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284억↓ 미래전략산업 500억↑… “시민 현재 외면한 미래 사업” 

고양예산넷이 분석한 예산데이터로 본 이동환 시정

2025-09-29     남동진 기자
고양시민예산정책연구 네트워크가 이동환 시장 3년, 시 예산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민생예산 삭감해 시장 역점사업으로
예산 상당 연구용역·기관운영비 편중
“연구용역만 살찌운 손쉬운 행정”비판
491억 투자유치기금 활용계획 마련해야


[고양신문] 한 도시의 예산은 도시 정책이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동환 시장 취임 후 3년, 고양시의 재정 운용은 명백한 퇴행을 보여줬다. 소상공인과 청년, 평범한 시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예산’은 체계적으로 삭감됐고, 그 재원은 실체가 불분명한 ‘미래 전략 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프로젝트로 옮겨갔다.

계속된 일방통행식 행정에 문제의식을 느낀 고양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지난 6개월간 시의 예산 장부를 정밀하게 해부했다. 고양시민예산정책연구 네트워크(이하 고양예산넷)가 진행한 이번 분석은 막연한 비판이 아닌, 데이터에 근거해 시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시민들의 손으로 분석한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지난 3년간 고양시는 시민의 목소리를 지우고, 지역 경제의 모세혈관을 막고, 사회적 안전망을 허물어 확보한 재원을 성과가 불투명한 ‘청사진’에 쏟아붓고 있었다.   


지역경제 예산 줄이고 ‘미래 올인’?
이동환 시장 임기 동안 예산 운용의 핵심 기조는 ‘제로섬 게임’에 가까웠다. 시 전체 예산 규모는 2021년 약 2조2333억원에서 2025년 약 2조8096억원으로 증가(일반회계 기준)했지만,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시민의 삶과 직결된 분야의 예산을 삭감해 시장의 역점 사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예산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경제의 두 축인 ‘지역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예산’과 ‘미래 전략 산업 예산’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일자리정책과, 소상공인지원과 등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부서 예산은 2021년 468억9000만원에서 2025년 184억5000만원으로 무려 284억4000만원이 줄었다. 반면, 전략산업과, 경제자유구역추진과 등 ‘이동환표 예산’으로 표현되는 ‘미래 전략 산업 예산’은 같은 기간 978억8000만원에서 1435억4000만원으로 500억원가량 폭증했다.

삭감된 내역은 더욱 심각했다.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던 142억원 규모의 ‘고양페이(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은 전액 삭감됐고, 소상공인지원과 예산은 75%나 급감했다. ‘고양청년 좋은 일자리 플러스 사업’ ‘신중년 경력활용 일자리사업’ 등 청년과 중장년층의 생계를 책임지던 직접 일자리 사업들도 예산안에서 자취를 감췄다.

반면 증액된 예산은 이동환 시장의 핵심 공약 사업을 위해 신설된 부서에 집중됐다. 대표적으로 ‘경제자유구역추진과’ 신설에 49억6000만원, ‘미래산업과’ 신설에 305억10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이 예산의 상당 부분은 실체가 불분명한 연구 용역, 기관 운영비 등으로 구성됐다. 이를 두고 시민의 손에 직접 돈이 쥐어지는 실질적인 경기 부양책 대신 불확실한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데만 집중하는 허울뿐인 재정 운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491억원 기금은 잠자고 실적은 ‘뻥튀기’
‘미래’라는 명분 아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6년째 단 한 푼도 쓰이지 않고 잠자고 있는 ‘투자유치기금’이다. 2025년 기준 491억7000만원에 달하는 기금이 조성됐지만, 실제 집행액은 ‘0원’이었다. 투자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정작 관련 예산은 방치하는 행정의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가 직접적인 산업 육성보다는 외부 기관에 대한 용역과 보조금 지급에 치중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범수 고양시민회 정책위원장은 “고양시가 직접 발로 뛰며 산업을 키우는 대신, 연구 용역만 발주하는 손쉬운 행정을 펼치고 있다”며 “결국 지난 3년간 막대한 예산은 지역 산업 생태계를 살찌운 것이 아니라, 소수의 연구기관과 대학의 배를 불리는 데 쓰였을 뿐”이라며 실효성 없는 예산 운용을 꼬집었다.

이동환 시장의 핵심 공약인 ‘경제자유구역’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6조6000억원 투자 유치’를 홍보했지만, 실상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업무협약(MOU)과 투자의향서(LOI)가 대부분이었다. 현재 담당 부처인 산자부는 ‘선 투자 확약, 후 경자구역 지정’을 고양시에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이 시장은 ‘지정만 되면 기업이 올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를 고수하면서 프로젝트는 수년째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예산분석 결과에 따르면 핵심부서인 ‘경제자유구역추진과’에 배정된 예산은 사업비가 아닌 자료 제작비, 업무추진비 등 행정 경비에 주로 치중돼 있다. 실체 없는 청사진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민 목소리 지우고 안전망 허물어
이동환 시정의 예산 삭감 칼날은 시민들의 일상과 사회 공동체 전반을 겨눴다.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핵심 기구인 ‘주민참여위원회’ 운영 예산은 2억1000만원에서 2160만원으로 90%나 삭감됐고, 풀뿌리 공동체를 지원하던 ‘자치공동체 지원센터’ 예산은 17억3000만원에서 2800만원으로 98%가 잘려나가며 기능을 대부분 상실했다.

이에 대해 송영주 고양시 민생대회 공동대표는 “이동환 시장은 시민만 바라보는 시정을 펼치겠다고 하지만, 시민의 참여는 바라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시민 참여를 행정의 장애물로 여기는 시각이 예산운용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과 노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도 허물어졌다. 여성영화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기림의날 행사, 여성안심귀가 동행 서비스, 공중화장실 불법촬영 점검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경제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정작 사회복지 분야 내 ‘노동’ 항목 예산은 2021년 99억7000만원에서 2025년 51억20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교육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고양시 전체 교육 예산은 2021년 648억원에서 2025년 469억원으로 178억원 이상 대폭 삭감됐다. 특히 모든 학생에게 돌아가던 ‘학교급식비 지원’(87억 삭감), ‘교육환경개선사업’(76억 삭감) 등 보편적 교육 복지 예산이 직격탄을 맞았다.
 

“시민의 삶으로 예산 되돌려야”
이번 고양예산넷에서 발표한 예산 분석 결과는 이동환 시정 3년의 재정 철학이 ‘시민의 현재’를 외면한 채 ‘불투명한 미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예산의 방향을 시민의 삶으로 되돌려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먼저, 1:8에 달하는 극단적 예산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미래 전략 산업이라는 명목으로 쏠린 재원을 민생 예산으로 되돌려놓는 ‘예산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재정의 책임성’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수년간 잠자고 있는 491억원의 투자유치기금에 대한 활용 계획을 즉각 마련하는 한편, 실적 없이 규모만 커진 미래산업 관련 행정조직을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삭감된 주민참여예산을 복원하고 투명한 정보공개를 의무화해 시정의 주인이자 감시자인 시민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시민 거버넌스’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영주 대표는 “결국 예산의 주인은 시민이다. 지방정부는 손에 잡히지 않는 불투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고단한 일상을 보듬는 정책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