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페달, 끊긴 도로… 기후위기 시대 ‘자전거 도시 고양’의 현실

창간 36주년 기획⑦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교통 전환이 답이다

2025-09-12     남동진 기자

①고양시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지속가능 교통정책
②공공교통 필요성과 마을버스 공영제 가능성
③고양시 내부 교통인프라 문제점 
④데이터를 통해 살펴본 고양시 교통불평등  
⑤버스공영제 사례: 화성시, 성동구 
⑥교통소외 지역 FGI 인터뷰

⑦고양시 도심 내 자전거 인프라 현황 및 문제점
⑧기후위기 대응 위한 지속가능 교통정책 연계 방안
⑨지속가능한 교통도시 만들기 고양시민 토론회


[고양신문]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로 자전거, 공원, 도서관을 꼽았다. 인간의 동력을 이용해 스스로의 힘을 확장시키는 가장 정직하고 효율적인 발명품.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우리를 속도에 종속시키지 않으면서도, 두 발로는 가기 힘든 곳까지 자유롭게 데려다준다. 건강을 선물하고, 도시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며, 탄소 배출 없는 미래를 약속하는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고양시는 2021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 우수 지자체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426㎞에 달하는 자전거도로 인프라를 구축하며 외형적으로는 ‘자전거 도시’의 면모를 갖춘 듯 보인다. 하지만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자전거 이용 환경은 ‘불안’과 ‘불편’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고양신문은 기후위기 시대의 핵심 교통수단으로 떠오른 자전거의 현실을 진단하고, 고양시가 나아가야 할 정책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시민과 전문가의 목소리, 그리고 데이터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시민 목소리·데이터·전문가 제언으로 본 
고양시 ‘생활 자전거’ 활성화 해법
단순 자전거도로 인프라 확충 넘어
‘안전’ ‘연결성’ 중심 정책 대전환 필요 

식사동 인근 도로의 모습. 자전거도로와 인도의 구분이 없으며, 상가 차량 진출입 시 충돌 위험이 크다. [사진=김현정 인턴기자]

이용자 “불안을 페달 삼아 달립니다”
“자전거요? 최소한 고양시 안에서는 레저가 아니라 주요 이동 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양시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김삼한 교사의 말이다. 전 세계 선진도시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교통난 해소를 위해 자전거를 도시의 중심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지금, 그의 말처럼 자전거는 더 이상 하천변을 따라 여가를 즐기는 도구가 아니다. 승용차 이용을 줄이고 탄소 배출을 감축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자, 도시의 교통 시스템을 재구성할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고양시에서 만난 자전거 이용자들은 ‘생활’로서의 자전거 타기가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한지를 온몸으로 증언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민원을 넘어, 자동차 중심의 도시 시스템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고 있었다. 


버스보다 빠른 ‘두 바퀴’, 그러나 도로 위는 전쟁터
매일 자전거로 20㎞ 내외를 이동하는 ‘자전거 생활인’ 마을활동가 나경호씨에게 자전거는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다. 특히 버스 노선이 비효율적인 구일산 지역에서 그의 자전거는 상습 정체 구간을 달리는 자가용보다 빠르다. 그는 “버스를 기다리고, 정류장을 거쳐 돌아가는 시간에 자전거로 목적지까지 곧장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리혁종 작가에게 자전거는 ‘집 문 앞에서 나와 목적지 문 앞까지 갈 수 있는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다. 덕분에 그의 한 달 교통비는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자전거가 주는 경제적, 시간적 효용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효용을 누리기 위해 감수해야 할 물리적, 심리적 위험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김삼한 교사는 퇴근길 자전거도로에서 겪었던 아찔한 경험을 털어놨다. 김 교사는 “인도 위에 툭 튀어나온 부분을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지면서 타이어가 찌그러지고 옷이 다 찢어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순간의 사고는 신체적 고통은 물론, 다시 페달을 밟을 때마다 불쑥 찾아오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는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와 부딪힐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도사리는 도로 상황을 증언했다.

나경호 활동가는 “일상적으로 타려면 산악자전거나 튼튼한 자전거를 타야 할 정도”라며 “나무뿌리가 융기하고 파손된 채 방치된 도로를 달릴 때의 충격은 그대로 몸에 쌓인다. 비싼 자전거는 아예 탈 엄두도 못 낸다”고 단언했다. 자동차 중심의 도로 문화 속에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위협을 가할 때” 느끼는 심리적 위축감은 자전거 이용자들이 매일 겪는 또 다른 폭력이다. 도로 위 약자로서 느끼는 무력감과 소외감은 자전거를 ‘위험한 이동수단’으로 낙인찍고, 시민들의 선택지에서 자전거를 지워버리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마을활동가 나경호씨는 하루평균 20㎞이상씩 자전거로 고양시내를 누빈다. 중고로 10만5000원에 구매했다는 그의 자전거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자전거를 통해 교통비 절약은 물론 올 한해에만 392.5kgCO2eq의 온실가스 감축(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앱 측정)을 실천했다. [사진=김현정 인턴기자]

끊기고 막히고, 위험한 ‘자전거도로’
이용자들이 꼽은 고양시 자전거도로의 가장 큰 문제는 ‘단절’이다. 잘 달리던 자전거도로는 예고없이 뚝 끊겨 차도와 인도의 경계로 이용자를 내몬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매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위험을 감수하고 차도로 내려가야 할지, 보행자에게 피해를 주며 인도로 올라가야 할지 아슬아슬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나경호 활동가는 구일산에서 일산서구 가좌동으로 가는 길을 예로 들며 “자전거도로가 중간에 그냥 인도로 사라져 버린다. 표시도 없고, 쓰레기나 고장 난 자전거, 오토바이가 점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인트로 선만 그어놓은 ‘무늬만 자전거도로’는 보행자와의 갈등만 유발할 뿐,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시설물은 때때로 모욕감마저 안겨준다. 나 활동가는 육교에 설치된 자전거 경사로를 가리켜 “너무 가팔라서 사실상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건 이용하라는 게 아니라 조롱하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단순히 불편한 시설 하나가 아니라, 자전거 이용자를 동등한 교통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고양시 정책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대중교통과의 연계는 ‘생활 자전거’ 활성화의 핵심이지만, 현실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김삼한 교사는 “모든 지하철역에 CCTV가 있는 안전한 보관대만 있다면 무조건 자전거를 탈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내 “버릴 자전거가 아니라면 역에 세워두고 싶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역 엘리베이터 이용마저 불가능해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구조는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연계한 출퇴근, 이른바 ‘자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결국 시민들은 집에서부터 목적지까지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갇히게 된다.

풍산역 앞 자전거 보관소의 모습. 방치된 자전거가 곳곳에 섞여 있고, 지붕은 비를 막기에 열악하다. [사진= 김현정 인턴기자]
육교에 설치된 자전거 경사로. 너무 가팔라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경호 활동가는 “이용하라는 게 아니라 조롱하는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사진=김현정 인턴기자]

자전거 전용 도로는 10% 불과, 85%는 ‘무늬만 자전거도로’
시민들의 고충은 고양연구원(백주현 연구실장)이 발간한 보고서 「고양특례시 자전거 이용환경 평가지표 개발(2023)」과 「고양시 공공자전거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연구(2019)」의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된다. 데이터는 고양시 자전거 정책이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며, 이제는 ‘안전성’과 ‘연속성’을 중심으로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함을 명백히 보여준다.

2023년 기준, 고양시 자전거도로의 84.9%(361.8㎞)는 사실상 보도 위에 선만 그어놓은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였다. 보행자와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비분리형’ 도로도 137.5㎞에 달해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실제로 고양시의 자전거-보행자 간 사고는 2017년 18건에서 2021년 38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자전거만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전체의 10.1%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대부분 하천 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용은 ‘레저용’, 사고는 ‘생활권’에서
열악한 인프라는 자전거 이용 행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2019년 자전거 이용자들의 주된 통행 목적은 ‘레저·스포츠(40.0%)’가 ‘출·퇴근(36.3%)’을 앞질렀다. 자전거가 생활 교통수단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자전거 사고가 꾸준히 증가한다는 점이다. 2020년 278건이었던 사고는 2022년 329건으로 약 18% 늘었다. 특히 자전거도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일산보다 구도심과 신도시가 혼재된 덕양구에서 사고가 잦았다. 단절되고 정비되지 않은 도로가 사고의 주된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자전거 이용 환경을 ‘안전성’, ‘접근성’, ‘편의성’으로 평가할 때, 시민과 전문가 모두 ‘안전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끊김 없이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자전거도로’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이동권 관점에서, 도시 시스템 전환 필요
현실의 장벽은 높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인터뷰에 참여한 자전거 이용자들이 내놓은 해법은 명확했다.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레저용 도구가 아니라, 도시의 주요 이동 수단으로 인정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김삼한 교사 
“차도를 줄여 자전거 전용차로를 만드는 등 도시 공간의 재배치를 위한 공격적인 의제가 필요하다. 또한 자전거 수리 워크숍 같은 녹색 일자리 창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 리혁종 작가
“환경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권, 즉 이동권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휠체어, 유모차가 다니기 좋은 길을 만들면 자전거도 안전해진다. 교통약자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나경호 활동가

세 사람의 목소리는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다. 고양시의 자전거 정책은 ‘탈 수는 있지만, 타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불편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에 내어준 도로의 일부를 자전거와 보행자에게 돌려주는 정책적 결단 없이는 기후위기 대응도,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전환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고양시가 ‘자전거 우선 도시’로의 비전을 선포하고, 자동차 중심의 공간 권력을 해체하는 용기 있는 첫발을 내디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픽 김혜영 디자이너] 고양시 자전거 이용자 3인이 이야기하는 인프라 문제점 및 정책 제언

10분 생활권, 분담률 10% 목표로 해야
20년 가까이 지역에서 자전거 안전교육과 정책 활동을 펼쳐온 고양자전거학교 한기식 대표는 ‘자전거 친화도시 1010’을 정책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는 ‘10분 도시’와 ‘자전거 수단분담률 10%’를 의미한다. 10분 이내의 일상생활권에서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고, 시민 10명 중 1명이 자전거로 이동하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리더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적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처럼요.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 아래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인 정책은 다음과 같다. △자전거 전용 신호등 설치 등 안전성 확보 △자전거 등록제 및 인센티브제 도입 △이용 통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이터 기반 정책 수립 △생활도로 개념 도입 및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 등이다.

한 대표의 말처럼 자전거는 단순히 교통수단을 넘어 기후 위기 시대의 가장 강력한 대안이자, 도시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열쇠다. 그는 “자전거는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도시가 가야 할 길”이라며 “‘자전거 친화도시’ 비전은 사람 중심의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다”라고 강조했다. 

기후보도 취재팀 남동진 기자·김진이 전문기자·김현정 인턴기자

이 기사는 녹색전환연구소와 리영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