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고개' 애니골서 추억 더듬으며 맛집 순례를

[황범하의 맛집 탐구] 4-일산 애니골 한소반쭈꾸미, "맛있는데 엄청 매워" 김가방양꼬치, 건두부볶음 입맛 저격 화사랑, 80년대 감성의 카페 겸 문화공간 기차여행 논밭 사라졌지만 추억은 여전

2025-08-25     황범하 KBS PD
건두부볶음

[고양신문] 1980년대 서울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핫 플레이스가 있었으니 바로 백마역이다. 신촌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을 벗어나 백마역에 내려 인근 카페촌에서 친구들과 술과 음악을 즐기던 지역이 지금의 백마역 일대인 셈. 1980년대의 대학 캠퍼스는 낭만의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대학은 전두환 폭압 정권에 맞서서 투쟁한 최전선이었고 낭만보다는 최루탄이 캠퍼스에 가득했다. 나 역시 대학생이 되어 술맛보다 먼저 최루탄의 고약한 맛을 알게 되었고 농담 삼아 금주에 맛본 신형 최루탄 맛과 성능에 대해 우리들끼리 품평회를 열 정도였다. 그런 대학 생활 가운데 한적한 논밭에 둘러싸인 백마역의 카페촌은 당시 대학생들이 잠시나마 현실 문제를 떠나서 낭만을 맛볼 수 있었던 청춘의 공간였다. 기차를 타면 누군가는 통기타를 연주하고 있었고 삼삼오오 둘러 앉아 각종 게임을 즐기며 백마역을 오가는 기차 여행을 즐기곤 했다. 

가장 유명했던 곳은 백마역 카페촌의 상징이자 원조격인 화사랑이다. 1979년 문을 연 이곳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문화 공간 겸 통기타 주점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신도시건설로 토지가 수용되자 1986년 지금의 애니골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그해 배우 황신혜, 유인촌 주연의 드라마 '첫사랑'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 인기에 힘입어 주변에 많은 카페들이 생기게 되고 이때부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골이 시작된다. 
애니골의 원래 지명은 애현골(愛峴골), 즉 사랑고개 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기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데이트를 즐긴 커플들이 많이 오가면서 생긴 이름이라 추정된다. 애현골에서 애인골을 거쳐 애니골로 발음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자고로 연인들의 데이트에는 맛집이 빠지지 않는 법. 당연하게도 이곳에 많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생겨났고 2011년에는 경기도 지정 풍동 애니골 음식문화거리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소반쭈꾸미
 도토리묵사발

일산에 거주하면서 나도 자주 애니골 음식점들을 찾아 가족 외식을 즐기곤 했는데 많은 식당들 중에서 가장 자주 찾아간 두 곳의 식당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한소반쭈꾸미. 매콤한 쭈꾸미와 도토리전의 조화가 더위에 지친 입맛도 불러 일으키는 식당이다. 이곳의 주메뉴는 식당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 쭈꾸미. 비법 양념장으로 화덕에서 직화로 볶아낸 쭈꾸미는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을 내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다. 덜 매운 맛과 매운 맛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설명에는 덜 매운맛이 신라면 맵기, 매운 맛이 불닭볶음면 수준이라고 되어 있지만 내 입맛에는 덜 매운 맛도 신라면보다는 좀 더 맵다. 첫 방문 때 매운 음식을 엄청 좋아하는 가족의 선택대로 매운 맛 쭈꾸미에 도전했다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맛있는데 엄청 매워’를 연발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덜 매운 맛만 선택한다. 쭈꾸미 볶음 단품(1만2000원)을 시키기보단 세트(1만6000원)를 주문하는 걸 추천. 세트에는 쭈꾸미 볶음과 함께 발사믹 소스 채소 샐러드와 바삭하게 잘 구워진 고소한 맛의 도토리전, 시원한 육수에 담겨져 나오는 도토리묵사발이 함께 나온다. 매운 쭈꾸미와 조화가 좋아서 매콤한 맛을 더 즐길 수 있게 돕는다. 콩나물과 무생채는 마음대로 갖다가 먹을 수 있는데 매운 맛이 버거우면 밥 위에 콩나물을 추가로 얹어서 매운 쭈꾸미와 같이 먹으면 된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이나 어린이들을 위해서 왕새우튀김(4마리 1만1000원) 정도 외엔 선택지가 없어서 가족 외식용 식당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참고로 내 매운 맛 능력은 신라면은 거뜬히 먹으나 틈새라면은 좀 버거운 수준이다. 넓은 야외 주차장이 딸린 단독 건물에서 영업했었으나 장소를 옮겨 올해 7월부터는 마두골프연습장 입구 건물 2층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주차는 골프연습장 주차장을 이용하며 된다.

양꼬치
호남식볶음밥, 건두부볶음 꽃빵튀김 양꼬치, 지삼선, 한소반쭈꾸미 도토리묵사발

그리고 김가방양꼬치. 예전에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는 프로그램 중에서 중국 하얼빈편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방송에서 본 현지 식당과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이다. 애니골의 이 식당은 흔치 않은 통양다리, 통양갈비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코미디TV의 인기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고소한 양고기를 즐길 수 있는데 통구이 주문 시에는 식당 도착 최소 한두 시간 전에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직원분이 직접 구워주고 먹기 좋게 잘라 주시는데 내 입맛에는 통양다리구이가 기름기가 많은 통양갈비보다 더 좋았다. 4인 기준으로 2kg정도는 주문해야 하는데 주문 시 가장 작은 사이즈가 1.7kg. 이 식당의 메뉴가 워낙 다양해서 최소 사이즈인 1.7kg를 주문하고 다른 음식들도 같이 즐기는 것도 좋다. 통구이 가격은 100g당 4000원. 양꼬치도 좋다.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과 서울 성수동의 유명 양꼬치집을 얼마 전에 다녀온 적 있는데 김가방양꼬치가 더 만족스러웠다.. 양꼬치 1인분에 1만4000원. 맥주 안주로 당연 최고. 메뉴가 정말 다양하다. 양고기구이 외에도 꿔보로우, 칠리새우, 깐풍기. 가지튀김 같이 비교적 익숙한 메뉴와 함께 마라항궈, 경장유슬, 지삼선, 가상냉채 등 비교적 낯선 메뉴 등 20가지가 넘는 요리류와 온면과 냉면, 호남식볶음밥, 마파밥 등 10가지가 넘는 식사 메뉴가 있다. 이곳 메뉴 중 절반 정도의 음식들을 먹어봤는데 다 평타 이상의 맛이고 대부분 요리 가격이 1만5000원 내외로 가성비도 매우 좋다. 

그중 내가 이곳에 가면 꼭 시키는 메뉴가 건두부볶음이다. 나는 두부류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데 백종원 프로그램에서 본 중국식 건두부볶음이 궁금하던 차에 이곳에서 발견, 맛을 봤는데 내 입맛에 딱이었다. 널찍한 면발의 국수처럼 나오는 건두부볶음을 밥 위에 얹어 먹으면 청양고추가 약간 들어가 있어 살짝 매콤하고 짭짤한 맛이라 이 또한 밥도둑이다. 그밖에도 지삼선, 마파두부, 깐풍가지 등 다 맛나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가족 외식하러 자주 찾아갔다. 식후에 디저트처럼 추천하고픈 메뉴는 꽃빵튀김. 내가 먹어본 꽃빵튀김 중 가장 잘 튀겼다고 생각되는데 같이 나온 연유에 찍어 먹으면 행복해진다. 꽃빵튀김 먹을 위장을 반드시 남겨 놓으시라. 주차는 단독 야외 주자창이 있어서 편하다.

꽃빵튀김

현재 애니골에는 식당들의 숫자가 줄고 천 세대 이상의 빌라촌이 형성되어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예전의 기억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있다. 백마역 카페촌의 원조 화사랑이 2020년 고양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되어 1980년대 감성을 담은 카페 겸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고양시민이 되면서 군부정권의 최루탄에 신음하던 청춘들의 쉼터 공간이던 백마역 인근을 직장인으로 출퇴근하며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 시절 기차 여행과 논밭은 사라졌지만 추억은 여전하다. 간만에 애니골에서 식사를 한 후 한국 영화계의 거장 이창동 감독의 데뷔 영화 <초록물고기>(1997년)를 찾아 볼까 한다. 영화 <초록물고기>는 신도시 일산을 배경으로 경제 성장과 청춘의 고민, 변화하는 가족의 의미를 다룬 영화이다. 한석규, 심혜진의 청춘 시절 모습과 함께 그 시절 일산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애니골의 추억과 함께 흥미로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