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시대, 정수장은 변신중

[조창현의 물따라 가보는 고양] 3. 고양아쿠아스튜디오 2000년 5월 문닫은 폐정수장 10년만에 수중촬영스튜디오로 '기생충' '명량' 등 100여편 촬영 해외영화 유치 글로벌 명소화

2025-08-25     조창현 한국수자원공사 경기서북권지사 관리부장
2011년 문을 연 고양아쿠아스튜디오 전경.

[고양신문] 지난 두 편에 이어 오늘도 시작은 영화 이야기이다. 영화 <실미도>는 2003년 연말에 개봉해서 한국 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다음해 청룡영화상을 휩쓴 초대박 흥행 영화였다. 영화 덕분에 실미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는데 정작 실미도에 영화 세트장은 남아 있지 않아서 찾아간 시민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지자체가 불법토지형질변경과 산림법, 건축법 위반을 이유로 영화 실미도 세트장을 철거시키고 제작사를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언론이 문화의 가치를 모르는 근시안적인 행정이라고 비판했고 결국 당시 지자체장은 문화관광체육국장과 구청 부청장을 대기발령하는 조치를 취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구청 공무원들은 법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다.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여 지자체의 공유재산인 토지를 적법하게 관리한 것이다. 
  이 일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바로 소통에 있다. 철거와 고발을 하기 전에 지자체 책임자와 담당 공무원, 지역주민과 영화사, 문화산업 관계자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어보기라도 했다면 어땠을까(이게 바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타운홀 미팅이 아닌가).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았을 때 나중에 본인이 감당해야 할 감사를 가장 두려워하는 지자체 실무자들의 책임을 덜어주고 다양한 의견 공유 속에서 더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결론이 나서 실미도가 지금은 시민들이 더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기생충' 촬영 장면.

 반면에 철거될 시설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창의적으로 변신시켜 성공한 사례도 있다. 바로 고양산업진흥원이 운영하고 있는 고양아쿠아특수촬영스튜디오다. 오스카상을 받은 <기생충>을 비롯하여 <해운대>, <명량>과 <한산>, 최근작 <밀수> 등 10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수중촬영장으로 쓰여 'K-무비'의 메카가 된 이곳은 원래 고양시 덕양구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정수장이었다. 1984년부터 운영되던 정수장은 고양시 전역에 수자원공사가 공급하는 광역상수도가 도입된 2000년 5월에 문을 닫게 되었고 이후 10여년간 쓰이지 못하다가 2011년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중촬영스튜디오로 탈바꿈하였다. (광역상수도의 도입이 여기에 한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최근에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해외작품들도 유치하여 촬영하고 있다. 한국계 스티븐연이 주연하여 골든글로브 TV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시즌2와 영국 드라마 <버터플라이>도 이곳에서 촬영을 마치는 등 해외 영화와 OTT 시리즈들을 적극 유치하여 명실상부 글로벌 수중촬영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촬영으로 바쁜 기간 틈틈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콘텐츠 제작 교육까지 함으로써 앞으로 영화산업의 주역이 될 새싹들도 키우고 있다.

고양아쿠아스튜디오에 대해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이유는 먼저, 수중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물을 비용이 거의 없이 확보했다는 것이다. 예전에 정수장의 원수로 쓰이던 바로 옆 공릉천의 물을 기존에 있던 시설을 이용하여 끌어다 씀으로써 막대한 물값을 아낄 수 있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홍수가 나서 동네에 차오르던 물은 바로 공릉천의 물이었던 것이다. 깨끗한 수돗물을 쓰면 수질이 훨씬 더 좋아지겠지만 대신에 물값이 들어 시설 사용료가 올라 갈 테니 한국 영화 발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지사 수돗물 매출 확대의 욕망은 접기로 하겠다.

또한 폐정수장 시설 철거비와 유지관리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대형 기존 침전지를 활용함으로써 새로 만들어야 할 수조 건설비까지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그 결과, 그간 돈이 많이 드는 해외로케를 통해 수중촬영을 하던 한국 영화계가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수중촬영을 하고 있으니 한국 영화계에 이만한 기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아울러, 아직 본격적으로 실행이 되고 있지는 않지만, 신도시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덜 된 스튜디오 인근 지역에 고양영상문화단지를 조성하는 큰 계획의 발단이 됨으로써 향후 지역균형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수렴하였고 관계기관 간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부지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도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

아쿠아스튜디오로 변신한 폐정수장.

 폐정수장뿐만이 아니라 현재 운영 중인 정수장들도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창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정수장은 물을 보내기 위해 큰 펌프를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를 매우 많이 쓰는 시설이다. 고양시의 고양과 일산 두 정수장은 시설 위에 설치된 태양광 판넬로 전기를 생산하고 함께 상대적으로 여름에는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한 수온을 이용하는 수열 냉난방을 통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전기 소비를 줄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올해 수자원공사는 전사적으로 수력, 조력(밀물과 썰물의 힘을 이용한 발전), 태양광, 수열 등으로 생산한 재생에너지로 모든 전기를 감당해내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였다. 일하는 직원들의 관점에서 보면, 수돗물을 생산하는 정수장 고유의 업무 외에 태양광과 수열발전 설비를 설치하고 유지, 관리하는 업무가 늘어난 것이니 내키지 않을 수 있다. 이 또한 부서 간, 담당자 간의 소통과 공감이 없으면 시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후변화시대를 맞아 정수장들도 세상과 소통하며 변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