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서 국제개발로, 경계 넘어 '사람과 구조'를 잇다

홍현정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연구위원 

2025-09-23     김진이 전문기자

대기업 엔지니어·건축전문가 거쳐
한국YWCA 활동가로 10년, 이색 이력
ODA(공적개발원조) 연수 기획·운영

일산나들목교회 교인, 지역이슈에도 관심

2025년 7월, 홍현정 연구원은 인도 정책공무원 11명을 초청한 연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운영했다. 사회적기업진흥원, 임팩트 투자기관, 언니네텃밭, 나눔비타민 등 국내 여성 기반 현장을 탐방하며, 인도 공무원들은 한국의 여성기업 정책과 커뮤니티 모델을 직접 체험했다. 사진 맨 가운데 홍현정 연구원.

[고양신문] “나를 일하게 만든 사람도 아들이고, 그만두게 한 사람도 아들이에요."
국제여성가족교육재단에서 개발도상국 여성공무원을 대상으로 ODA(공적개발원조) 연수를 기획·운영하고 있는홍현정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연구위원(50세)의 인생 여정은 한마디로 ‘다이나믹’하다. LG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시작해 미국 유학을 거쳐 건축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이후 한국YWCA 활동가로 10년 넘게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국제개발과 여성정책 분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분야, 국제무대를 넘나드는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출산과 육아, 둘째 아들의 홈스쿨링이었다. 

YWCA에서 정책과 운동의 경계를 배우다
홍 연구위원은 미국 유학을 다녀와 2007년까지 건축사무소 '창조건축'에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일도 재미있고, 인정도 받았지만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회사를 그만 두었다. 쉬고 있는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YWCA 입사 제안을 받고 비영리 영역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는 시민단체가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월드비전 같은 곳인 줄 알았죠.“

한국YWCA에서는 국제사업과 건축기획을 담당하며 시민운동의 흐름을 익혔다. 명동 ‘YWCA 연합회관’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건축과 국제 감각, 영어소통이 가능한 홍현정 연구위원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가 됐다. “저는 건축주 자리로 참여했는데, 중구청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구조 변경이 불가능했어요. 최소한의 개입으로 공간을 재생시키는 것이 과제였죠.”
한국YWCA와 NGO단체들이 함께 추진했던 세종시 NGO센터 설립을 위한 부지 매입과 설계도 그가 주도했다. “지방분권 실현을 위해 중앙 NGO들을 세종으로 이전시키는 프로젝트였어요. 현재 관련 백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아이 키우며 삶의 방향을 바꾸다
그의 커리어 전환점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다. 둘째 아이가 공교육에 적응을 힘들어하면서 홈스쿨링을 선택했고, 그렇게 YWCA를 떠나게 됐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와 매일 아침 실랑이하며 5년을 보냈어요. ‘하루에 세 번, 존재 자체를 칭찬하라’는 상담사의 조언이 전환점이 됐습니다.”

홍 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UN Women 아시아 사무소 주최 컨퍼런스에 참석했었다. “여성의 돌봄 부담과 경력단절(M자 곡선)이 주요 화두였습니다. 우연히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사무국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ODA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됐죠.”

그 결과 2024년 7월, 인도 정책공무원 11명을 초청한 연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운영했다. 사회적기업진흥원, 임팩트 투자기관, 언니네텃밭, 나눔비타민 등 국내 여성 기반 현장을 탐방하며, 인도 공무원들은 한국의 여성기업 정책과 커뮤니티 모델을 직접 체험했다.
“인도는 주(州)별로 정책이 달라서 흥미로웠어요. 특히 북동부 지역은 굉장히 개방적이더군요. 참가자들이 한국 드라마와 문화에 해박해서 DMZ까지 가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ODA와 국내 정책의 연결점을 찾다
현재 홍 연구위원은 여성가족부와 경기도일자리재단 지원으로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한 ODA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30여 명의 남미·아프리카 공무원들이 한국에서 12일간 연수를 받습니다. 모두들 한국에 오고 싶어해요.”

그는 이를 단순한 국제교류로 보지 않는다. “우리 정책을 설명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건축과도 닮았다고 생각해요.”

홍 연구위원은 자신이 쌓아온 이력의 ‘이질성’을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한다. 공학, 건축, 시민사회, 국제개발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연결자(Connector)의 역할을 해왔다.

일산나들목교회 교인으로 지역의 산황산개발 반대 활동 등 지역의 이슈에도 적극 관심을 갖고 있는 홍 연구위원은 고양시와 국제여성 교류, 지역을 위한 다양한 기여를 고민하고 있다. 어머니인 고양YWCA 황혜숙 증경회장이 지역과 여성 NGO를 위해 현신해 온 삶을 지켜보며 자라왔기에 지역활동에 대한 고민, 귀결이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제가 새롭게 도전한 것이 아니라 늘 해왔던 일의 연장선입니다. 분야는 달라도 결국 '사람과 구조'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니까요.”

인도여성 공무원 초청 행사. 사진 맨 왼쪽 홍현정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