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발언대] 장항습지 '생태혁신 모델'의 허구

2025-08-13     박평수 기후위기 고양비상행동 상임대표
박평수 기후위기 고양비상행동 상임대표

[고양신문] 최근 이동환 고양시장이 아프리카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에서 열린 제15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 참석해 장항습지를 ‘기술과 연대로 지켜낸 생태 혁신 사례’로 소개했다. 
도시 생물다양성 특별 세션에서 그는 드론을 활용한 AI 예방형 철새 관리와 폐기 곡물을 재활용한 먹이주기를 ‘도시형 생태 혁신 모델’이라 자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장항습지가 처한 현실과 람사르협약의 핵심 정신을 외면한 발표였다.

장항습지는 2006년 4월 한강하구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2021년 5월 21일에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면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임을 인정받았다. 
멸종위기종이자 법정보호종인 재두루미, 큰기러기, 개리, 황새 등 수많은 철새가 찾는 생명의 터전인 장항습지는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과거에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철새 쉼터를 조성하고, 환경정화 활동을 이어오며 생태 보전에 앞장서 왔다.

그러나 2021년, 환경정화 활동 중이던 시민이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한 이후, 고양시는 시민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습지 내의 생태 보전 활동을 중단시켰다.  그러고는 안전 대책 마련은 뒤로 미룬 채, 지금까지도 출입 금지 조치를 유지하면서 실내 생태관에서의 프로그램만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장항습지에는 물골마다 부유 쓰레기가 넘쳐나고, 가시박 등 생태교란 식물의 확산으로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장항습지의 상징인 선버들이 고사하고 있다. 들개의 유입으로 고라니 개체 수는 급감하고, 조류의 서식지 역시 점차 불안정해지고 있다. 과거 시민이 자발적으로 무논에 물을 채워 철새의 쉼터를 제공하던 활동도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중단되었다. 

람사르협약은 지역사회 참여와 환경교육(CEPA)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시민의 철새 모이주기 활동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철새를 보호하고 생태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시민을 생태 공간에서 몰아내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질적 안전 대책이 없다면, 이동환 시장이 발표한 ‘드론을 통한 모이주기’는 기술적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쓰레기가 방치되고, 생태계가 훼손되는 현장에서 본질적인 문제에는 눈 감고 '기술적' 접근만 강조하는 것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생태 보전은 기술이 아닌 사람의 손에서 시작되며 이는 시민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안전은 시민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기술이 사람에게서 자연을 빼앗아서는 안 될 것이다. 

고양시는 국방부, 환경부 등 관계기관과 적극 협의하여 장항습지 전역에 대한 지뢰 탐지와 제거 등 종합적인 안전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장항습지는 기술로만 지킬 수 없으며 시민과 함께할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태 공간이 된다. 고양시 행정은 생태 혁신이라는 허울 아래 시민을 배제하는 정책을 멈추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정한 보전을 위한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혁신은, 언제나 시민과 함께 하는 것임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동환 고양시장이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열린 제15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 참석해 장항습지를 ‘기술과 연대로 지켜낸 생태 혁신 사례’로 소개했다. [사진제공=고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