를 만들거나 공개한다면, 혼외출생 통계가 가진 다양한 맥락을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 비혼출산을 둘러싼 오해를 줄이고, 동시에 실제 자발적인 비혼출산 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제도적 지원 방안을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비혼 출산 증가'라는 현상은 단일한 요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 변화를 상징한다. 통계가 보여주는 숫자 그 너머의 진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외부 변수에 의한 '통계적 착시' 가능성을 염두에 두되, 동시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수용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단지 숫자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어떤 형태의 가족에서 태어나든 차별받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