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청소년, 민주시민의 길을 걷다
[고양신문] 최근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과 이념의 충돌 속에서 깊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공부에만 전념하고 성인이 되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어린 시절부터 시민성 교육, 민주시민교육을 받으며 현재의 정치 상황까지도 교육의 소재로 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민주시민교육, 역사의 발자취와 그 필요성
우리나라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논의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체계적인 민주시민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 세대가 많다는 점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듯, 민주시민교육은 우리 국가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국민주권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은 단순히 하나의 과목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과 학교생활 전반을 관통하며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시대정신의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학생이 자기 자신과 공동체적 삶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상호 연대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으로 정의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의 현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에서 민주시민교육의 성과는 아직 미미합니다. 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정문성 외, 2018)에 따르면, 학교 현장의 약 80% 가까이가 민주시민교육을 '학생 자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86.48%는 이를 '준법 교육' 또는 '질서 교육'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제 학교에는 민주시민교육 전담 부서가 없고, 교육과정, 교과서, 교과목, 수업 시수 등 물적 기반이 부재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교사들이 민주시민교육을 인성교육이나 안전교육, 폭력 예방 교육처럼 '범교과 학습 주제'의 하나로 여기거나 형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행정 잡무로 여겨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교사와 학생의 정치기본권 부재입니다. OECD 38개 회원국 중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고 있어, 교사들이 '정치적 천민'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입니다. 교사와 학생에게 정치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교육과정을 개발해도 민주시민교육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과도한 행정업무와 법정 수업일수(우리나라는 190일 이상으로 미국, 일본, 프랑스보다 많음)로 인해 교사들이 지쳐있어 교육 본질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문제, 그리고 입시 중심의 교육 환경이 민주시민교육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새로운 흐름과 나아가야 할 방향
다행히 민주시민교육은 점차 전통적인 교과 공부에서 벗어나 체험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부산 송수초등학교의 '교실 국가' 운영 사례는 학생들이 직접 직업을 갖고 가상화폐로 월급을 받으며 세금과 임금 체불 문제를 경험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등 민주주의 원리를 몸소 체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남 세종중학교의 '사회 참여 동아리'는 학생들이 지역 사회의 문제(기후 위기, 사회적 약자 돕기 등)를 직접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며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민주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실천과 참여 중심의 교육 강화, 교사와 학생의 정치기본권 보장,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교육과정 지향, 교원의 전문성 강화 및 행정 부담 경감, 협력적 교육 생태계 구축 등이 절실합니다.
교사들은 편향되지 않게 아이들이 다양한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며, 특정 이슈에 대해 다수의 해석 외에 다른 관점도 제시하는 '설명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처럼 특정 이념을 강요하지 않고, 논쟁적인 내용은 논쟁적으로 다루며,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원칙이 중요합니다.
민주시민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성찰하는 힘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한 불인정'을 넘어, 경청에 기반한 상호 존중과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에 공교육이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