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재정손실' 시장에 직접 책임 묻는 길 열려
법원, 시청사 이전 판결 의미 “예비비 지출, 재량권 남용한 부당행위” 시청사 이전 독단적 재정운영에 제동 각하된 부분도 "소송 다툴 수 있다" 명시 이 시장에 변상소송 가능성 … 파장 예고
[고양신문] 고양시를 뜨겁게 달군 ‘시청사 백석동 이전 타당성 조사 용역비’ 지출을 둘러싼 주민소송에서 법원이 이동환 시장의 위법 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의정부지방법원 제1행정부는 지난 16일, 주민소송단(대표 윤용석)이 이동환 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민소송에서 “피고(고양시장)가 고양시의회의 시정요구 중 변상요구 부분을 처리하지 않은 것(게을리 한 것)은 위법함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시 집행부의 독단적인 재정 운영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을 넘어, 위법·부당한 행정으로 초래된 재정 손실에 대해 시장 개인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아울러 판결의 여파로 시청사 백석 이전의 핵심 동력이 상실됨에 따라 주교동 신청사 원안 사업에 대한 즉각 추진 목소리도 더욱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의회 무시, 감사 지적, 위법적 지출
이번 소송의 발단은 이동환 시장이 2023년 1월, 기존 주교동 신청사 건립 계획을 백지화하고 백석동 요진 업무빌딩으로의 이전을 전격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시는 시청 이전의 타당성 검토를 이유로 2023년 4월 한국지방재정공제회와 7500만원 규모의 ‘시청사 이전사업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이 용역비 예산이 시의회의 정식 심의와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주민들은 ‘절차를 무시한 위법한 행정’이라며 경기도에 주민감사를 청구했고, 경기도는 감사 결과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사업을 의뢰해 지방재정법을 위반했다”며 관련자 훈계 및 시정요구를 통보했다.
그러나 이동환 시장은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2023년 7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 지출’에 사용하는 예비비를 끌어다 용역비를 집행하는 무리수를 뒀다. 결국 시의회는 2024년 6월, 해당 예비비 지출에 대해 최종적으로 ‘불승인’ 의결을 내리고, “위법·부당하게 지출된 용역비를 변상하고 관련자를 감사하라”는 내용의 시정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시장은 “예비비 사용 목적에 부합한다”는 논리로 시의회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고, 이는 주민소송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법원 “변상요구 불이행은 명백한 위법”
재판부는 이번 소송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시의회의 변상요구 불이행’이 위법하다고 명확히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방의회는 결산의 심사 결과 위법하거나 부당한 사항이 있는 경우 변상 등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지체 없이 처리하여 보고해야 한다”는 지방자치법 제150조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특히 재판부는 “예비비 지출은 적법하다”는 이동환 시장 측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예비비 지출 과정에서 ▲지방의회와의 사전 협의 절차가 전무했던 점 ▲경기도 감사 결과가 나온 직후에 지출이 이뤄진 점 ▲부시장이 단독으로 기안하는 등 이례적인 내부 결재 과정을 거친 점 ▲고양시의회가 최종적으로 지출을 불승인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해당 예비비 지출이 법적으로 가능한지를 떠나 최소한 ‘부당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위법ㆍ부당행위, 추가적인 소송 가능
법원이 주민소송단의 일부 청구를 ‘각하’한 결정에 대해서도 ‘패소’의 의미가 아니라, 더 큰 책임 추궁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부는 ‘예산 미편성’이나 ‘예비비 지출’ 등은 소극적인 ‘부작위(게을리한 것)’가 아닌 시장이 의지를 갖고 실행한 적극적인 ‘행위’이므로,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의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즉, 해당 사안들이 위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고가 제기한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의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각하한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는 곧, 이러한 적극적인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주민소송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판결문에서도 “공금의 지출 또는 계약이 체결·이행된 후라면 손해배상청구 또는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제4호 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고 명시했다. 사실상 법원이 주민들에게 ‘소송의 종류를 바꾸어 다시 제기하면 다퉈볼 수 있다’는 길을 안내한 셈이다.
즉 이번 판결로 ‘예비비 지출이 부당하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주민들은 이 위법·부당한 행위로 인해 고양시가 입은 7500만 원의 재산상 손해에 대해 이동환 시장 개인에게 직접 변상을 요구하는 새로운 주민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을 얻게 됐다.
“시장 사죄하고 시청 이전 중단해야”
이번 판결에 대해 시의회에서도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다. 임홍열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동환 시장의 독선 행정이 더는 설 자리가 없음이 명백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청구가 ‘각하’된 것은 시장의 행위가 합법적이어서가 아니라 소송 형식의 법리적 문제일 뿐, 판결의 본질은 시장 행정의 부당함과 위법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
아울러 임 의원은 이번 판결을 근거로 이동환 시장을 향해 ▲법치 유린과 시정 혼란에 대한 108만 시민 앞에 즉각적인 사죄 ▲위법으로 판결된 ‘변상 요구 불이행’의 즉각적인 이행과 시 재정 손실 원상회복 ▲위법·부당한 절차로 시작된 시청사 백석 이전 계획의 즉각적인 중단과 원점 재검토, 세 가지 사항을 강력히 촉구했다.
주민소송단 관계자 또한 “타당성 조사 예비비 지출이 위법행위로 판결난 만큼 백석 이전사업은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하다”며 “백석 이전이라는 대안이 사실상 무산된 만큼 주교동 신청사 원안계획을 즉각 이행해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시장의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소송단 측은 향후 이동환 시장이 신청사 원안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 고발 등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1심 판결에 대해 유감 입장을 표명하며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는 “변상청구 미이행에 대해 위법성을 인정한 건 실제 행정 운영과 재정 집행 절차의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소송의 새로운 이정표 될까
이번 판결은 지방자치의 근간인 의회의 집행부 견제 및 감시 기능을 재확인하고, 단체장의 재정 운영 책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번 승소는 우리나라 주민소송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민감사청구 전치주의 등 까다로운 소송 요건으로 인해 2005년 법 시행 이후 약 20년간 전국적으로 주민소송이 제기된 사례는 극히 적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제기된 소송은 단 45건에 불과하며, 주민이 최종 승소한 사례는 ‘용인경전철 사건’이 유일했다. 따라서 이번 고양시 주민소송의 일부 승소 판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이동환 시장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시의회의 변상요구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행정 절차의 위법성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위법한 행정을 펼친 단체장 개인에게 구체적인 재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향후 고양시의 시청사 이전 논의는 물론, 시정 운영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