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독식’ 깨자... 내년 지선 권역별비례·중대선거구제 도입 될까

국회 지방선거제도 개혁 토론회

2025-10-08     남동진 기자
지난 1일 열린 '주민대표성과 지방정치 다양성 확대를 위한 지방선거제도 개혁 토론회'에서는 현행 선거제도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가 펼쳐졌다.

중앙정치 대리전 전락한 지방선거 
일당 독점·양당 구도 고착화 ‘심각’
2026 지방선거 그들만의 리그 넘어
‘민심 그대로’ 반영한 정치 되어야

[고양신문] 내년 6월 3일로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승자독식’으로 대표되는 현행 선거제도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는 ‘일당 독점’, 거대 양당만이 살아남는 ‘양당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지난 1일,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주민대표성과 지방정치 다양성 확대를 위한 지방선거제도 개혁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가 펼쳐졌다. 범여권 의원들로 구성된 ‘기초·광역의회 선거제도 개혁 시범사업 확대 추진단’이 함께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크게 ▲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광역·기초의회 선거제도 개혁 ▲지역정당 허용 등 세 가지 핵심 의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50% 미만 대표’, 정당성 논란 해결해야
현행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단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되는 단순다수대표제로 치러진다. 3명 이상의 후보가 경쟁할 경우,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로 당선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대표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준우 변호사(전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는 발제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의 가장 큰 논거는 당선인의 대표성을 강화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가 다시 맞붙는 결선투표를 통해 유권자의 더 폭넓은 지지를 받는 단체장을 선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셈법은 복잡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에는 긍정적이면서도 지방선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고, 국민의힘은 당내 경선에서는 결선투표를 하면서도 정작 공직선거 도입에는 부정적이다. 이는 제도 개혁이 당리당략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선투표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2차 투표율 하락으로 오히려 대표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와 프랑스 대선에서처럼 특정 후보를 배제하기 위한 전략적 투표가 나타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김 변호사는 최근 미국 뉴욕시장 선거 등에서 도입된 ‘선호투표제(Instant-runoff voting)’를 제시했다. 선호투표제란 유권자가 한 번의 투표로 선호하는 후보의 순위를 모두 매겨,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최하위 후보의 표를 차순위 후보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투표를 두 번 하는 번거로움과 추가 비용 없이 결선투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준우 변호사(전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일당 독재’ 광역의회, ‘양당 독점’ 기초의회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심각성이 부각된 부분은 지방의회 선거제도, 특히 광역의회였다. 현행 광역의회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구보다 더 잘게 쪼개진 소선거구제 위주로 치러져 ‘일당 독재 의회’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준우 변호사는 “2018년 지방선거 서울시의회 선거 결과를 분석해보면 민주당은 50.92%의 정당 득표율로 전체 110석 중 102석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즉 유권자 선택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선거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극심한 불비례성이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영호남에서 특정 정당의 독주와 무투표 당선자 속출로 이어져 의회의 행정 견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기초의회의 경우 ‘양당 독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2인 선거구’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거대 양당이 한 석씩 나눠 갖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로 인해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의 의회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이며, 심지어 ‘무투표 당선’ 사례 또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개혁 방안으로 ‘중대선거구제 확대’가 공통적으로 제시됐다. 2인 선거구를 폐지하고, 한 선거구에서 3~5인을 선출하도록 바꿔 소수정당과 정치 신인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임미애 의원은 이미 기초의회 3인 이상 중대선거구 확대, 광역의회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전환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한 비례대표 의석 확대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현재 지역구 의원 수의 10%에 불과한 지방의회 비례대표 비율을 국회 수준인 15% 이상으로 높이는 한편, 제3당이 출현할 수 있도록 의회별로 최소 4석 이상의 비례대표를 배정하는 등의 구체적인 제안이 나왔다.

한편 김범수 단국대 교수(고양시민회 정책위원장)는 근본적인 문제로 ‘전국통일기호 제도’를 지목하기도 했다. 국회 의석수에 따라 거대 양당에 기호 1, 2번을 우선 배정하는 제도가 유권자의 ‘묻지마 투표’(일렬투표)를 유도하고, 군소정당과 무소속 후보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다는 비판이다. 김 교수는 “유권자의 지지율이 정당 득표율로 가는 과정에서 1차 왜곡이, 득표율이 의석으로 전환될 때 2차 왜곡이 발생한다”며 “기호를 추첨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공정한 경쟁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김범수 단국대 교수(고양시민회 정책위원장)

‘지방 없는 지방선거’를 끝낼 열쇠, 지역정당 허용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전락한 현실을 타파할 근본적인 대안으로 ‘지역정당 설립 허용’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행 정당법은 수도에 중앙당을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갖춰야 정당으로 등록할 수 있어, 특정 지역의 의제에 집중하는 지역정당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토론자들은 헌법재판소에서도 위헌 의견이 다수(5:4)를 차지할 만큼 현행 정당법의 전국정당 강제 조항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은평민들레당’, ‘직접행동영등포당’ 등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지역 정치조직의 사례처럼,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다양한 풀뿌리 정치 주체들에게 공식적인 선거 참여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고 지방선거에만 출마하는 ‘자치정당’ 형태를 우선 도입하거나, 정당 설립 요건 자체를 완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김준우 변호사는 “지역정당이 허용되면 중앙정당의 공천에 목매지 않고 지역 주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 세력이 등장해 ‘지방 없는 지방선거’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저 개혁선’은 어디인가…다양한 시선과 쟁점들
이어진 토론에서는 각 의제를 둘러싼 현실적인 고민과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토론자들은 개혁의 큰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론과 현실 적용의 어려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먼저 곽관용 서울시 정무비서관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범 실시됐던 3~5인 중대선거구제 결과를 분석하며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곽 비서관은 “양당은 소수정당은 안중에도 없고, ‘우리가 세 석을 먹느냐, 쟤네가 세 석을 먹느냐’는 셈법으로 복수공천 전략을 짰다”며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이 제도 개혁의 효과를 상쇄하는 가장 큰 방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는 “선거구 크기만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다수대표제라는 당선자 결정 방식을 그대로 둔 채 선거구 크기만 키우면 오히려 비례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거구 크기 조정과 함께 당선 결정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단체장 결선투표제에 대해 “선택의 다양성을 준다는 점에서 필요하다”면서도 “선거비용 확대와 2차 투표율 저하라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2013년 뉴욕시장 결선투표의 투표율이 6%에 불과했던 사례를 들며, 낮은 투표율로 당선될 경우 대표성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호투표제’ 도입에 무게를 실었다.

한강욱 고려대 교수는 지역정당 허용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제도적 설계 없이 도입한다면 지역주의를 강화하고 토호·브로커 정치가 재현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여성·청년의 진입을 보장하는 의무공천제 법제화 등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토론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석자들. (사진제공= 임미애 국회의원실)

내년 지선 중대선거구 도입 확대 시행해야 
다양한 비판과 우려에 대해 김준우 변호사는 “시기적으로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전면적 정당명부제나 단기이양식(STV) 같은 급진적 개혁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며 중대선거구제 확대 등이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아울러 중대선거구제 효과를 반감시키는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와 학계의 지속적인 공론화를 통해 압박을 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임미애 의원 또한 앞서 지난달 25일 광역의회는 득표율대로 의석을 가져가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기초의회는 3인 이상 중대선거구로 확대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토론회를 주최한 임 의원은 "지금껏 지역에 살면서 지방선거 제도가 어떻게 지방자치를 왜곡시키는지 봐왔다"며 "지금의 제도로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불가능하다. 지방자치, 지방분권이 가능해지려면 그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지방선거 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