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곁 야생의 숨결, 영주산과 묘하나골산을 걷다

오창환의 마을숲 스케치

2025-08-13     오창환 어반스케처
영주산 습지에 서식하는 맹꽁이를 펜그림으로 그렸다. 옛날 유럽의 동물 도감에 이런 펜그림이 많다.

[고양신문] 고양시민 생태 탐사의 세 번째 목적지는 영주산(해발 61.5m)과 묘하나골산(해발 54.7m)으로, 일산과 화정 사이의 넓은 벌판에 있는 산이다. 낮은 산이라서 만약 강원도에 있었다면 산이라 부르기 민망했을 터이지만, 평지가 많은 고양시에서는 엄연한 산이다. 특히 ‘묘 하나가 들어갈 만한 산’에서 유래되었다는 ‘묘하나골산’은 특이하면서도 정겨운 이름이다. 두 산은 연결되어 있어 보통 함께 오른다.
7월 25일 아침 8시 반, 수자원공사 고양정수장 앞에 탐사팀이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고양신문과 진행을 맡은 에코코리아, 그리고 올해 행사를 후원하는 수자원공사 관계자들과 탐사 참여자 등 20여 명이 함께했다. 여러 번 참석한 분들은 벌써 눈에 익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아침인데도 태양이 뜨겁다. 날이 더워 얼른 그늘로 들어가야 해서 간단한 소개만 하고 서둘러 수자원공사 옆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 입구부터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그중 유난히 큰 소리로 우는  매미가 ‘말매미’다. 그놈들은 낮이든 밤이든 기온이 25도 이상이면 계속 운다고 하니, 열대야에 들리는 매미 소리가 바로 말매미 소리다.
탐사팀은 산 입구에 있는, 야생생물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영주산 습지’에서 잠시 멈췄다. 이은정 에코코리아 사무처장이 그 장소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원래 산 아래에 습지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산이 물을 품었다가 아래에서 샘처럼 분출하기 때문이다. 이곳에도 그런 물을 이용해 약 600평가량의 논과 습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습지에는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고, 고양시는 맹꽁이 서식을 주요 이유로  이곳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야생생물 보호구역에서는 토석을 채취하거나 폐기물을 버릴 수 없다.
그런데 2017년, 킨텍스 지역 개발 과정에서 나온 흙을 이곳에 불법 매립하면서 논과 습지가 사라져 버렸다. 이후 조사와 고발이 이어져 원상회복 명령이 내려졌고, 일부 불법 매립 토사가 제거되었지만 완전한 회복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재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맹꽁이 서식도 확인되었지만, 산아래 습지라 부르기엔 너무 물이 없다.
표지판을 보니 지정 구역 면적이 3,246㎡, 즉 981평으로 1000평도 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구역 지정이 산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아마도 사유재산 침해를 최소화하려고 그런 듯하다.

맹꽁이는 수컷만 울며 "맹~~ 맹~~” 하고 운다. “꽁”은 울음소리에 없다. 근처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분이 물었다.
“우리 농장 근처에 맹꽁이처럼 보이는 게 있는데, 그게 맹꽁이인지 두꺼비인지 모르겠어요.”
“두꺼비는 주먹만 하고, 맹꽁이는 훨씬 작아요. 큰 동전보다 약간 큰 정도예요.”
“그럼 두꺼비가 맞겠네요.”
산길을 오르며 큰낭아초가 많이 보인다. 큰낭아초는 중국이 원산지인의 귀화식물인데, 꽃이 이리의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낭아(狼牙)’라는 이름이 붙었다. 꽃은 싸리꽃과 비슷하고, 잎은 아까시나무와 닮았다. 무리 지어 피어난 큰낭아초 군락이 우리를 환영하는 촛대처럼 보인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단풍잎돼지풀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에서 온 외래종으로, 잎이 단풍잎처럼 다섯 갈래로 깊게 갈라져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키가 보통 1m 정도인데 크면 3~4m까지 자라며, 산지, 하천변, 도로변에 많이 번식한다. 너무 잘 자라서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식물이다. 우리 집 근처에도 이 풀이 많은데, 한번 자라기 시작하면 주변의 키 작은 풀들은 자취를 감춘다. 적응을 너무  잘해도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노랑망태버섯.

탐사대가 한 곳에 몰려 사진을 찍고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화려한 자태의 버섯이 보인다. 노랑망태버섯이다. 망태를 뒤집어쓴 것 같기도 하고 망사 옷을 입고 춤을 추러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신부의 드레스 같다고 하여 ‘드레스 버섯’이라고도 부른다. 노랑망태버섯은 단지 몇 시간 만에 녹아내린다고 하니, 길가에서 노랑망태버섯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버섯을 보면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다.
“저 버섯은 엄청나게 화려한데 독버섯일까요?”
“아마 그럴 걸요. 화려한 건 독버섯, 소박한 건 식용 버섯이라 하지 않나요?”
하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노랑망태버섯은 먹을 수 있는 버섯으로 포자와 망태 부분을 제외하고 대를 먹는데, 고급 요리에 쓰인다고 한다. 물론 길가에서 만난 노랑 망태버섯을 함부로 채취해 먹는 건 위험하니까,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두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수자원공사 옆길로 올라가 묘하나골산 정상까지 갔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솔길을 따라 영주산 쪽으로 향했다. ‘오솔길’은 오소리가 다니며 길을 내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이 길을 지나갔다는 상상을 해보면 참 신기하다. 이곳엔 수리부엉이도 있다고 하니, 언젠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여름 철새인 뻐꾸기 소리도 많이 들린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뻐꾸기 새끼가 둥지 주인새의 알을 밀어내는 장면을 보면 얄밉기도 하지만, 그것도 자연의 일부일 것이다.

왼쪽은 영주산 갤러리에 걸린 내 작품이고 오른쪽은 갤러리 전경이다.

 

왼쪽 사진이 큰낭아초, 오른쪽이 단풍잎돼지풀이다.

오솔길을 따라 영주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자와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다. 예전엔 마을 숲은 경제적 가치가 있었다. 참나무를 태워 숯을 만들고, 버섯을 기르고, 약초를 채취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기능은 많이 사라졌다. 마을산을 오로지 부동산적 가치만을 따지는 시대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는 정서적 가치는 돈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에코코리아 이은정 사무처장님이 탐사대원 모두에게 “마을산의 예술적 가치를 생각하며 5분 동안 작품을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모두 작은 종이를 들고 주변에서 재료를 채취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나도 종이를 집어 들어 달개비 꽃을 하나 꽂고, 참나무 이파리 하나를 붙였다. 초록색만 있으면 단조로우니까 색을 더하고 싶어서 붉은 산딸기 열매를 따서 종이에 문질러 채색을 했다. 그리고 ‘Colorful Nature’라고 적어보니 그럴듯해 보인다. 자연은 단색이 아니라 수많은 색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다른 분들도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빨랫줄에 집게로 널어 영주산 산중 갤러리를 열었다. 모두들 창의적인 작품에 감탄했다. 사진을 찍은 뒤 산을 내려왔다.

도심의 끝자락,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 지나던 작은 산에는 여전히 야생이 숨 쉬고 있다. 맹꽁이는 울고, 오소리는 땅을 긁으며 지나간다. 한여름, 짙은 초록의 그늘 아래에서 우리는 잊고 지낸 자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낮은 산이 품은 깊은 생명, 그 여름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