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칼럼] 낯선 공간이 선사하는 우연의 힘
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저는 또 해남에 와 있습니다. 이번에는 두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 중입니다. 사실 두 달이라는 시간을 통으로 내는 일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신청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덜컥 선정되어 준비도 제대로 못 하고 급하게 내려온 터라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또 문제없이 살아집니다. 역시 시간이라는 것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내는 것이고, 사는 일에는 그리 많은 준비가 필요치 않은 듯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귀촌입니다. 그런데 8주 차에 접어든 지금, 모든 결론이 ‘너는 일산 사람이다’로 나는 중입니다. 시골 빈집이라는 것은 여성 혼자 살기엔 위험한 주거형태이고, 시골살이의 필수품인 차를 사면 도시에서보다 훨씬 많은 생활비가 들기 때문입니다. 두 달을 낭비한 것 같아 억울해지던 차에 마을 버스킹 공연 때 직접 쓴 에세이를 낭독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됐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글을 쓰면서 이곳에 온 이유를 헤아려 보자며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언제나 쓰고 싶었던 마음과 늦은 나이에 방송국에 들어간 선택, 그리고 책과 칼럼과 소설을 쓰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채워졌던 경험을 에세이 서두에 담았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생계 걱정도, 소음 공해도 없는 곳을 찾아 이 낯선 시골까지 왔건만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언급하며 저는 마침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대체 왜 이곳에 왔는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면 위로 문장이 써졌습니다. “우연의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경계심 많은 제가 오륙십대 아저씨들 사이에 유일한 여성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부터가 제게는 굉장한 우연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그분들과 울돌목에서 묵을 파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생면 부지의 아이들과 송편을 빚는 우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더니 추석 연휴에는 몇 번 뵌 적 없는 현지인 여성이 전화를 걸어 자신의 친구와 함께 청산도로 여행을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평소의 저라면 익숙지 않은 사람과의 동행이 불편하여 거절했을 텐데,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했고, 어느새 저는 세 여자의 1박 2일 로드 트립에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막역해진 그 현지인 여성과 이젠 전우나 다름없게 된 두 달 살기 팀원들 앞에서 글쓰기를 말하고 에세이를 낭독하는 중입니다.
이 놀라운 우연의 선물들을 매일 하나씩 열어보며 제가 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지방 청년들이 어떤 시선과 비전으로 세상을 보는지 알지 못했고, 오륙십대 남성들의 삶과 고민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호기심을 몰랐고, 어깨가 수굿한 어르신들의 외로움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문득, 지난 십 년간 들여다본 적 없던 사람들의 다정함과 분노와 연민과 사랑스러움을,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한 색채로 들여다보기 위해 저는 이곳에 와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가슴에 품은 제가 일산으로 돌아가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는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쓸 글에는 인간과 세상을 향한 전보다 더 깊어진 시선이 담길 거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저뿐 아니라 이 낯선 공간에 온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깊어지고 한 뼘씩 더 자라나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을이 짧습니다.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면, 혹은 삶이 멈춰버린 것 같다면,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공간 안으로 가볍게 자신을 던져 놓아보기 바랍니다. 마음을 열고 공간이 선사하는 우연의 순간을 기꺼이 껴안아 보기 바랍니다. 나를 둘러싼 기묘한 우연의 부딪힘 속에서 세계와 삶을 향한 시선이 점차 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질지도 모릅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가방을 싸놓기 바랍니다.