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시어로 담아낸, 기억 희미해져 가는 아내와의 일상

최태랑 시인, 성호문학상 ‘대상’ 수상 지극한 사랑 담은 시집 『시인의 아내』 고양문인협회 회장 맡아 변화 이끌어

2025-09-09     유경종 기자
제36회 성호문학상을 수상한 최태랑 시인. 최 시인이 회장을 맡고 있는 고양문인협회 강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양신문] 고양의 이웃 최태랑 시인이 제36회 성호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36회를 맞은 성호문학상은 실학자 성호 이익의 학문적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문학상으로, 시·소설·수필 등 장르 구분 없이 한 해 동안 출간된 작품집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한다. 최 시인은 올해 4월 출간한 『시인의 아내』(천년의시작 刊)로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지극한 사랑의 마음 담아낸 시집   

시인이 네 번째로 출간한 시집의 1~3부에는 자연을 접하며 떠올린 시상, 일상에서 길어올린 생각들을 시인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언어로 담았다. 마지막 4부에서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아내 곁을 지키고 있는 시인의 애틋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시집의 맨 마지막에 놓인 표제작 ‘시인의 아내’에서 최 시인은 ‘내가 어슴푸레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내는 꿈에서 나 대신 시를 쓴다’고 말한다. 천양희 시인은 ‘시가 한 시대 정신의 꽃이듯 시인의 아내는 한 시인의 정신의 꽃이 될 수 있을까 묻는 시집’이라고 평했고, 해설을 쓴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는 시간의 풍화 속에 스러져가는 삶을 열망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닿은 서정적 범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적었다.  

성호문학상 수상 시집 『시인의 아내』. 

외로웠던 유년기, 평생의 그리움 심어줘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유복자로 태어난 시인은 해남의 한 섬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대처로 떠난 엄마가 남기고 간 송아지를 정성껏 키운 꼬마는 중학생 시절부터 목포에서 힘겨운 고학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미소 일을 도와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와 미대에 진학했다. 

“외롭고 힘겨웠던 성장기가 평생토록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심성을 내면 깊은 곳에 심어준 것 같아요.” 

가난한 고학생 신분으로 진로를 고민하던 시인은 안정된 삶을 찾아 장교 시험을 치르고 직업군인의 삶을 살았다. 임지를 따라 여러 번 이사를 하는 삶이었지만, 아내가 고맙고 든든한 동반자가 돼 주었다.

고양으로 이사 온 후 ‘시의 세계’ 입문 

33년 군생활을 마친 최 시인은 18년 전 고양으로 이사를 온 후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시인의 꿈을 슬며시 꺼내들었다. 무작정 당대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였던 김윤식 교수를 찾아가 “시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주제 하나를 던져주며 “글을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한 시간 동안 문장을 짜내어 A4지 한 장을 채워 건네자, 김 교수는 딱 한 문장에 밑줄을 긋더니 “시랑 비슷하다고 여길 만한 부분은 이것밖에 없네”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려줬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전하듯 “열심히 한번 공부해보라”는 격려를 덧붙여줬다. 

김 교수의 말처럼 최 시인은 이후 제1회 행주문학상을 수상한 공광규 시인을 스승으로 삼고 열심히 ‘시공부’를 했다. 어느덧 80대 중반. 시집을 여러 권 내고, 명성 높은 문학상도 수상했지만 시인은 여전히 “시 공부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산동구 주엽동 동문시티프라자 301호에 자리한 고양문인협회 사무실 겸 강의실. 현판 글씨는 최태랑 회장의 솜씨다. 

“고양문협 사업, 재정 지원 확대됐으면” 

최근 2년 동안은 고양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조직과 재정이 모두 열악한 협회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많은 변화를 주도했다. 폐쇄적이었던 정관을 바꾸고, 협회 사업을 체계화했다. 가장 큰 시도는 적잖은 사비를 털어 강의실을 꾸미고, 빔프로젝트와 음향시설 등을 갖춰 ‘고양문예아카데미’를 시작한 것이다.

“고양문협이 소수 회원들의 친교집단이 되지 않으려면, 외연을 확장하고 새로운 문인들을 길러내야죠. 물론 기존 회원들도 꾸준히 공부해야 하고요. 지난해부터 시, 소설, 에세이 3개 부문의 강좌를 시작했는데, 특히 시 강좌는 수강생이 20명 넘게 채워질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최태랑 회장의 임기 동안 고양문협은 변화를 위한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안정된 궤도에 올라서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고양문협은 매년 문예지 <고양문학> 발간, 백일장, 고양행주문학상 주관 등 시민들의 문화 향유 확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재정 규모로는 현상유지를 하기에도 역부족입니다. 지자체의 재정 지원이 좀 더 확대됐으면 합니다. 제 임기가 올해 말로 끝나는데, 후임 회장님이 고양문협을 더욱 발전시켜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회장으로서 고양문인협회에 대한 바람을 적은 캘리그라피 작품.

말하지 않아도 알아먹는 말들 

시인은 주엽동 자택에서 치매를 앓는 아내와 단둘이 지내며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 보내고 있다. 이른 시간, 아침밥을 안쳐놓고 전날 쓴 습작들을 다듬다 보면 밥솥이 치익치익 소리를 내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아내와 함께 식사를 차려 먹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한다.    

“산책을 하다 걸음을 멈추면 ‘아, 쉬고 싶구나’ 싶어서 벤치에 앉고, 쉬다가 신발을 고쳐 신으면 ‘아, 다시 걷고 싶구나’ 싶어서 손을 잡고 일어섭니다. 아무 말 안 해도 알아먹는 사이가 참 편안합니다. 아내에게 ‘요양원 가지 말고 나랑 끝까지 같이 있자’고 말했더니 아주 좋아하더군요.” 

잠시 바빴던 문협 회장 임기를 마치면, 일상에서 건져낸 신작 시들이 좀 더 잦은 속도로 차곡차곡 쌓일 것 같다. 시인은 ‘손의 말’이라는 시에서 ‘이제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손짓이 말이 되어간다// 주름진 손등 잡아본다/ 힘들었다고 수고했다고’라고 노래했다. 미사여구 없어도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는, 최태랑 시인의 시야말로 따듯한 ‘손의 말’을 닮아가고 있다.

▮고양문예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분야  시, 소설, 에세이
문의  010-4187-6465 (고양문협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