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커피, 그리고 삶의 속도를 되찾는 곳

윤상근의 동네서점기행 (3) 라비브북스 6년전 정발산동 조용한 골목에 문열어 "누군가에게 기쁨과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커피 한잔 만드는데도 심혈 기울여

2025-08-25     윤상근 세리서점 대표
정발산동 라비브북스
정발산동 라비브북스

[고양신문] 내가 서점을 연 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2025년, 한국의 서점, 책방은 어떤 공간일까. 내가 운영하는 세리서점을 찾는 사람들만 봐도, 이 공간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말동무가 필요한 사람, 더위를 피하는 사람, 여자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온 남자친구(또는 그 반대), 백석동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 자신이 아직 읽지 않은 개성 있는 책을 탐색하는 사람까지. 아주 적지만 책을 사러 들어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고양시의 다른 서점들엔 누가 찾아오는지, 또 서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자주 가던 단골 식당 옆을 지나다니며 봤던 서점이 문득 떠올랐다.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취재가 가능한지 물었다.‘동네서점기행’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정발산동에 있는 라비브북스다.

서점이 문을 여는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도착했다. 서점주인 이형주씨와 인사를 나눈 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서점을 둘러보았다. 그 짧은 사이에도 꽤 많은 손님들이 들어왔다. 손님들이 있어 인터뷰가 잘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 잠깐 스쳤지만, 남편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까. 놀랍고 부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이형주씨와 마주 앉았다.

“서점을 왜 열었나요?” 커피 향과 책 냄새가 동시에 풍기는 라비브북스는 이형주, 이창우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다. 책방을 열기 전, 이형주씨는 음악치료사로 일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일을 잠시 쉬고 있던 그 무렵, 남편 이창우씨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좋은 조건의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일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둘은 자주 찾던 동네책방들을 떠올렸다. 작고 조용한 공간들. 사람과 책이 자연스레 녹아든 그곳에서 무엇인가 살아 숨 쉬는 감각을 느꼈다. 부부는 책방을 열기로 했다.

책방의 위치로 원래 살고 있던 서울을 고려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고양시 정발산동의 조용한 골목을 선택했다. 서울보다 한템포 느리고, 무엇보다 태어난 아이가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동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공간이 지금의 라비브북스가 되었다. 남편 이창우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부는 자신들이 그리는 서점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가며 공간의 토대를 다져갔다. “제가 직접 만든 커피 한 잔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거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커피를 주문받고 만드는 그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아내 이형주씨는 책 큐레이션을 맡고 있다. 인문, 소설, 요리, 그림책까지 다양하다. “처음에는 연령대를 포괄할 수 있는 책을 두려고 했어요. 지금은 오가는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가고 있죠.” 라비브북스는 책을 파는 공간이지만, 단순히 유행을 따라 팔리는 책만 큐레이션하지는 않는다. 이형주씨는 “오랫동안 곁에 둘 수 있는 책”을 팔고 싶다고 말한다.

정발산동 라비브북스
정발산동 라비브북스

라비브북스가 문을 연 지 벌써 6년이 흘렀다. 중간에 코로나라는 위기도 있었지만,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단단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방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오시는 손님이 있어요. 책도 많이 읽으시고 항상 공간을 마련해줘 고맙다는 말도 해주세요.” 인터뷰 중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자리가 거의 다 찼다. 커피와 함께 책을 읽는 손님들, 둘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도 보였다. 이곳에는 오랜 손님들이 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들어와 책을 고르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가는 정겨운 이웃들. 아마도 그렇게 정겨운 관계가 쌓여온 것이겠지. 부러웠다.

아내 이형주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남편 이창우씨가 회사를 다닐 때는 찾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이제는 찾았을까 궁금해졌다.
이창우씨는 “저는 무엇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희 공간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손님이 나갈 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라비브북스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요청이 들어오거나, 자연스럽게 일이 시작될 때가 있다. 드로잉 워크숍, 작가와의 북토크, 시 읽기 모임, 작은 음악회 등이 가끔 열린다. “책방은 책을 발견하게 해주는 곳이에요. 커피 마시러 왔다가 둘러보시고, 지난번에 산 책 좋았다고 하면서 다시 책을 고르시는 분들.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이 좋아요. 독서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사는 거예요.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과거의 사람, 다른 장소,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요. 내 세계를 넓혀주는 도구죠.” 이형주씨의 말처럼, 이곳에는 책이 있고 커피가 있다. 그리고 그 도구인 책을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는 공간, 시간이 있다. 

아!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하며 세리서점으로 돌아왔다.

라비브북스
고양시 일산동구 무궁화로 141번길 16-7
인스타그램 raviv_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