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외길, 페달에 고양시 미래를 싣다
한기식 고양자전거학교 대표 인터뷰
[고양신문] 18년. 한결같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고양시의 길을 누벼온 이가 있다. 고양자전거학교의 한기식 대표. 그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취미나 운동기구가 아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새로운 길이자, 도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다. 기후 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도시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자전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를 만나 고양시 자전거 정책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고양에서 나고 자란 한기식 대표는 한때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국내 랭킹을 주름잡던 이름난 철인3종 경기 선수였다. 선수생활을 은퇴한 후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헬스 트레이너로도 활동했던 그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자전거 문화를 보급하는 일을 선택했다.
"처음 5년은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디 모임 하나 나가지 못하고 주말도 없이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죠. 그렇게 미친 척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 고향에서 누군가는 자전거 정책에 미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것 하나로 버텼습니다."
그의 열정은 '고양자전거학교'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곳은 단순히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안전한 자전거 문화를 만들고,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구심점이다.
"페달만 밟는다고 자전거를 잘 타는 게 아닙니다. 안전하게, 제대로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하죠."
학교는 초급(10일, 20시간)부터 중급(5일, 10시간), 상급(5일, 10시간)까지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며, 특히 초급 수업은 무료로 운영해 문턱을 낮췄다. 교육을 수료한 회원들은 매주 화요일 정기 라이딩을 통해 실력을 다지고 공동체 의식을 나눈다. 춘천 의암호, 섬진강 등 전국의 아름다운 자전거길을 찾아 떠나는 테마 라이딩부터 일본 오키나와, 북유럽 등 해외 선진 자전거 문화를 체험하는 활동까지, 그 범위는 고양시를 넘어선다.
뿐만 아니라 '찾아가는 학교 안전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올바른 자전거 습관을 심어주고, 매년 9월에는 '평화누리길 100㎞ 라이딩'을 통해 평화와 탄소중립의 의미를 되새긴다. 또한 수년째 고양시의 18개 생태하천 지도를 직접 제작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등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실천하고 있다.
고양자전거학교의 진정한 가치는 참여하는 시민들의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시민부터 더 안전하게 타고 싶은 시민까지, 다양한 이들이 학교를 찾고 있다. 인터뷰 당일 현장에서 만난 한 수강생은 자전거학교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어서 배우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어요. 검색을 통해 겨우 알게 됐죠. 막상 배워보니 저 같은 몸치도 탈 수 있게끔 체계적으로 잘 가르쳐주셔서 정말 즐겁습니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활성화시켜줬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수강생도 “자전거 수업을 받는다고 하니 주변에서 ‘나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며 “그냥 페달만 밟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자전거에서 내리는 법 같은 기초적인 안전수칙부터 시작해 다양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한 대표와의 인터뷰 내내 고양시 자전거 정책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소통 단절'이다. 자전거 도로 신설이나 복합센터 건립 등 주요 사업들이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러한 현실은 현재 고양시 자전거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결국 정책은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일산신도시와 덕양구 간의 인프라 불균형, 대중교통과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끊어진 자전거 도로 등 시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정책적 리더십 부재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한 대표는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바로 '자전거 친화도시 1010'이다. 이는 '10분 도시'와 '자전거 수단분담률 10%'를 의미한다. 10분 이내의 일상생활권에서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고, 시민 10명 중 1명이 자전거로 이동하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리더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적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처럼요.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 아래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 대표는 재정적 어려움과 시의 무관심에 지칠 때도 많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어렵지만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자전거는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도시가 가야 할 길입니다. 정치인과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나선다면 고양시는 대한민국 최고의 자전거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