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회복의 길로 가는 길

2025-09-25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고양신문] 학교는 배움의 장이자 작은 사회입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행정기관이 얽히면서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곤 합니다. 예전에는 교사의 훈계, 학부모와의 대화, 또는 동료 교사들의 중재와 같은 방식이 갈등 해결의 주요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학교 현장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많은 문제가 법과 제도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흐름이 학교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을까요?

학생·학부모 민원, 10년 전보다 두 배 늘어

1980~90년대만 해도 교내 폭력 사건이나 학부모와의 마찰은 교장·교감의 행정적 판단이나 교사의 권위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 전반에서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학부모 민원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법이 연이어 제정됐고, 최근에는 교육청과 시도 단위에서 분쟁조정위원회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교육청에 접수된 학생·학부모 민원은 15만 건을 넘어 10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상정된 사건은 2024년 한 해에만 4234건이었으며, 이 중 93%가 교권 침해로 인정됐습니다. 숫자는 제도의 필요성을 증명합니다. 과거라면 묻히거나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문제들이 이제 제도 속에서 다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뚜렷합니다. 사소한 생활지도의 순간조차 법적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불안이 교사들의 입을 막고 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62%가 "법적 문제를 의식해 생활지도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법과 제도는 안전망이지만, 동시에 교실 속 신뢰와 자율성을 갉아먹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대안은 소통에 기반한 ‘회복적 생활교육’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회복적 생활교육' 사례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잘못한 학생을 처벌하기보다, 갈등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과정입니다. 마치 엉킨 실타래를 마주 앉아 차분히 하나씩 풀어내듯, 갈등의 원인을 함께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죠.

이 교육은 갈등의 당사자, 즉 가해자와 피해자는 물론, 필요하다면 친구, 학부모, 선생님까지 모두 함께 '대화 모임'을 갖습니다. 이 모임의 목표는 단순히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사과할 기회를 줍니다. 가해 학생은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를 직접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진심이 담긴 사과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피해 학생은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감정적 치유를 경험하고, 용기를 내어 상대방을 용서할 힘을 얻게 됩니다.

모두가 모여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함께 고민하며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찾아냅니다.

법의 울타리 채우는 ‘사람의 온기’ 

물론 모든 문제를 회복적 정의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심각한 폭력이나 성범죄, 지속적인 괴롭힘 같은 사안은 반드시 법적 절차와 제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소한 오해나 생활지도의 갈등까지 전부 제도의 테두리로 가져오는 것은 오히려 학교를 더 차갑게 만듭니다. 법은 최소한의 울타리로 남겨두고, 그 안에서 신뢰와 대화, 관계 회복의 문화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책임과 공존의 의미를 배웁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의 강화'와 동시에 '회복의 문화'입니다.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법이 울타리를 세운다면, 그 안을 따뜻하게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학교가 다시 배움과 관계의 공간으로 살아나기 위해, 우리는 제도와 인간성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