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끄면 미래가 켜져요”… 고양서 ‘스마트폰 프리’ 깃발 올려

청소년 스마트폰 프리 운동 고양본부 출범식·초청 강연

2025-08-31     김찬미 객원기자·권구영 기자

OECD 스마트폰 과의존 1위 
건강한 디지털 단절 시급해
경기북부 최초 고양본부 출범 
“스스로 생각하는 힘 길러야”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있는 광성드림학교 교육관에서 26일 열린 청소년 스마트폰 프리 운동 고양본부 출범식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고양신문]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 실태에 적신호가 켜진 지는 이미 오래다. OECD 조사에서 사용 시간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고, 그 그림자는 수면 부족, 학습 부진, 가족 간 대화 단절을 넘어 정신 건강과 학교 폭력 문제로까지 짙게 드리우고 있다. 

‘화면 속 세상’에 갇힌 아이들의 미래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청소년의 건강한 디지털 성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청소년 스마트폰 프리 운동(이하 스프운동)’이 고양시에서도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지난 26일 오후 7시.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있는 광성드림학교 교육관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계, 시민사회, 정치권 인사들과 학부모, 학생들로 가득 찼다. 경기북부 10개 시·군 가운데 최초로 출범하는 스프운동 고양본부의 시작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중앙본부(6월)와 경기북부본부(7월)에 이어 지역 단위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이날 출범식은 ‘중학교까지 스마트폰 없는 건강한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이정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청소년 스마트폰 프리 운동 운영위원장인 김민화 신한대 교수가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개인 문제 넘어 사회 공동체의 책임
김상욱 로뎀기획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출범식은 기주현 준비위원장의 힘찬 개회선언으로 막을 열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축하 영상을 통해 “청소년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운동의 취지에 깊은 공감을 표하고 연대의 뜻을 밝혔다.

현장에 참석한 내빈들의 축사에서도 위기감과 대안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응화 고양시 사회복지협의회장은 “주말 숲 체험학교에 참여한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떠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낸 뒤 일주일간 행복해하고 부모와 대화도 잘한다”는 현장 경험을 공유하며 디지털 기기와의 건강한 거리 두기가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역설했다. 

권현숙 고양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역시 “스마트폰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끌 때 끄고 켤 때 켤 수 있는’ 주도적인 삶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며 운동의 방향성에 힘을 실었다.

이날 출범식에서는 고양본부를 이끌어갈 임원진이 공식 선출됐다. 송기섭 고양시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박은철 광성드림학교 교장, 김세영 고양시이민자통합센터장, 기주현 이루다학교 대표교사가 공동대표로 추대돼 만장일치의 박수를 받았다. 

기주현 신임 공동대표는 취임사에서 “스프운동은 아이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손을 다시 잡고 인간다운 성장을 돕는 인류 사랑 운동”이라며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응화 고양시 사회복지협의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대마초보다 심각 교육적 해법 절실 
이어진 2부 초청 강연의 첫 연사로 나선 안민석 명지대 석좌교수(스프운동 중앙본부 공동대표)는 ‘폰 오프, 북 오픈(Phone Off, Book Open)’이라는 주제로 문제의 심각성과 세계적 흐름을 짚었다. 안 교수는 “한국은 전 세계 스마트폰 보유율과 중독률 1위 국가”라고 지적하며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0년대 초반부터 미국 청소년들의 자살률과 우울증이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는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뇌와 정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 50개 주 중 40개 주가 법으로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프랑스와 호주 등도 강력한 규제 정책을 도입하는 흐름을 소개하면서 이 문제가 더는 개인의 자율에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재난임을 강조했다. 

특히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교내 스마트폰 수거는 인권침해가 아니다’라고 기존의 견해를 번복한 결정과 최근 국회 교육위 소위를 통과한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 법안을 언급하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공론화를 시작할 동력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사진 왼쪽부터) 청소년 스마트폰 프리 운동 고양본부 공동 대표로 선출된 송기섭 고양시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박은철 광성드림학교 교장, 김세영 고양이민자통합센터장, 기주현 이루다학교 대표교사

수업 중 ‘스마트폰 금지’ 법안 국회 통과
실제로 지난 27일에는 수업 중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내년 1학기부터 초중고교생은 원칙적으로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개정안에서 ‘학생은 수업 중에 휴대전화 등 스마트기기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장애가 있거나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 등이 보조기기로 스마트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또 교육 목적이 있거나 긴급한 상황 대응 시에도 수업 중 스마트기기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안 교수는 그러나 “단순한 강제 금지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가 조너선 하이트의 저서 『불안세대』와 같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스마트폰의 유해성을 스스로 깨닫는 교육적 과정”이라며 “학생자치회에서 스스로 규칙을 정하는 등 교육적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운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안민석 명지대 석좌교수(스프운동 중앙본부 공동대표))

스마트폰 프리로 자기주도학습
두 번째 강연은 ‘스마트폰 없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공부’라는 주제로 2025학년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수석합격자인 김유진 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초중고 12년간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고 수능이 끝난 후에야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했다는 그의 경험담은 참석자들에게 큰 울림과 영감을 주었다.

김유진 학생은 스마트폰 없는 생활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자기주도성’을 꼽았다. 그는 “스마트폰에 시간을 뺏기지 않으니 남는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능동적인 생활을 하게 됐다”며 “공부, 독서, 산책, 악기 연주 등 내가 직접 선택하고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자기주도학습의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게임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고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 남아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독서와 산책 같은 건전한 휴식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바탕이 됐다고 전했다.

김유진 학생은 독서로 다져진 문해력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고교 시절 학원 없이 공부하며 오히려 성적이 향상된 경험, 친구들과 서로 가르쳐주며 ‘설명하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협력적 학습의 가치를 체득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얻는 이익이 훨씬 크다고 생각했고, 노래방에 가거나 피구를 하는 등 다른 활동으로 친구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특별한 소외감은 없었다”고 답하며 스마트폰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김유진 2025학년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수석합격자

가정·지역 생활문화 개선 운동으로
이날 출범식은 ‘폰 오프 북 오픈’이라는 선창에 참석자 모두가 ‘스마트폰 프리’라고 화답하는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고양본부의 출범은 단순히 하나의 지역 조직이 생긴 것을 넘어 디지털 과의존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려는 사랑의 방파제를 쌓아 올리는 의미 있는 첫 삽이었다. 

향후 고양본부는 △하루 1시간 스마트폰 비우기 챌린지 △가족이 함께하는 스마트프리 데이 △독후감·그림 등 창작 활동 △디지털 리터러시 강연 캠페인 등 구체적 실천 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청소년 스스로 자율성과 주도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가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생활문화 개선 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이미 해외 사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핀란드와 포르투갈은 초등학교 스마트폰 전면 금지, 호주는 16세 미만 SNS 가입 제한, 미국과 독일은 학내 사용 제한을 강화하는 등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또한, 프랑스는 등교할 때 사물함에 휴대전화를 보관하는 ‘디지털 쉼표’를 올해부터 모든 초·중학교에서 시행 중이다. 

청소년 스마트폰 프리 운동 관계자와 참석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