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정말로 제왕적 대통령제인가?
[안희곤의 손에 잡히는 책] (5) 정부의 원리(2025) 정치적 문제 근본 해법은 선거제도 개혁 대통령과 여당 폭주는 양당제서 비롯 비례대표제 확대, 결선투표제 도입 필요 자유와 민주는 서로 대립, 조화의 관계 민주시민으로 살려면 노력, 의무 다해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가 참 괴롭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십 년에 한 번 벌어질까 말까한 일들이 한국의 역동적인 정치 상황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일어나 나라를 뒤흔드니 국민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작년 12월 3일 한밤중에 벌어진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의 내란 시도가 그러하고, 채 10년이 안 지나는 동안 두 번이나 벌어진 대통령 탄핵과 파면도 그러하다. 하지만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처럼 이웃나라들은 자신들의 꽉 막힌 정치체제와 비교되는 한국의 역동적 정치를 부러워하기까지 한다니,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겠다. 게다가 여기에는 부대효과도 있는데, 때마다 민주주의 원리나 헌법이나 권력 구조에 대한 국민들의 교양이 부쩍 늘어나니 우리 정치 상황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통령 탄핵과 그에 이어진 대선, 그리고 새정부 출범과 내란청산 과정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는 머리가 어지럽다. 정치 개입을 의심받는 대법원, 입법부의 독주, 사법권 침해가 우려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등 삼권분립 원칙이나 헌법적 차원과 관련된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앞으로 있을 개헌 논의까지 생각해보면 머리는 더 복잡하다. 대통령제는 어떻게 손을 봐야 하고, 현행 선거제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한 마디로 이 나라의 권력 구조는 어떻게 짜여 있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이럴 때 우리가 딱 맞춰 읽어볼 만한 책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펼쳐든 책이 얼마 전 출간된 『정부의 원리』라는 책이다.
『정부의 원리』는 믿을 만한 지인들이 여럿 추천을 하고 독서후기까지 올려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책은 사는 것이지 읽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사놓고 꽂아두면 언젠가 읽게 될 책이었는데, 요즘의 정치적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책장에서 꺼내들었다. 책을 쓴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학술원상에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그밖에도 여러 저술상과 우수논문상을 받은 일급 학자로 칭송이 자자한 저자다. 하지만 학자의 딱딱한 교과서적 저술이 아니라, 대중독자를 위한 친절하고 명쾌한 서술로 이 나라 정치와 정부의 작동 원리를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썼기에, 나 같은 ‘정알못’ 독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내 머리에 맴돌았던 의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대로, 과연 선출권력은 임명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것일까? 그와는 반대로, 우리나라는 정말로 제왕적 대통령제인가? 재판을 빙자한 사법부의 정치 개입은 사실일까? 개헌을 한다면 대통령제보다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가 대안 아닐까? 그럼에도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4년 중임제가 좋을까? 선거제도는 또 어떻게 고쳐야 할까? 줄줄이 떠오르는 질문 모두에 대해 이 책이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로 유용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원리』는 “자유민주주의와 대의제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을 바로잡고, 정치와 정부의 작동 원리와 실제를 명확하게” 이해하자는 취지 아래, 10개 장에 걸쳐 민주주의, 정부, 정당, 선거 등 정치와 정부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접하는 각국의 제도를 우리나라와 비교해가면서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제도들의 역사적 뿌리와 고유한 유래를 친절하게 짚어줌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막연히 가지고 있던 정부와 정치에 대한 내 이해가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 부끄러운 자각이 밀려왔다. 우선 10개 장의 내용을 내 관심이 가닿은 부분을 위주로 거칠게나마 요약하면 이러하다.
1장은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를, 비슷한 대의민주주의 체제인 공산주의 및 권위주의 체제와 비교하면서 진정한 대의제가 어떤 것인지 해설한다. 2장은 민주공화정의 역사적 뿌리를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데, 특히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한 공화정을 ‘의식적으로’ 설계한 미국이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3장에서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의 정부 형태를 설명하는데, 특히 이 장에서 나는 권력 분산과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던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배움을 얻었다.
4장, 5장, 6장은 입법부와 관련된 내용으로 정당의 종류와 기능,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 등 선거 관련 제도, 의회의 권한과 기능을 설명한다. 7장은 국가관료의 기능과 역기능, 그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법을 해설하고 있고, 8장은 연방제, 단방제 국가의 장단점과 그와 관련된 지방정부 문제를 설명한다. 9장과 10장은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자, 저자의 주장이 집약된 부분이다. 즉 ‘헌정’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와 관련해 사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당정치의 무능력이 어떻게 정치의 사법화를 부르고 거꾸로 사법의 정치화를 부르는지 짚고 있다. 10장에서는 이상의 모든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해법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양당제 타파를 위한 비례대표제 확대, 결선투표제 도입 등이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다시 한 번 고백하거니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나라 정치와 정부 제도를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 여러 번 깨달았다. 저자는 이런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나의 경우만 봐도 그 의도는 성공적이라고 하고 싶다.
임명권력인 사법부(헌재 포함)는 원리상 선출권력 다음일지는 모르지만, 선출권력인 입법부나 행정부가 다수의 폭력을 행사할 때 그 전횡을 막도록 따로 독립시킨 권력기관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정치적 의제를 능동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고 다만 문제가 불거졌을 때 법에 대한 해석을 통해 사안을 판단할 뿐이다. 그러니 ‘제왕적 사법부’란 어불성설이고, 다만 헌법에 대한 해석적 권한으로 그 권력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란 말도 그러하다. 국회가 대통령을 세 번이나 탄핵하고(두 번은 파면)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조차 없는 나라에서,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에서도 입법부와의 밀착으로 무소불위 행정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가 믿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와 ‘민주’는 서로 대립적인 개념으로, 개인의 자유는 언제나 다수결에 따른 민주의 원리에 의해 제약될 수 있고, 민주는 또 아무리 다수의 결정이라도 소수의 자유와 권리에 의해 제약되어야 한다. 자유와 민주가 대립 관계이자 조화의 관계라는 것도 이 책에서 새롭게 깨달은 부분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마지막으로 짚고 있는 부분이자 가장 힘주어 주장하는 것은 양당제의 문제와 선거제도에 관한 내용이다. 대통령과 입법부 사이의 극한갈등으로 인한 정치 혼란이나, 그와 반대로 심한 여대야소 구도로 인한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폭주는 모두 양당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양당제를 넘어 여러 정치 세력의 타협과 협의가 필수적인 다당제가 꼭 필요함을 역설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비례대표제는 제3, 제4당의 원내 진입을 가능케 하고, 결선투표제는 3, 4위 후보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줌으로써 1위 후보의 독주를 제어할 것이다.
친절하고 쉬운 내용에 비해 너무나 풍부하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기란 역부족임을 느낀다. 다만 한 마디는 하고 싶다. 우리가 민주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 내 의사를 실현해주리라는 효능감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노력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정부의 원리』와 같은 책을 읽는 데 시간과 노력을 지불하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